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출판단지에서 일한다

좋은 책을 고르고 골라 사탕을 먹듯 읽는다

by 윤태진
사진자료 : 출판도시문화재단 홈페이지_출판도시전경


어쩌다 이곳까지 와서 살게 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서울과 부산 광주, 경기도 언저리를 배회하다 이제 경기 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파주에까지 오게 되었다.

파주라니. 오기 전까지는 이런 도시가 있는지도 몰랐다. 더구나 일하게 되는 곳이 '동'도 아니고 '리'란다. '읍', '면' 다음인 '리'. 다시 말해 시골이라는 뜻이다. 뭐 그렇다고 도시를 선호하는 것도 아니지만 지나치게 북쪽으로, 그것도 지나치게 한적한 곳으로 오게 된 것 같아 울적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적한 생활에 적응하고 살고 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리'는 '동'이 되었고 텅 빈 공간들은 건물로 채워져 가며 도시화가 진행 중이다.

그렇게 파주는 그리고 출판단지는 변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렇게 책과 둘러싸인 인생이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어른들이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살 줄은 몰랐다고들 하지만 나는 정말 몰랐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 거라고는.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와 책을 사랑하기에 만족하는 삶이다. 걱정이라면 눈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녹내장이 의심된다고 했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진단이었고 집에 와 인터넷을 뒤져 더 살펴본 녹내장은 실로 무서운 병이었다. 끝내 실명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니 내 눈은 실제로 닳고 있는 것이었다. 이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녹내장으로 의심되지만 현재 진행되지 않고 있으니 관리에 조심하라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다.

보고 싶은 책들은 계속해서 쏟아지는데 눈은 하루하루 닳아가고 있으니 달콤한 사탕을 입에 머금고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사탕을 먹을 때면 오래 먹고 싶은 마음에 천천히 빨아먹곤 했었다. 자칫 깨물어버리면 사탕은 순식간에 녹아 사라져 버린다. 같은 마음으로 좋은 책을 고르고 골라 사탕을 먹듯 읽는다. 눈을 아끼는 중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재미있는 책이 너무나 많다. 더구나 내가 일하는 동네는 책이 가득한 곳이다. 책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출판단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끝자락, 파주 출판단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