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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Jul 24. 2019

독서토론, 그 놀라운 매력

집단지성의 그 무한한 잠재력

  글이 조금만 길어도 읽지 않는 요즘, 쉽고 단순함이 최고로 각광받는 요즘!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고? 그것도 내 돈 내고? 책에 관심 없는 이들이라면 좀처럼 믿기 힘든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일명 '살롱' 문화의 부활이라고 하는데 보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이들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영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한 장면. 영화 속 북클럽은 조금 다른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뭐 독서클럽이긴 하니까 

 

 SNS가 인간관계를 장악한 이 시대에 '오프라인 만남'이라니 역설적이게도 과거로의 회귀다. 일각에선 SNS를 통해 실체 없는 만남에 지친 이들이 다시금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늘 좋을 리는 없지만 낯선 사람들과 특별한 목적을 갖고 만난다는 건 분명 신선한 자극임에 틀림없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뭔가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다. 

  조금만 진지해져도 내가 왜 이러지 싶기도 하고 자칫 지루하고 따분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생각을 숨기기 일수다. 그러니 보통의 대화는 신변잡기나 연예인 이야기 따위와 같은 가볍고 소모적인 이야기가 전부다. 물론 그런 대화로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전환을 가져올 수 있지만 그런 만족감이 오래갈 리 없다. 

그래서 그 '진지함'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찾는 곳이 바로 독서모임이다. 독서라는 행위가 특별한 활동이 되어버린 요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기뻐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토론의 자리를 마련해 보았다. 

  반신반의하며 사람들을 모았고 또 놀랍게도 사람들이 모였다. 운영을 위해 비용을 받았는데 참여자 모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기까지 했다. 시작도 전에 벌써 놀랐고 한 편으로는 안심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이런 니즈가 실제 했구나, 그리고 이렇게 실현이 되는구나 싶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첫 번째 모임은 어색했다. 물론 본격적으로 토론이 진행되고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열띤 토론을 시작하였지만 어쨌든 첫 만남은 어색했다. 서로 눈치를 보고 과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리둥절해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고 몇몇의 용기 있는 발언을 시작으로 토론은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뭐든지 시작이 어렵지 그 뒤부터는 별게 없다. 

그리고 몇 가지 놀라운 것을 경험했다. 미처 생각조차 못한 부분이었다. 


  첫 번째는 무서울 정도로 신기한 토론의 힘이었다. 집단 지성의 잠재력 말이다. 우리가 선정한 책은 어려웠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참석한 이들 대부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각자가 이해한 작은 조각들을 풀어놓기 시작하자 뭔가 커다란 조각이 맞춰지는 시작 했다. 그리고 곧 우리는 우리만의 해석과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정답이 아니라 해답을 찾아가는 토론, 이야기의 힘은 놀라웠다. 

  또한 서로 간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열기가 작은 돔을 만들어 우리의 공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두 번째 놀라운 경험은 토론이라는 행위의 즐거움이었다. 단순히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다른 이의, 전혀 다른 생각,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구나.' 그저 무릎을 탁 칠 수 밖에는!


  이견이 크게 갈리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아니다 보니 큰 갈등은 없었다. 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첫 번째 분류로 함께 나눠지고 그중에서도 장르와 작가라는 세분화된 공통의 관심사로 모이다 보니 회원들 간의 성향이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호적이고 부드러웠다. 


  그렇다고 참석자 개개인의 배경이나 직업 등이 같은 것은 아니다. 정말이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 사연 등을 갖고 있었고 전혀 다른 배경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 역시 또 다른 매력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생각해보면 정말 특별한 자리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느닷없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그것도 무척이나 진지하게 나눈다는 것. 경험하지 못한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즐거움이다. 


  책으로 만든 자리는 여전히 순항 중이다.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독서토론의 유행이 하나의 독서 캠페인으로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자료사진으로 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며 2차 세계대전 당시, 통금시간을 어기고 길을 가던 건지 섬 주민들이, 마주친 독일군에게 변명을 하기 위해 말한 것이 북클럽이었고 이를 계기로 만들어진 북클럽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책과 토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가슴 졸이며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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