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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Nov 18. 2020

떠나는 영혼 지켜보기

같이 숨쉬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함께 있기에 감사해


스웨덴의 15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Skogskyrkogården(영어로는 Woodland Cemetery). '국립 공동묘지'라고 소개되는데,

스웨덴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숲속의 묘지'라는 뜻이다.


'죽으면 숲으로 돌아간다'는 북유럽의 장례 문화가 담긴 곳으로 1917년에서 1940년간 조성되었으며 스웨덴의 대표 여배우 Greta Garbo를 비롯한 10만여 기의 묘가 있는 스웨덴 최대의 공동 묘지 중 하나이다.


현대 추모 공원 건립에 큰 영향을 준 점을 인정받아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래, 공동묘지라는 음산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평상시 시민들이 조용히 산책을 하거나 조깅, 자전거를 타는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이미지도 크다.   

사진출처 : Skogskyrkogården 웹사이트

(https://skogskyrkogarden.stockholm.se/)


스톡홀름 남부에 위치해 우리집에서 차로 한 10여분이면 도착하다보니, 나도 주말에 가끔 가족들과 가서 아이는 자전거 연습을 시키고 아내와 함께 조용히 쉬다오기도 하였다.  


주변을 산책하다보면 가끔 중국인과 같이 스웨덴인이 아닌 이들의 묘비를 볼 때도 있었고, 그럴때마다 고향을 떠나 여기 먼 북구의 나라에서 숨을 거둘때 얼마나 고향 하늘을 그리고 가족들을 그리워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아주 먼 남의 얘기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 스톡홀름에 있는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는 스웨덴어를 전공했던 아버지를 따라 한참 사춘기가 시작될무렵 스웨덴에 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몇 년 뒤 한국에서 직장을 구해 한국으로 돌아갔고, 남겨진 어머니와 형과 그 셋은 스톡홀름에서 이십여년을 살았다.


어머니는 스웨덴이 자랑하는 복지 관련 시설에서 유능하고 친절한 요양관리사로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두 형제를 열심히 키웠다. 언뜻 보기에 형과 나이 차이가 꽤 나보이는 그는 막내로 특히나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올해 8월 그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정년 퇴직을 하게되어 20여년간의 기러기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고, 그의 가족들은  스웨덴에서 가족 모두가 아파트가 아닌 가정집을 구해 꽃도 키우고 강아지도 돌보면서 채소도 키우는 소박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1월 중순 아버지가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오면 재회하는 그림같은 미래가 그 앞에 펼쳐져 있었고, 가족들은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4시만 되도 밤처럼 변하는 스웨덴의 늦가을 10월의 마지막 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의 어머니는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정말 갑자기. 그의 아버지가 돌아와 재회하기로 한 날이 19일밖에 남아있지 않은 날이었다.


오랫동안 병상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건강했었던 어머니이기에 그의 죽음은 아들에게 말로는 표현못할 충격이었다.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목놓아 울었고 나는 그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이 한 집에 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나는 오늘 Skogskyrkogården의 믿음의 예배당(The Chapel of Faith)에서 거행된 그의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누군가에겐 휴식공간이라고 여겼던 이 공원이 누군가에겐 숲으로 돌아가는 공간이란 사실을 일깨워 주는 시간이었다.


조문객들에게 나누어준 식순 카드에는 62년의 생을 마감한 고인의 사진이 나지막히 웃고 있었다.

1시간여 진행된 장례식은 잔잔한 음악과, 시낭송, 헌화를 통해 고인을 추억하며 나지막한 흐느낌 속에 스웨덴 특유의 차분함과 함께 이어졌다.

믿음의 예배당 내부.

사진출처 : Skogskyrkogården 웹사이트

(https://skogskyrkogarden.stockholm.se/)


그 중 조문객들을 가장 눈물짓게 했던 것은

가족 대표로 나온 막내 여동생의

마지막 작별 인사(hälsningar)였다.


"언니는 꽃을 참 좋아했어요.

오늘 여기 계신 분들로부터 많은 꽃들을 받아

언니가 아주 기뻐할 것 같네요.

