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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Mar 20. 2020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있다

리틀 포레스트 - 멈춰야 할 때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회사에 쌓여 있는 자기계발서들을 보며 사람들의 배우고자 하는 무시무시한 욕구를 엿본다. 실제 인류는 그 성장을 위한 끝없는 욕망 덕분에 엄청난 성장과 기술적 발전을 이뤄왔다. 하지만 난 인류의 발전까지는 모르겠고 나 하나 발전시키는 것 정도는 관심이 있기에 책들을 살펴보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온다.


  부동산과 주식을 필두로 온갖 재테크 관련 도서는 물론 대화법, 설득법과 같은 온갖 비법들과 나를 다독이고(!) 조직에서 살아남는 '필살' 노하우까지 배워야 할 것들이 도대체가 끝이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나 빼고 다른 모든 이들이 그렇게 치열하게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난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걸까 라는 자괴감 혹은 패배감이 든다는 거다.


  모두 함께 놀면 좋겠지만 다들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러니 난 그저 곁에서, 부지런한 이들이 이뤄낸 온갖 발전과 성장, 풍요로움을 (누리고)감사해하며 노력하는 이들을 칭찬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어느새 나 역시 그 '발전'과 '성장'의 경기장 안에서 뛰고 있다. 마치 나태지옥의 끝없이 도는 굴레 안의 한낱 미물과 다를 게 없다.


  그러니 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왜 우리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나아가야'만 하는 걸까? 인간이 ‘성장’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비극들을 돌아보며 대체 뭣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발전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끝없이 계속 발전하고 성장해 나간다면 인간과 인류는 어떻게 될까? 100년, 200년이 지나면 말이다. 그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인간은 어쩌면 그냥 내버려만 둬도 스스로 멸망할지 모른다. 굳이 번거롭게 미래에서 올 필요까지도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찬란한 미래가 예상되지 않는다. 파괴된 자연은 온갖 자연재해 혹은 재앙을 가져올 것이고, 어떤 영화에서처럼 막을 수 없는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인류가 멸망할 거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아 그런 운명을 피한다면 인공지능 로봇의 공격으로 더욱 비참하게 멸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멈춰야 할 때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나 혼자 태평하게 놀고 있기 불안해 다 같이 놀자는 ‘유혹’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혼자만의 외침은 아무도 듣지 않을 것이고 몇 명 듣는다면 인생의 패배자 취급을 하며 한심하게 쳐다볼지도 모르겠다.

  그런 차가운 시선은 또 싫으니 나 역시 쏟아지는 자기계발서 안에 내가 볼만한 '생존 지침'은 없는지 기웃거려 본다. 마치 불 속으로 날아드는 벌레처럼 맹목적으로.  

  하지만 이러다 죽고 나면 또 다 뭔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 본문 자료 이미지는 영화 <터미네이터:제니시스> 중 한 장면이다. 시리즈는 회를 거듭할수록 터미네이터가 봐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실은 진작에 인류를 멸망시켜놨지만 깐죽거리던 녀석들이 없으니 재미가 없어 과거로 돌아가 살려주고, 같이 놀아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나 주인공들을 못 죽일 수도 없다. 그것도 애써가며.


* 상단 이미지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이다. 왠지 모르게 무척이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였다. 여유와 '자연'이라는 클리셰가 무척이나 노골적이지만 그렇다고 수긍하고 설득되지 않을 수도 없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그러기엔 더 재미있는 영화들이 너무도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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