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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Sep 13. 2023

젊은 직원들에게 이벤트 기획을 맡겼더니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추석은 특히 6일의 긴 연휴 덕분인지 모두가 기대에 들떠있는 느낌이다. 고향 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직원들도 있지만 국내 혹은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직원들도 많다.


임원 한분이 회사 형편이 그리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직원들을 위해 뭔가를 좀 해 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몇 가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함께 제시하면서. 숙의 끝에 한 가지 조건을 내걸고서 제안에 동의했다. 경영진은 필요한 예산 및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바만 정할 뿐, 나머지 세부적인 것들은 일절 관여하지 않고 온전히 직원들에게 맡긴다는 조건이었다.




처음에는 좀 불안했다. 특히 프로젝트를 주도할 부서의 직원들 중, 요즘 유행하는 MBTI의 “I” 성향을 가진 내성적인 직원들이 대다수여서 과연 잘 될까 의구심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약속대로 나와 경영진은 해당 건에 관해 일절 관여하지 않고 계획안이 도출되기를 기다렸다. 들어보니 직원들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느라 나름 활발한 논의와 의견수렴도 했다고 한다. 특히 비교적 최근에 갓 입사한 젊은 사원의 활약이 컸다고 했다.


드디어 며칠 뒤,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안이 나왔다. 최종 승인을 받으려고 몇 가지 옵션을 들고서 오기에, 나는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안이 무엇이냐고만 물은 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계획대로 진행하라고 했다. 직원들은 좋아라 했다. 그들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아이디어는?


예산을 “몰빵”하자는 것이었다. 누구든 추석과 관련된 여행계획이나 수필, 시 등을 사내게시판에 올릴 수 있게 하고, 다른 직원들이 댓글로 보인 반응을 점수화해서 1, 2, 3등을 정한 다음 수상자들에게 상금을 현찰로 “몰빵”하겠다는 것이었다.

1등 상금은 100만 원!

그리고 1, 2, 3등에 들지 않은 모든 참가자들에게도 소정의 참가상을 주겠단다. 내 안에서는 ‘허걱!’하는 소리가 나왔지만 꿀꺽 삼켰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진행해 보라’고 했다. 곧바로 사내 게시판에 “추석 Event” 코너가 만들어졌다. 이벤트를 알리는 카드뉴스 형식의 소개자료도 만들어졌다.




늘 비교적 조용하던 사내 게시판은 그 뒤로 아주 난리가 났다. 직원들이 저마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을 속속 출품(?)하기 시작했고, 작품에 대한 댓글도 수십 개씩 달렸다. 100만 원의 상금 때문인지 엄청난 ‘고퀄’ 작품들도 많았다. 여행사 소개자료 뺨치는 지역별 여행가이드도 있었고, 성향에 따라 맞춤으로 골라서 갈 수 있는 맛집여행도도 있었다. 여행지 역시 국내뿐 아니라 유럽, 싱가포르, 일본 등 국제적이고 다양했다. 거기에 더해서 감동적인 자작시나 창작소설을 올린 직원도 있었고, 평소 정상인 줄 알았던 직원의 광인(?) 같은 모습이 담긴 깜짝 놀랄만한 동영상도 있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품에 담긴 댓글과 대댓글은 또 어찌나 재미있는지… 나는 우리 직원들이 얌전하게 공부 잘하던 연구원들이 대부분이라 평소에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수다스럽고 유치 찬란할 만큼 유머가 넘치는 줄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번 이벤트는 아직 한창 진행 중이지만, 내 눈에는 이미 대성공이다. 그리고 조용하고 소심할 줄만 알았던 직원들이 이렇게 훌륭한 이벤트를 기획해 내고 또 모두가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여러모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Multiplier>라는 책에서는 리더를 두 부류로 나눈다. “나 아니면 아무도 이걸 못해낼걸 (They will never figure this out without me)”이라고 믿는 Diminisher와 “사람들은 똑똑해서 이걸 해결해 낼 수 있을 거야 (People are smart and will figure this out)”라고 믿는 Multiplier다. Multiplier의 특징 중 하나는 직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시시콜콜 지시와 명령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좀 더 좋은 방법을 스스로 고민해서 찾을 수 있도록 자극과 지원을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번 이벤트를 성공시킨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는 “경영진은 아무런 아이디어도 내지 말자는 나의 아이디어"였다고 혼자서 자화자찬하며 Multiplier라도 된 듯 클클클 웃었다.


p.s. Wife에게 추석 이벤트에 대해 이야기해 줬는데 “1등 상금 100만 원”이라는 말에 나도 당장 출품하라고 한다. 이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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