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ngpi May 23. 2021

내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 1

날 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이어진 그림

내가 만화를 잘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린 지는 좀 오래됬다. 숨을 쉬듯이 만화는 나에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에이 이런 거 그려서 돌리면 사람들이 우습게 보지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늘 그리고, 공유하고 같이 웃고 그것이 주는 쾌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철없는 만화를 또 그리나부다.


학생 때는 만화책을 만들기도 했지만, 직장 생활을 한 이후로는 간간이 몇 컷 그릴 뿐 장편을 그린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가 없다. 하지만, 간간히 마치 수도꼭지 졸졸 새듯이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아이템을 가지고 계속 만화는 그린다. 대상은 제한이 없다. 상사,동료,가족... 그래서 내 만화는 '생활' 만화에 가깝다. 그렇게 만화는 항상 내 곁에 있어왔다.


휴가를 앞두고 직원들이 휴가내는 것을 부담스럽게 했던 워커홀릭이었던 상사를 빗대 그린 것.




내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기억할 수 있는 시간 전 부터다. 아주 어렸을 때, 집에 장난감이 별로 없으니 형은 숟갈로 사발을 두드리면서 놀았다는데, 나는 연필하고 종이를 주면 하루종일 동그라미를 그리고 앉아있었다고 한다. 그림인지, 낙서인지, 글씨를 쓴 건지 모르겠지만, 나의 그림그리기는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러다가 국민학교 입학 전 '졸라맨' 형식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학교에 들어가선 달력을 8등분으로 찢어 만화를 그려 10원씩 받고 애들에게 나눠줬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던 만화는 어느덧 사람의 형태를 갖춰갔고, 3학년인 82년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만화로만 구성된 월간지'인 보물섬이 창간되면서 나도 만화책 형태의 작품을 만들었다. 처음 그렸던 만화는 '콩콩이'이라는 제목으로, 학교에서 만화책이랍시고 그려나가면 애들이 주변에 몰려들어 보곤했었다.


당시 나는 만화를 그리기는 했지만 만화방을 다니거나 만화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화방에 처음 간 것도 대학교 3학년때 집 열쇠를 잃어버려 어디 시간 때울 때를 찾다가 처음 갔었다. 나는 만화를 보는 것보다 그리는 것이 행복했다. 만화를 그리다보면 만화의 배경에 간 것으로 착각에 빠졌고 그래서 그리면서 실실 웃기도 하고, 오늘은 하와이를 가볼까~하면서 해외로 나가는 주인공을 그리며 대리 만족을 했었다. 나의 가장 오래된 독자인 형도 내 만화를 좋아했다.


집이 이사하는 과정에서 없어지긴 했는데, 주로 아버지 회사에서 남는 프린터 용지 뒷면을 합쳐 16~20면 정도의 만화책을 만들었고, 친구들이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나름 유머가 있던 내 만화를 많이들 좋아했었다.


당시 퍼스널 컴퓨터 바람이 불면서 60명 정도되는 한 반에 부잣집 애들 1~2명 정도가 애플 2 같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고, 애들은 방과 후면 대여섯명이 몰려가 5.25인치 디스켓을 넣고 돌리면 녹색화면에 떠오르는 오락을 순번을 기다리며 신기함으로 기다렸다. 가끔 컴퓨터 가진 애들이 나만 몰래 집으로 데려가서 오락을 시켜주었는데, 그 조건은 '내 앞에서 다음 만화 장면을 그려줄 것'이었다. 독자가 있다는 생각에 꽤 우쭐하며 친구가 준 빼빼로를 물고 집에 돌아오던 것이 생각난다. 국민학교 졸업 교지의 표지를 그릴 때까지 친구들은 나를 '만화를 그리는 애'로 기억해주었다.


1982.10월 창간 당시 파격적이었던 만화 전문 잡지 보물섬. 국민학교 졸업 교지에 실린 촌스러운 내 그림(1985년)


동네 그림 수준이던 만화 수준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실력자들을 만나면서 조금 나아졌다. 당시 유명했던 건담 시리즈나 암암리에 한국에 들어왔던 일본 애니메이션 마크로스 등을 바탕으로 수준급의 로봇 만화 실력을 갖춘 애들이나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학습 만화에 이르기까지 좋은 교재들이 넘쳐났었다. 특히 2학년때는 두명의 친구들과 함께 만화책을 100권까지 만들었고(학교를 다닌 건지 만화 그리러 다닌건지...) 3학년때도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도 열심히 그렸다. 그래서 원하는 학교도 가지 못하긴 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예 단순 만화책에서 요즘으로 치면 라이트 노벨 수준의 만화책들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에 대한 패러디도 많이했는데, 예를 들면 수학 선생님 중 "수업시간에 조는 놈들은 숟갈로 눈알을 퍼버리겠어!"라고 종종 말씀하시는 분의 그림을 그리고 정말 숟갈로 눈알을 들고있는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 중에 머리가 나쁜 놈은 엑스레이를 찍어도 철대가리라 엑스레이가 안찍히고 사진이 나왔다는 등의 그림을 그렸다. 나중에 그 숟갈 선생님에게 걸렸는데, 인품이 좋은 분이라 '눈 좀 크게 그려 임마'라며 한참 웃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만화 그리는데 정신 팔리다보니 그해 대학입시에도 실패했다.ㅠㅠ

    

가장 오래된 나의 만화책인 '학도병 3총사(1987년)'와 '방구쟁이 태훈이(1989년)'. 잘 보관하지 못한 게 아쉽다.



대학을 들어가서 나는 좀 더 자유롭게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 워낙 학생 수가 적은 학교다보니, '취미가 만화그리기입니다'라는 말에 학보사 컷 기자로 오라는 둥 미술동아리 만화분과위원회로 들어오라는 둥 여러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나는 정통 만화를 그려보겠다는 생각에 만화분과위원회로 오라는 선배를 찾아갔는데, 회원이 몇 명이냐는 질문에 '너랑 나하고 둘이다'라고 말하던 것이 생각난다.


하여간, 1학년 때 동기생회지, 2학년 때 학보사에 가끔 만평도 내고, 2학년때와 3학년때는 교지에 '한국인의 특성'과 '율리시스의 활-수사권 독립'에 대한 기획만화를 내었다가, 졸업 직전에는 Adachi Mitsuru라는 작가에 심취해 순정만화틱한 그림에 빠지기도 하고 아예 소설도 쓰곤했다. 아... 그래서 그런가 그해 대학원 입시에도 실패하는 일관성을 보여주며, 나의 학창시절 만화 역사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2부에 계속)

  

1학년 때 동기생회지에 올린 단편 소설에 그린 만화 컷
학보사 만평(1993년), 교지에 낸 소설 파스텔(1995년)
Adachi Mitsuru의 영향을 받아 그렸던 습작들(1995년)


매거진의 이전글 대사관에서 만난 사람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