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3일 (목요일), 맑음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띄엄띄엄 만나던 친구도 있지만 졸업한 후로 처음 본 친구들도 있다. 학교 다닐 때 그리 친하지 않았던 친구조차 30여 년 만에 만나니 그렇게 반갑고 좋을 수가 없다. 세월의 힘인 모양이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근황토크를 끝내자마자 나온 화제는 단연 우리들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학교에 관한 것이었다.
"그거 들었어? 우리 학교가 문 닫을지도 모른대."
"뭐라고?
"얼마 전에 엄마 보러 집에 들렀다가 길가에 붙은 플래카드를 봤는데 '00 고등학교 폐교 결사반대'라고 되어 있더라."
"진짜로? 와~ 장난 아니네."
"맞다. 요새 지방 인구감소가 진짜 심각하다."
아니, 내 고향이 무슨 시골 촌동네도 아니고 무려 부산인데 다니던 학교가 인구감소 때문에 없어진다니... 충격이다.
"야, 너는 중학교도 이미 없어졌잖아. ㅎㅎㅎ"
그렇다. 내가 졸업한 중학교는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고 없어졌다. 그래서 나의 상실감은 친구들보다도 좀 더 크다.
"우쒸, 까딱하면 내가 다녔던 학교들이 다 없어질지도 모르겠네. ㅠㅠ"
외국에서도 살아보고 서울에서도 살아봤지만 나는 지금 사는 이곳 대전도 꽤 괜찮다. 편의시설, 문화시설도 서울만큼 넘쳐나지 않는다 뿐이지 여기도 필요한 건 다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 같은 교통체증이 없다는 것이 내게는 큰 장점으로 느껴진다. 자연도 좋고, 전국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이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울로 서울로 몰려간다.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도 종종 수도권에 있는 회사로 옮긴다는 것을 가장 큰 퇴사 사유로 내세운다. 그럴 땐 붙잡고 싶지만 딱히 해줄 말이 없다. 떠나려는 이유가 연봉이나 다른 조건 때문이라면 어떻게든 맞춰보려 할 수 있겠지만 회사의 위치 때문이라면 낸들 뭐라고 하겠는가. 회사를 이전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8 이하로 낮아지고 국가 전체인구가 실제로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국가소멸' 같은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나오기도 하지만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반면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중학교, 고등학교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국가소멸’ 이전에 ‘지방소멸’은 확실히 가까이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구감소와 인구집중화가 지방의 소멸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방 출신에다 지방 소재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단순하게 넘겨버릴 수 없는 화두다. 뭐 하긴 지방소멸 이전에 내가 소멸되겠지만.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