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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의 '예쁘게 말하는 할머니'

슬픔. 안도감. 죄책감.

by 함태진
“엄마다!”


작은 거실처럼 꾸며진 요양원 면회실. 요양보호사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드디어 엄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
"어머니~~."

엄마는 처음 보는 사람인 양, 낯설어하는 눈빛으로 나와 아내를 가만히 훑어보신다.

“엄마. 내가 누구예요?”

나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하지만 ‘혹시라도 나를 못 알아보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하며 물었다.


엄마의 입술이 힘겹게 달싹거린다.

"아들"
"맞았어!"




유달리 울기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는 엄마였지만, 지난 한두 달 사이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엄마는 감정표현이 거의 없어지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웃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가 재미있어했던 농담도 해보고, 예전에 함께 했던 여행 이야기도 꺼내 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별 반응이 없다.

“기억이... 잘 안 난다.”


나의 이런저런 시도에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자, 안타까운 듯, 아내가 옆에서 말했다.

“그래도 오빠하고 나하고 누군지는 기억하시잖아, 어머니. 맞죠?”

그때 내가 조바심이 나서, 엄마의 대답을 가로채며 말했다.

“그럼~ 당연히 알지. 그렇지요?”

그랬는데 그게 우스웠던 걸까? 엄마가 드디어 짧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아주 잠깐 스치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다시 무덤덤한 얼굴로 돌아가기 전에, 그 표정과 소리를 ‘찰칵’ 사진을 찍듯 마음에 눌러 담았다.



예쁘게 말하는 할머니

면회 중간에 엄마의 간호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잠깐 내려오셨다.

“어머님이 성격이 되게 밝고 좋으시던데요?”
“아 그래요?”
“네, 말씀을 참 예쁘게 하세요.”
“어떻게요?”
“조금만 도와드려도 고맙다고 그러시고, 뭐든지 본인이 하시려고 하고… 어머님이 참 긍정적이세요.”


다행이다. 엄마가 요양원으로 옮기면서, 행여나 새로운 장소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예쁘게 말하는 할머니’라는 얘기를 들으신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다행히 엄마의 원래 성품이 그대로 남아있구나.')


unsplash.com/@hansmoerman


엄마는 한 번씩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셨다.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조금 더 친절하고 전문적인 돌봄을 받으실 수 있도록 요양원으로 옮긴 것인데 아직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하다. 하지만 선뜻 ‘여기는 요양원이에요’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엄마가 예전에 언젠가 ‘요양원은 죽기 전에 가는 곳’이라는 뉘앙스로 나에게 말한 적이 있어서였다.

“여기서 도와주는 분들 말씀 잘 듣고 밥도 잘 드시고 하면, 다시 건강해지실 거예요. 그럼 다시 함께 바깥나들이도 하고, 그러다가 더 건강해지면 집으로 갈 거예요. “


나는 ‘여기는 요양원이에요, 엄마’라고 말하는 대신에 엉뚱한 대답으로 돌려 말한 것이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요양병원에서와는 달리 이곳 요양원에서는 30분 간격으로 면회가 잡혀있어서, 면회시간을 비교적 철저하게 지키는 모양이다. 요양보호사가 문 밖에서 면회시간이 끝나간다는 눈치를 주었다. 나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를 멍하니 쳐다보는 엄마에게, 내가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가까이 대며 ‘까꿍!’ 하듯 눈을 맞추었다. 그러자 엄마가 또다시 피식 웃었다.


“엄마. 나 보니까 좋아요, 안 좋아요?”

그러자 엄마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태진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들이지.”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잠시 후, 요양보호사가 들어와서 엄마의 휠체어를 잡았다. 이제 진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엄마, 우리 이제 갈게요”

그리고 엄마의 귀에 대고, 늘 하던 작별인사를 속삭였다.

“엄마, 알라뷰”

그러자 엄마가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유러브미.”

“그렇지! 아이고 잘하네, 우리 엄마~. 엄마... 또 올게요. 빠이빠이~~”

나는 멀어지는 엄마의 휠체어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요양원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아내가 말했다.

“예전에는 엄마 좋으시라고 엄마를 뵈러 갔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마음 편하려고 오는 것 같아.”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다. 엄마는 오늘 우리가 다녀갔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실 것이다. 우리가 가져온 간식도, 오늘 나눈 대화도, 짧았던 미소도.


“맞아. 이젠, 결국 우리 마음 편하려고 오는 것 같아.”


엄마를 두고 돌아서면서 슬프기도 하고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는데 대한 죄책감도 함께 밀려들었다.


차에 오르기 전, 나는 요양원 건물을 뒤돌아보며 깊게 한숨을 들이쉬었다.


(2025년 2월)



Cover Image: unsplash.com/@morgane_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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