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상: 마음의 상처
"아, 정말 답답해 죽겠네."
오랜만에 만난 친구 S가 말했다. S는 한 글로벌 회사에서 아시아 여러 국가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최근에 자신이 담당해야 하는 나라가 몇 개 더 늘었다고 했다.
"그래? 잘됐네. 축하해!"
나는 S의 회사 내에서의 역할이 계속해서 확장되는 것을 기뻐해주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리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다. 특히 새로 함께 일하게 된 나라의 직원들이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많이 힘들다고 했다. 예를 들면, 말로는 '하겠다'라고 하지만 정작 약속을 잘 지키지 않거나 기한을 엄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뿐만이 아니다. 다른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지인들에게서도 최근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들은 마치 다른 나라에 있는 동료들과 일하면서 누가 더 심하게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었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힘들었던 일들을 앞다퉈 털어놓곤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나도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제법 했음을 떠올리게 된다. 대학원 졸업 후에 미국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 대부분의 미국 동료가 친절했지만 (당연하게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나도 아직 어리기도 했고, 또 외국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도 겪으면서 다소 주눅이 들었던 터라 동료로부터 까칠한 대접을 받고 나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이 되곤 했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동남아시아에 처음으로 사장으로 발령받아 갔을 때는 현지 직원들의 너무 두루뭉술한 의사소통이나 느린 실행 때문에 많이 불편해하며 직원들을 다그친 적도 있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샘 리처드 (Sam Richards) 교수는 나라별로 다른 문화적 차이에 대한 강의로 유명하다. 최근에 본 한 동영상에서 리처드 교수는 서양 학생들에게 젓가락을 사용해서 콩알 같은 작은 음식을 집어서 옮겨보게 하고 번데기나 튀긴 개미 같은 이국적인 음식을 먹어보게 하면서 '사람은 경험해 보지 않았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두려움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누구나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익숙해진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러한 경험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리처드 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닭고기나 우유를 먹고 마시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어떤 문화권의 사람에게는 이상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에 대해 좀 더 포용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위계질서 및 권위와 관련된 문화적 특성을 수치화한 '권력거리지수 (Power Distance Index)'라고 불리는 면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PDI 수치가 높다는 것은 상하관계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다는 것인데, 우리가 흔히 '예의 바르다'라고 인식하는 연장자 혹은 상급자에 대한 순응이나 복종은 우리 문화에 높은 PDI 경향이 보편적으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PDI 수치가 낮은 문화권의 사람들이 한국사람과 교류하게 되면 그들은 한국인들이 매우 수동적이거나 지나치게 형식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반면 한국 사람들은 그들이 다소 무례하거나 공격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일하면서 오해하거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쓰는 몇 가지 간단한 노하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상대방의 메시지의 형식보다는 메시지의 내용에 집중한다.
둘째, 상대방의 의도를 오해하기 전에 상대방과 내가 각자 익숙하게 느끼는 문화가 다르다는 점을 상기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불편함을 느낀다면 상대방에게 '이러이러한 점은 나의 문화권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고 내가 불편하게 느낄 수 있으니 조심해 주면 좋겠다'라고 정중하고도 분명하게 알려준다.
세계가 글로벌화되면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일하는 것은 점점 더 흔한 일이 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회사에서 일한다면 외국인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하지만 글로벌 회사라고 거기에 몸담고 있는 모든 구성원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동일한 수준의 경험이나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이들이 외국인 동료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개인적인 인성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단지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일해본 경험이 부족해서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인식이 낮거나 그에 대한 적절한 감수성을 개발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비단 외국인과의 관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도 자라온 환경이나 경험이 100% 같을 수 없으므로 모두가 조금씩 다른 믿음과 행동 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상대방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상처받거나 화내는 것은 부질없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 때문에 내가 불편할 때면 '이 사람 왜 이래?'라고 반사적으로 화를 내는 대신 그 사람의 말투나 말하는 형식보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의 의도를 무턱대고 의심부터 하기 전에, 그가 단순히 나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많이 거슬린다면 그때는 마냥 꾹 참고 속을 끓이며 오해나 화를 키우기보다는 적절한 시점에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다.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2024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