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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전쟁 in 스웨덴

21-1. 웁살라(Uppsala)-스웨덴의 천년 고도를 따라 걷다

by Tangpi

* '감라 웁살라(Gamla Uppsala)'에서(2020.7월)


"우와, 여기는 경주에 온 거 같아!"

"맞아, 신라나 백제시대 고분하고 똑같아!"

감라 웁살라의 고분군(2020.7월)


Team Kungsleden 팀이 도착한 곳은 웁살라(Uppsala) 시 중심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감라 웁살라(Gamla Uppsala, 영어 Old Uppsala)였다.


"감라 웁살라는 선사 및 초기 중세시대의 스베아(Svea)인들의 문화ㆍ종교ㆍ정치적 중심지로 13세기까지 번성했는데, 보다시피 기독교 전파 이전 지배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약 300개의 고분군으로도 유명해.


13세기 웁살라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 오딘, 토르, 프레이야의 신들을 숭배하던 지역이었는데, 인신공양을 수반한 축제도 열렸으며, 기독교 포교시대에는 이교도들의 저항 중심지였다고 하는군.

650년경 모습(발굴유적 기준).jpg 감라 웁살라 지역의 마을과 고분 추정도(감라 웁살라 표지판, 2020.7월)


결국 기독교 세력이 우세해지면서 이러한 이교도들의 신전들은 쓰러지고 그 터에 대성당이 세워지기도 했어. 그런데 이 성당이 불타면서 기독교 전파와 십자군으로 유명한 성왕(聖王) 에리크 9세의 유물함이 1258년 만들어진 고딕 양식의 성당인 웁살라 대성당(Uppsala Domkyrka) 자리로 옮겨졌고, 사람들의 정착지는 좀 더 남쪽으로 이동하여 현재의 웁살라 시가 되었지. 이후로 웁살라는 스웨덴 교구의 중심이 되었어.


자, 이제 시내로 가볼까?"

20200706_155905.jpg 감라 웁살라 대성당(복원물, 2020.7월)



"오~ 웁살라가 작은 도시는 아닌가 봐?"


"웁살라는 웁살라주의 주도로 스웨덴에서 스톡홀름, 예테보리, 말뫼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도시야. 스톡홀름의 북쪽 70km 정도 떨어져 기차로 40분 정도이다 보니, 스톡홀름에서 일하는 웁살라 주민들이 많기도 해."


"'웁살라'라고 해서 이슬람 하고 관련 있는 줄..."


"여기 어떤 교민은 교환학생으로 지원할 때 '제일 웃긴 이름'의 대학이라고 지원하기도 했대..ㅋㅋ"

스크린샷 2025-09-06 143552.png 인희 씨는 내가 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문화과 직원으로 성실하고 똑똑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ㅎㅎ... 웁살라는 스웨덴 교회의 대주교좌가 있고, 스웨덴 교회학 연구의 본산으로 유명한 곳이야. 그 상징적인 건물인 웁살라 대성당(Uppsala Domkyrka)은 높이 118.7m로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성당인데, 에리크 9세 이외에도 독립 시조인 구스타브 1세 바사 대왕 등 유명 인사들이 묻힌 곳으로도 유명하지.


현재 스웨덴의 국교는 '루터교'인데, 이는 1593년 '웁살라 종교회의(Uppsala möte)'에서 결정된 것이고, 이로써 웁살라 대주교좌는 스웨덴 교회의 최고 지도기관이 되었어."

20210901_154912.jpg 웁살라 시내의 모습(2021.9월)


"사실 웁살라는 '교육의 도시'로 더 유명하잖아."


"맞아. 룬드대, 왕립공과대(KTH)와 함께 스웨덴을 대표하는 명문대로 '2025년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93위를 차지한 웁살라 대학교는 어찌 보면 웁살라 도시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어(참고로 우리나라는 서울대(31위), 카이스트(53위), 연세대(56위), 고려대(67위), 포항공대(98위)가 100위 안에 포진).

웁살라대와 학생들(2021.9월)

이 대학은 웁살라의 대주교 야코브 울프손(Jakob Ulvsson, 1430~1521)이 1477년 세운 대학으로 원래는 종교 교육기관이었다고 하며, 스웨덴은 물론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이야.


17세기 스웨덴 제국의 확장과 함께 웁살라 대학교는 국가 관료제 인재 양성의 핵심 기관으로 성장했고, 1702년 대화재로 큰 피해를 입는 시련도 있었지만 500만 권이 넘는 책과 약 6만 건의 원고를 소장한 북유럽과 스웨덴 최대 도서관인 웁살라 대학 도서관(Carolina Rediviva)이 19세기 건립되는 등 양적 성장도 거듭하며 최고의 대학으로 발전했지.


20세기 후반 이후에도 웁살라는 스웨덴에서 가장 역동적인 연구 중심지로 성장했고, 웁살라 대학교와 스웨덴 농업과학대학교(SLU) 등 생명공학, 제약, 환경과학 분야를 선도하는 세계적 연구기관이 다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해. 최근에는 웁살라 대학교의 주도로 바이오산업의 중심지로도 부상하고 있는데, 정말 도시를 돌아다녀 보면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니깐."


"이 대학은 세계적인 식물학자 겸 동물학자 칼 폰 린네, 섭씨온도를 고안한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인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old),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 같은 유명인과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해."


"와, 유엔사무총장도 나왔어?"


"스웨덴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외교관인 그는 미소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53년 47세의 나이로 유엔사무총장에 오른 인물이지. 1961년 불의 항공기 추락사고로 아프리카 콩고에서 타계할 때까지, 초강대국들의 영향력 앞에서 약소국들과 제3세계의 목소리를 대변한 '진정한 국제기구 공직자(Genuine UN person)'로 기억되었고, 생존자들에게만 수여되던 노벨평화상이 이례적으로 1961년 사후 그에게 수여되었다고 해.


특히, 그는 취임 초기 1953.7월 종식된 한국 전쟁과도 관련 있는 인물로 용산 전쟁기념관이나 오산 스미스평화관 등에 소개된 한국 전쟁 관련 주요 인물로도 알려져있어. "UN은 인류를 천국으로 보내주고자 창설된 것이 아니다. 지옥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함이다" 말로도 유명한 그는 한국전쟁이나 중동전쟁 등 세계 분쟁에 적극 개입하여 평화적인 결과를 도출하고자 노력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지.


0 용산전쟁기념관.png
0 오산 스미스 평화관.png
유엔 관련 전시관 내에 있는 다그 함마르셸드 소개


웁살라 중심부에는 '다그 함마르셸드 재단'이 그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옆에 작은 공원묘지에 있는 함마르셸드 가족묘에 소박하게 그의 묘비가 있는데 아주 작아서 찾기가 힘들다고 해. 누군가는 이런 모습이 공명심을 멀리해서 '우리들 중 하나(He was one of us)'라고 묘사되었던 다그 함마르셸드의 진정한 모습이라고도 하지."



"그래, 그런데 이 웁살라 대학교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인물과도 관련이 있다는 거 알아? 과거 최고 인기스타였던 최진실 배우가 1991년 주연한 영화의 실제 인물로도 알려진...."


"정말?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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