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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Apr 03. 2021

과거로 이메일 써보기 1

그들은 나에게 답장을 써줄 것인가

지난해 10월 말인가 회사 내부망에 '업무용 공용메일의 서버가 너무 꽉 차서 2017년 이전 메일은 전산팀에서 한 달이 지나면 자동으로 모두 삭제할 것'이라는 공지가 떴다. 처음 공지가 떴을 때는 너무 바뻐서 지우면 지우는 거지 뭐... 라고 생각했다가 11월 들어 숨 좀 돌릴 틈이 나니 '혹시 이전 메일 중에 지우면 안되는 거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길 기회는 없었고 그런가부다... 하는 생각으로 지나쳐 버렸다. 


그러던 11월 셋째주 주말... 간만에 찾아온 여유를 즐기다보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예전 메일한 번 체크해볼까 생각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2007년 10월,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고 부여받은 이 메일은 말 그대로 이곳에서의 내 역사였다. 아... 그래 이런 일들이 있었지... 그땐 참 미숙했고, 또 조마조마했다 이렇게 작은 일로도 기뻐했었구나... 하면서 지우고 필요한 내용은 보관함으로 옮겼다. 영어메일로 회신받은 내용 중 써먹을 만한 좋은 문장들, 업무상 지금도 참고할 만한 내용들을 보다보니 보관함으로 옮기는 것은 전체 메일의 5% 정도에 불과했지만, 나름 이런 아까운 자료들이 사장 될 뻔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2007년 처음 외교부로 이직하고 모셨던 과장님과 나눴던 메일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첫 과장님이었으니 기억이 선명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던 나에게 늘 편안한 웃음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분이었다. 


내가 처음 발령받았던 곳은 여권과였고, 그래서 본부와 떨어진 코리안리 빌딩으로 출근하느라 "외교부 본부에 근무하려고 했는데 이런 별관으로나 출근하다니"하며 처음에 실망했었지만, 그는 늘 나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하다보면 좋은 날이 오는 곳이 외교부"라며 격려를 해주셨었다. 

2008. 8월, 정든 여권과를 떠나며 아쉬움에 한 컷

덕분에 나는 점차 적응해가면서 몇 년간 개정이 안되던 여권편람도 두 번 개정판을 내고, 당시 미국비자면제 프로그램 시행의 전제 조건 중 하나였던 전자여권 사업과 관련법 개정에도 참여하는 등 나름 성과를 내며 직원들과도 친해지고 직장생활에 재미를 붙여갔다. 자주 야근을 하던 나에게 과장님은 저녁을 사주시면서 이런 저런 본인의 외교부 생활을 얘기해주었고, 저런 성실함 때문에 고시 출신이 아닌데도 과장에 올랐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함은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그렇다해도 나는 본부 청사 근무에 목말라했기에 1년 뒤 원하는대로 다른 부서를 옮기게 되었고, 과장님은 "그냥 여기서 1년 더 근무하고 해외근무 나가도 되는데..."라고 하면서 섭섭해하셨다. 이후 나는 너무나도 고된 근무에 지쳐갈 때 쯤 아들을 낳게되었고, 아내가 출산하러 들어가는 것도 못본 채 회의 중에 뛰어나와 아내가 아들을 낳고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당시는 아내가 출산했다고 휴가를 내는 것도 언감생심 이었던 시절이었고, 옮긴 부서에서는 축하한다는 꽃바구니는 커녕 메시지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부서를 옮긴지 몇 달 되지도 않은 것도 있지만 직장을 옮긴지 얼마 안되다보니 축하해주는 사람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회복실에서 낑낑대며 일어나는 것을 본 뒤 다시 밤에 사무실로 돌아와야 했었다. 서운함과 쓸쓸함에 발이 무거웠다.


입원실을 나서는 순간, 누가 꽃 배달을 왔다고 하길래, 누가 보냈지? 하고 보니 바로 여권과장님이 보내주신 것이었다. 어찌보면 붙잡는 자신을 떠난 직원인데, 공지사항으로 뜨지도 않는데도 그는 잊지않고 축하를 보내준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서러움과 감사함으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감사하다는 말씀이라도 전하려고 휴대폰을 켜는데 그로부터 장문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박서기관, 아들 낳았다지요? 벌써 20여년 전, 딸이 태어날 때 아내와 같이 보고 또 보고하면서 밤새도록 웃던 것이 기억나요. 지금은 그 딸이 그 때 아내처럼 컸는데, 같이 웃던 아내가 많이 생각나네요. 부인 손 꼭 잡아주고 수고했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그 때 그렇게 같이 웃었던 아내가 오늘따라 생각이 더 나네요. 아들도 생겼으니 행복하세요.'


나중에 알았지만 과장님은 몇 년 전 상처를 하고, 딸은 미국 유학을 보낸 뒤 군 입대를 앞둔 아들과 둘이 살고 있었다. 이후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자 '지금 생각하면 지난 세월이 꿈만 같아요. 일도 중요하지만 가족들과 꼭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세요. 금방 갑니다'라고 짧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이후로 나는 본부 생활을 마치고 포르투갈로 첫 해외근무를 나갔으며, 과장님은 외교부 생활의 마지막으로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에 있는 라스팔마스로 가셨다. 나는 가끔 메일로 안부도 드리고 휴가때 찾아뵙겠다고 했으나, 첫 근무지였던 포르투갈에서 나는 너무나도 아는 것도 없었고 뭔 일이 그리 많던지... 하루살이같이 살았다. 


결국 라스팔마스는 가보지도 못하고, 과장님은 주라스팔마스분관장을 끝으로 퇴직하셨다. 이후, 나는근무지를 브라질로 옮긴 2013년경 과장님에게 안부 메일을 드렸는데 고맙다며 이메일로 답장을 주셨다. 많이 쓸쓸함이 묻어났다.


과장님이 보내주셨던 메일. 조용하고 수수한 그의 성격이 묻어난다.

 

이후로 과장님과의 연락은 희미해져갔다. 핑계라고 하면 핑계겠지만, 너무 바빴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없던 나는, 과거의 메일들이 다 삭제된다는 본부의 공지에 겨우 그 흔적들을 더듬고, 다시 떠올렸던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실까....'



이후 다른 메일들도 확인해 내려가면서, 피식 웃기도 했다. 메일을 주고받은 사람은 수백명이었지만, 궁금해지는 사람은 손꼽힐 정도였다. 그 손꼽히는 사람들도 이제 이 메일이 삭제된다면 내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겠지.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과장님에게, 그리고 이 사람들에 지금 메일을 보낸다면,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나는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메일 대상을 몇 명으로 추렸다.


1. 여권과장님

2. 1999년 '아이러브스쿨'로 한 번 만나고 메일 한 두번 했던 초등학교 친구

3. 2000년 미국에 교육을 같이 받고 2011년까지 연락했던 선배

4. 2008년 외교부 청년 해외 인턴사업 담당자로 근무시 여러번 상담해주었던 대학생

5. 2008~2010년 첫 해외 근무시 많은 도움을 주었던 포르투갈 직원

6. 2016년 외교원에서 국장급 교육 담당시 여러모로 아껴주셨던 국장님이, 이번 메일 점검시 알고 보니 이미 2013년 브라질 근무당시 업무차 메일을 주고 받았던 분



저녁을 먹고 몇 시간에 걸친 고민과 작문 속에 메일을 보내고 나니 잠들 시간이 되었다.

누워 천장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들은 나에게 답장을 써줄 것인가'

만감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61fmKQyTak

그들은 나에게 답장을 써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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