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태진 Oct 24. 2019

인정받지 말자

굳이 받아야 한다면 스스로에게 받으면 된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부모나 친구 애인이나 배우자 상사나 후배 등 관계를 가리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인정이 삶을 살아가는 동력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인정이라는 것이 언제나 내 기대만큼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간극은 마치 평행을 달리는 열차 선로와 같아 좀처럼 좁혀지지가 않는다. 때론 한강만큼이나 넓게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사실은 그런 경우가 매우 많다. 


  왜 그토록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걸까? 그게 날 먹여 살리는 걸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일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나 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알면서도 못하는 게 사람이다. 

  

영화 <빅쇼트>의 한 장면. 타인의 생각과 평가 따위 개나 줘버리고 소신을 밀고 나가 혼자서 떼돈을 범

 

 인간의 인정욕구는 본능이지만 인정을 목표로 살아가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인정받을 일이 많지 않은 것이 우리의 삶이고 누군가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인색한 세상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 스스로가 인정받을 만큼 빼어나게 일하지 못했다는 것이 불편한 사실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정이란 것이 별거 아니다. 받으면 좋지만 받지 않는다고 크게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반복적인 인정과 칭찬이 성과로 연결되어 성공이나 승진, 보너스와 같은 보상으로 연결될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겪어야 할 스트레스와 인내, 고통이 적지 않으며 무엇보다 인정이 늘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또 그렇다고 무작정 인정에 대한 욕구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말했지만 인정은 참는다고 참아지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칭찬받으려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인간의 본능이다. 이는 나이가 들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상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없는 성과를 만들고 부풀리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왔다. 물론 나라고 다르지 않다.


  그래서 좀 더 쉽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 인정을 타인에게 받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는 하늘만큼이나 관대한 ‘나’에게 받는 것이다. 나에게 좀 관대한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니까. 


  “건강을 위해 소주 두 병 마실 걸 한 병 마셨어.”

  “담배보다 참기 힘든 게 술이라던데 대단한걸.”

  “다이어트를 위해 탕수육 시키는 걸 꾹 참고 짜장면 곱빼기만 먹었어.”

  “짜장면과 탕수육의 조합을 포기하는 건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일이지.”

  “다음 달이 수능이라서 보고 싶은 유튜브를 다섯 시간만 봤어.”

  “배터리가 끝날 때까지 보는 게 유튜브인데... 대견하다.” 

  “팀장님이 시킨 보고자료를 완성하였어! 기한이 삼 일이 지나 크게 혼났지만.” 

  “완성했다는 게 중요하니까.”


  그 관대함의 기준 역시 스스로가 세우기 나름이다. 함께 그에 대한 보상까지 준비한다면 삶에 큰 동기가 될 것이다.  


  “연 초에 목표로 하였던 일 년에 책 한 권 읽기를 달성하였으니 나에게 콘솔 게임과 신작 게임 타이틀 10장을 선물하자. 쉽지 않은 목표였어. 역시 독서는 힘들어...”

  “고생했네. 내년에도 가열 찬 독서 잊지 말고.”

  “쉽지 않은 도전이라 내년에는 2년에 한 권으로 바꾸려고. 보상은 동일해. 난 관대하니까.”


  나에게까지 매정할 필요는 없다.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한 ‘시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토론, 그 놀라운 매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