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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Jun 06. 2021

내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 3

대외적인 첫 데뷔, Portugal Story

서른 여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외교부로 전직하고 숱한 어려움과 좌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좋은 점 중 하나는 아무래도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는 인생이다보니 보고 배우는 점도 많고 그것이 만화의 소재나 영감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출장이 많은 부서에서 근무하다보니 힘든 점도 많았지만(의자에서는 절대 잠을 못이루는 특성상 나이가 들수록 이코노미석에서 10시간 이상 타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었고 언젠가 이걸 만화로 그려봐야지... 란 생각을 늘 했었지만, 늘 바쁜 일정은 그럴 여유를 주지못했다.  


그러다 첫 공관 근무지였던 포르투갈에서의 시간들이 마무리되어갈 즈음, 포르투갈은 계속적인 경기불황에 시달리다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고 경제 담당이다보니 유럽 주재 특파원들뿐아니라 국내 언론사에서도 적지않은 문의가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처음 가졌던 생각처럼 당시 한국에서 포르투갈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좀 낡은 유럽의 뒷 골목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상황에서 구제금융까지 받게되니 비전없는 국가라는 부정적인 인식만 깊어갔다.


출근할때 보는 실업자 수당 신청을 위해 늘어선 사람들, 구조조정에 시위를 거듭하는 길거리, 식당을 가도 어두운 사람들의 표정들... 2년 넘게 살면서 정들었던 어쩌면 나의 첫 사랑같은 나라가 경제위기에 신음하는 것이 안타까웠고, 나와 내 가족의 첫 해외생활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던 이 나라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져갔다. 집에 돌아와 그동안 라면박스로 두개나 모았던 자료들도 별 쓸모없이 버려야하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버리기엔 그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느끼고 보았던 시간이 너무 아깝기도 했고, 시집가는 딸이 마지막으로 친정에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다는 마음에 포르투갈에 대한 만화를 그려보기로 했다.


저녁에 퇴근해서 포르투갈과 한국과의 관계, 왜 IMF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는지, 그럼에도 포르투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등을 중심으로 100페이지 정도를 목표로 그리려했는데 시간도 없고 막판에는 1주일 휴가를 내서 그렸는데도 결국 30쪽 정도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아래 첨부 파일 참조).


만화는 질의를 해왔던 기자들과 당시 첫 부임했던 지상사 법인장들에게도 보내주기도 했지만, 어찌보면 나의 포르투갈 생활에 대한 정리였고 첫 사랑에 대한 보은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해외 근무가 끝날때마다 그 나라에 대한 무언가를 정리하고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포르투갈을 떠난 후, 2012년 7월 부내에서 'MOFAT STORY'라는 자체 SNS가 나와 그때 만화를 보냈는데 의외로 인기를 끌었다. 부내 사람들과 가족만 볼 수 있었음에도 2주만에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았고 많은 칭찬도 받았으며, 9월까지 종합 순위 1위까지 하고 장관상도 받으며 나중엔 본부에서 만든 책자에도 실리게 되었다. 비매품이긴 했지만, 나의 첫 작품 대외 출판 데뷔였다.

2012.9월 종합 순위 1위!!



동료 직원들의 여러 글이 있었지만 만화로는 내 작품이 유일했다.



이후로 브라질, 중국 근무를 거치면서 비슷한 만화를 그리려는 생각과 자료 수집은 이어졌지만, 실천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너무 바빴고, 여유가 없었다. 브라질 있을 때는 도저히 시간이 될 것 같지 않아 글로만 정리했고, 중국 역시 자료만 쌓아두었을 뿐이다. 스웨덴도 거의 마찬가지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공무원 중에 외교관들같이 책을 많이 발간하는 직종은 없는 것 같다. 한 달에도 몇 권씩 나온다. 나까지 거기 합류할 만큼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나는 만화로 책을 낸 첫 외교관이 되고 싶다. 쉽게 읽히고, 또 외교부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비주류의 조연들의 삶과 외교관으로 보았던 만났던 사람들의 글을 멀게는 어렸을 때 읽었던 '원미동 사람들'이나 최근 보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처럼, 사람냄새 나는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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