하지만, 언니가 꽃보다 더 사랑했던 것이 있었어요.


우리 자매는 셋이 모두 떨어져 살아왔어요.

큰언니는 스톡홀름에, 둘째언니는 도쿄에, 저는 미국에.

우린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아왔어요.


그래서 올해 초에 셋이서 통화를 하면서

제가 제안을 했어요.

우리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 한 집에 모여살자.

둘째언니는 너무 좋다고 했어요.


큰언니는?

큰언니는?

왜 답 안해?

왜? 뭐해?


한참동안 말하지 않던 큰언니가 말했어요.


나는... 00씨(남편)가 있잖아...


언니는 늘 00씨, 00씨, 00씨 였어요.

언니는 정말 남편을 사랑했어요.

그렇게 정말 형부를 사랑하고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말이 서툴어 할 줄 아는 한국 단어는

'큰언니'밖에 없는 것 같은 막내동생이었지만,

그의 마지막 잇지 못하는 말 한마디는

00씨-남편의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예배당 안의 모두가 눈물을 지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예배당 가운데 놓인 관에 손을 얹고

쓰러질 듯 몸을 가누지 못하며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지금껏 봐왔던 그 어떤 이별보다 슬픈 장면이었다.



조문객들이 하나둘씩 헌화를 마친 후,

예배당의 문이 열렸다.

스웨덴 출신의 전설적인 가수 Ted Gärdestad의

'För Kärlekens Skull(사랑을 위해서)'가 흘러나오면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났다.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에서 시작해,

고인을 추억하며 그리움을 쏟아내고,

다시 고요한 애도 속에 마무리를 짓는,

스웨덴 사람들의 떠나는 영혼을 지켜보는 모습은


죽으면 숲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에

떠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공존하도록 만들어 놓은

Skogskyrkogården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을 감사해야한다는 것.


오늘 저녁 내가 집에 돌아갔을 때,

내 집에 내 아내가 있고

내 아이가 어제와 같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며

내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할 수 있기에


감사하고, 느끼며, 사랑해야겠다 것.

그래서 스톡홀름의 이 긴긴 밤조차 감사하기만 하다.



Ted Gärdestad의

'För Kärlekens Skull(사랑을 위해서)'

https://www.youtube.com/watch?v=aW1L5yZdAgQ


Utanför fönstret slår våren ut

Marken blir grön igen

Allt som var dött väcks till liv

Det kan också vi

Ute till havs styr en fiskebåt

Längs en fri horisont

Den gungar så tryggt in mot hamn

Som jag i din famn

Så länge vi älskar


창밖에 봄이 오고 있어

땅은 다시 녹색을 띄어

죽었던 모든게 살아나

우리도 그럴거야

밖 바다에는 고깃배가 있어

저 지평선을 따라서

항구를 향해 나아가지

마치 네 품의 나와 같이

우리가 사랑할 때 까지


Åh, det är för oss solen går opp

Lyser som guld för kärlekens skull

Åh, solen går opp så oskuldsfull

Lyser på oss för kärlekens skull


해는 우리를 위해서 뜨는거야

마치 금처럼 빛나지

너무나도 순수하게 해가 뜨고있어

사랑을 위해 우리를 비추지


Högt på ett berg står en katedral

Och pekar upp mot skyn

Men det är för himlen i dig

Och jorden i mig

Vi älskar varandra


산 위에 성당이 있어

하늘을 가르키고 있지

너 안에 하늘이 있고

내 안에 땅이 있어

우린 서로 사랑해


Åh, det är för oss solen går opp

Lyser som guld för kärlekens skull

Åh, solen går opp så oskuldsfull

Lyser på oss för kärlekens skull

Lyser på oss, för kärlekens skull


해는 우리를 위해서 뜨는거야

마치 금처럼 빛나지

너무나도 순수하게 해가 뜨고있어

사랑을 위해 우리를 비추지

사랑을 위해 우리를 비추지



식장에서 나누어준 식순 카드. 스웨덴에서 활동한 핀란드의 표현주의 시인 Edith Irene Sö dergran 의 시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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