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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Jul 16. 2021

내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 4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생각보다 만화 그리기를 오래했네요! 근데, 왜 전혀 엉뚱한 직업으로 살아왔나요?"

이번 글을 쓰다보니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렇다. 만화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의 이전부터 나와 함께해왔고, 지금도 같이하고 어쩌면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니 정말 오랜 시간을 같이 해왔다. 어쩌면 운명같은... 그것이 나에게 어떤 큰 돈을 벌어다주거나 명예를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내 곁에 있었고, 나는 만화와 함께하는 순간이 행복했다. 삶의 피난처였는지 모른다.


2017년 서울에서 개최된 픽사애니메이션 특별전(5월)과 세계최대의 만화축제인 코미콘 서울(8월) 행사장에서


그렇다고 만화가 나에게 아무것도 안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무뚝뚝한 성격에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나에게 만화는 아내와 아들에게 나의 메시지를 전달해줄 수 있는 메신저였다. 아내도 그를 좋아하고 이제는 시키지 않았는데 아들이 어느 때부터 지 혼자 만화를 그리고 스토리를 만들고 책을 만들어 나에게 보여준다(물론 내용은 뭔 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구성과 그림 실력은 엉망이다). 신기하다.  

맨 마지막 그림은 맨날 나와 아내가 혼내도 꾿꾿하게 벼텨내는 아들이 신기해서 그린 것

 

직장에서도 여전히 별 말이 없는 나에게 만화는 '희한한 재주를 가진 사람'으로 포장을 해준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젊은 직원들과의 소통에 있어 만화는 좋은 창구역할을 해준다. 계급과 세대를 뛰어넘고,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요즘같은 세대 단절 시대에 다행스런 일이다.


좌) 출장 직원에게 사무실에 일이 잔뜩 밀려있다고 보낸 귀국 축하(?) 메시지, 우) 총영사관 근무시 부(副)총영사님이 유독 예쁜 직원만 가면 화기애애한 거 아니냐고 풍자한 그림
좌) 미국 출장가는 직원(P와 K)에게 워커홀릭인 상사(O)와 쉽지않은 출장이라고 놀리는 메시지, 우) 생각보다 밥을 많이먹는 여직원에 대한 풍자 그림


허심탄회하게 불만사항 얘기하라고 했다가 시간 관계상 종료하자 당황해하는 직원 풍자(ㅋㅋㅋ)


지금 근무하는 공관에는 키가 크기도 하고 작은 직원들과도 지내는데, 착하기만 한 그들을 보면 예전에 장난끼가 발동해 만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특히, 한 총영사관에 근무할 때 대학생 인턴 직원이 있었는데, 그 역시 만화그리기를 아주 좋아하는 직원이어서 종종 자신이 그린 만화를 내 책상에 올려놓곤 했다. 늘 남에게 그려주기만 했지 받아본 적은 없었는데, 만화가 소소한 행복과 위안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해준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수만년전 인류가 태초에 동굴에서 살때도 벽화를 남긴게 아니었을까.

 

그때는 참 일이 많은 시절이었지만, 간혹 이런 응원 만화메시지를 받는 것이 박카스 100병을 먹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때 이미 중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수상할 실력, 성실함과 착한 심성을 가진 인턴 학생은 만화를 공유할 수 있는 동료였고 6~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끔 만화를 공유한다



가족과 직장 동료들과 공유했던 나의 만화는, 앞으로 어떻게 그릴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이제 내가 만화를 그린다고 심심풀이로 보고 픽 웃는 사람들은 있겠지.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생각하는대로 언젠가부터 조금씩 그리고 있다. 그냥 그려놓고 나혼자 본다. 근데 그 재미도 괜찮다.   


나는 특히 삼성 갤럭시 노트로 출장길에 그렸던 나의 자화상(맨 왼쪽) 그림을 참 좋아한다.


한번은 출장 도중 공항에서 환승을 기다리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스마트폰에 그려보고, 그 그림을 비행기 속에서 한참을 본 적이 있다. 이게 내 얼굴이구나... 내가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었지... 하는 생각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를 그리라고 하면 아이를 그렸던 내가, 어느새 넥타이를 매고 입가가 쳐진 어른을 내 얼굴로 그렸다는 생각이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외국에 나가보나, 40살이 되면 비행기를 타볼 수 있을까, 만화로 외국에 나가는 걸 상상 하던 만화를 그리던 아이는 어느새 중년의 남자로 이렇게 비좁은 비행기 이코노미석에서 10시간 동안 앉아서 날아가고 있다. 인생은 그렇게 빨리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왠지 모를 실소와 한편으론 씁슬함이 묻어났다.


그 사이 나는 많이 변해버렸고, 그 많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현실에 쫓겨산다는 생각? 그나마 이렇게 만화를 꾸준히 그리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추억의 하나는 지켜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자위도 해가면서, 계속 우울해하지말고 더 힘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보니 내가 그린 만화의 자화상이 "야 임마, 재수없게 썩소짓지 말고 웃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자화상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 그동안 누구에게 보여주고 웃기게하려고 했던 만화보다는, 남이 그려준 그림에 위로를 받기보다는, 나에게 보여주고 거기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오랜 친구같은 존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그대로 내가 그려주는, 그런 만화를 그리고(drawing), 그리고(and) 그리고(drawing) 싶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 내가 중3때인 1988년 발표된 유재하의 노래. 사춘기 시절 참 좋아했던 노래다.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했지만, 역시 유재하의 목소리를 따를 수가 없다.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쳇바퀴 돌 듯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 가네


거짓인줄 알면서도

겉으론 감추며

한숨 섞인 말 한 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 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엇갈림 속의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 곳에 가려고 하네


근심 쌓인 순간들을

힘겹게 보내며

지워버린 그 기억들을

생각해내곤 또 잊어버리고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https://www.youtube.com/watch?v=aIWOBFyGQ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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