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운전

운전은 그야말로 고민과 갈등의 시작이다

by 윤태진
언제쯤 이런 예쁜 차를 가질 수 있을까?


아내가 운전면허를 따기로 했다. 평소 큰 차가 옆으로만 다가와도 소릴 지르며 천천히 가라고, 조심하라고 하는 아내였다. 워낙 겁이 많고 빠른 속도를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걱정이 조금 되었지만 아내는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면허를 따야 한다며 운전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는 아직 아이가 없던 때라 아이가 생기면 차에 태우고 우아하게 마트와 문화센터를 다닐 꿈에 부풀어 있었다. 물론 쌍둥이가 태어나며 모든 우아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육아는 흔한 비유로 전쟁과도 같았다. 더구나 쌍둥이 육아는 더더욱.


하지만 당시에는 종종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아내와 번갈아 운전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슬며시 응원했다. 더구나 도로주행을 고려했을 때 한적한 파주에서 면허를 따는 게 유리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의외로 운동신경이 뛰어난 아내이기에 단숨에 붙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아내는 기대에 부응하며 큰 탈 없이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증과 임시 면허증을 당당히 들고 나오던 아내는 이렇게 쉬운 걸 왜 떨어졌었냐고 공격을 시도했다. 실기와 도로주행 각각 한 번씩 떨어졌던 나는 당시 자동차가 좀 이상했으며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었다는 부득이한 상황을 설명했지만 아내는 듣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한두 번씩 그냥 떨어져 주는 게 예의였어.”

“그래. 그만하면 됐어.”


아내의 놀림에 조금의 정신적 대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곧 무사고 15년의 운전경력을 자부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내는 네 녀석의 무사고 운전 경력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면허 취득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좌회전 깜빡이를 넣을 때 감독관이 놀란 눈치였어.”

“왜?”

“과감했거든.”


자신감 넘치던 아내는 곧 도로주행을 해야겠다고 나를 부추겼고 곧장 면허증의 효력을 발휘하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쭙잖게 운전 선배라고 가르치려 한 내 잘못도 크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결코 흘려들어선 안 되었다. 역시 운전은 아는 사람한테 배우면 안 되었다. 난 결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초보운전이니 당연히 서툴겠지 친절히 설명하면 되지 대체 싸울 일이 뭐가 있을까?라고 세상의 모든 도로연수 선배들의 말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아내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지 않고 액셀을 밟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뭔가 엄청난 걸 잊은 것 같지 않니?”

“얘 왜 자꾸 삑삑 소리를 내는 거야?”

“엄청난 걸 잊은 탓이지. 사이드브레이크를 풀어. 그리고 정신 똑바로 차리자.”

“긴장했으니까 자꾸 말 걸지 마.”


갑자기 할부가 여전히 서슬 퍼런 기세로 남아있는 소중한 자동차가 크게 다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물론 아내와 함께 열심히 갚아 나가는 할부지만 아내는 자동차의 아픔이나 상처 따위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대담하게 운전을 할 리가 없다.


“아니 왜 자꾸 선을 물고 달려. 똑바로 달리라고.”

“나 초보인 거 몰라? 넌 처음부터 잘했어?”

“나 죽기 싫으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달리자.”

“내가 널 죽이기라도 한다는 거야?!”


서로의 목소리가 서서히 올라가더니 머지않아 짜증과 성질 폭언이 오가기 시작했다.


“네가 가르치는 차를 두 번 다시 타면 인간이 아니다.”

“나도 답답해서 못해먹겠다. 다시는 나한테 배울 생각하지마.”


이런 흔하디 흔한 말로 촌스럽게 말싸움이 오고 갔다. 아내의 면허 취득을 누구보다 기뻐한 나인데 그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런 싸움이 생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마음이다. 아침에 싫었던 사람이 저녁에 좋아진다. 재미있게 읽은 책은 책장을 덮고 나니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흘려들었던 얘기가 잠자리 머릿속을 맴돌며 속을 썩인다. 먹지 않기로 한 술은 역시나 또 마신다. 크게 욕해주겠다 벼르던 사람이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사랑이란 게 이런 것인지 아니면 결혼이란 게 이런 것인지. 이 복잡한 감정의 끝은 어디일까?

서로 토라진 채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내다봤다. 서로의 긴 한숨이 오고 간다. 폭언과 고함이 오가던 차는 순식간에 적막이 찾아오고 평상시 느끼지 못했던 엔진 소리만 요란하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선 아침 수업을 시작하기 전 명상음악을 틀어주며 명상을 강요하곤 했다. 혈기 왕성한 남자 고등학생들이 명상 따위를 할 리 없었고 그야말로 참고 견뎌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죽했으면 명상을 시켰을까 싶다. 미쳐 날뛰는 망아지 같은 놈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명상시간은 취침시간이 되었고 숙면을 취한 아이들은 오히려 에너지를 충전한 탓에 더욱 강력한 망아지가 되어 선생들을 괴롭혔다. 나이가 드니 그 시절의 명상이 절실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긴장한 모습으로 운전을 하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로 아내는 연습 삼아 몇 번 더 차를 몰아보고는 겁이 난다며 운전을 하지 않았다. 도로주행 중 작은 사고가 날 뻔했는데 그 충격으로 차를 겁내는 눈치다. 솔직히 다행스럽다. 차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걱정의 시작이다. 늘 크고 작은 사고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사고라는 게 나 혼자 조심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뿐인가 도로 위는 언제나 울화통 터지는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고 욕을 하지 않으려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어쩌다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만만찮은 수리비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커피 한잔 꾹 참고 모은 이천 원 삼천 원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거다. 운전은 그야말로 시작과 동시에 고민과 갈등의 시작이다. 그러니 아내는 계속 운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라도 스트레스 없이, 단순하게 살기를 바란다.


나 역시 한 때는 운전 따위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던 시절이 있다. 왠지 모르게 운전에는 자신이 없었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면 책도 보고 게임도 하고 그러다 지겨우면 맘 놓고 잘 수 있는데 비싼 차를 사서 도로 위에 돈을 왜 뿌려야 할까라고 생각했었다. 어릴 때는 주머니에 동전 몇 개 들고 다니며 살거라 여겼는데 어느새 차가 생겼고 그 차에 아내와 두 아이를 싣고 마트에도 가고 여행도 가고 병원에도 간다. 또 나중에는 아이들 학교에도 다녀야 한다.


정신건강을 위해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될 때면 버스를 탄다. 동전을 내고 타던 버스와 지하철은 이제 카드를 찍고 다닌다. 통장과 연결된 은행카드로 간단히 단말기에 대면 끝이다. 시간이 지나 많은 것이 변했다. 더 단순한 것 같지만 더 복잡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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