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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Feb 22. 2022

홍콩 느와르 키드의 생애

나는 그 1980년로 돌아간다

아침부터 내리던 눈발은 퇴근길에도 계속 퍼부어댔다. 현지 기상청에 따르면 유럽 전역이 폭풍경보가 발령되서 그렇단다. 부는 바람에 눈발에 족히 40분을 걸어서 퇴근하니 아내가 주말에 먹었던 김치찌개를 재활용해 새로 탄생한 등갈비찌개도 참 맛있다.


"맛있지 않나?"

정답을 강요하는 아내에게 '.' 라는 말과 함께 저녁을 먹고나니 추웠던 몸도 녹아지고 움직이기 싫어진다. 잠깐 쉬었다 책이라도 한 자 보자는 생각은 점점 머리가 띵해지면서 사라지고, 이미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눕는다. 30분만 누웠다 일어나겠다고.


언젠가부터 이렇게 피곤한 몸을 누이면 듣는 노래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IaTCxThOlU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중3때 독서실에서 10시에 마이마이를 켜면 시작되던 '별이 빛나는 밤'에서 흘러나오던 여러가지 노래가 있었지만, 이 노래가 특히 잊혀지지 않는다. 생전 처음 맞이했던 고등학교 입시. 88년의 스산한 가을, 까까머리 철없는 중학생에게도 감성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을 달래줬던 노래. 유재하의 노래는 친구들과 같이 불렀다면, 오석준의 노래는 감춰두고 혼자 몰래꺼내 보는 무언가였다.....



"아... 이 노래 괘않네~, 제목이 뭐고?"

노래를 틀면 아내가 시끄럽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좋아한다.

둘이 천장을 보고 누운 컴컴한 방안에서 아내와 둘이서 감성에 젖는다.


"이거 내 중1땐가 나온 거 아이가.."

"기억하네?"

"그땐 엄마도 아빠도 건강하고 언니들이 차려주는 거 먹고 편했는데..."

"지금도 편하면서...ㅋㅋㅋ"


말해놓고 둘이 키득키득 웃는다.


"아랫묵에 서로 들어가겠다고 담요 파고 들다가 안에 있는 밥주발도 엎고... 그땐 왜 담요에다 밥주발을 넣었었지? 보온 밥통이 없었나?"

"아폴로 밥솥인가 있었는데... 취사는 안되고 보온만 되는건데 작았어. 밥그릇이 다 안 들어가니까 아랫묵에 넣었지."

"그래 그땐 언니들이 연탄불 갈고오면 좀 있다 따땃했었는데..."

"지금도 전기장판에 따듯하면서... ㅋㅋㅋ"


아내와 또 킬킬 웃는다.


"그래도 내가 자기하고 나이 차이가 얼마 안나서 이런 노래에 공감해주는 거 아이가..."

"...."


한 개 더 틀어본다. 부산 사람이니 부산 꺼 틀어줘야지.


https://www.youtube.com/watch?v=ToAVDaezPwM      


"그~래~... 근데 이상우가 노래 잘 부르나?"

"야.. 이 사람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야... 원래 잘 부르는 사람들은 듣기엔 쉬워보여... 나도 이거 많이 불렀지. 여자애들 난리났었다..."

"아... 좋다~"


다시 또 80년대로 돌아가 좋다를 반복하면서 둘이 따라도 불러보고 흥얼대본다.

아내가 좋다고 또 딴 거 없냐고 묻는다.

말하기 전부터 다시 요청하면 비슷한 분위기 노래 뭘 뽑지를 한 참 고민했다.

아예 뒤로 확 땡겨볼까.


"나는 어렸을 땐 이 사람 별로 안 좋아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좋아지더라구."

"그~래~... 이 사람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능력이 많다 아이가~"


https://www.youtube.com/watch?v=m_2KXrLGOt0


"어휴 듣기 싫어!"

옆 방에서 공부하다 아내 옆에 침대로 파고들었던 아들놈이 노래가 나오자 나가버린다.

나도 아부지 엄니가 가요무대를 틀면 질색을 했었지.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렸을까? 벌써 오십이다. 옛날 생각난데이~"





그래,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기만하다.

그래서 요즘 너무 잠이 안 온다.


국민학교땐 교실에서 이선희의 'J에게'를 모여서 부르던 여자애들이 있었고

중학교땐 주윤발과 장국영에 심취해 몰래 성냥개비도 물어보고

고등학교땐 '별이 빛나는 밤'에 이문세는 왜 맨날 기집애들 사연만 틀어주냐고 투덜댔고

(나중에 친구 누나 이름으로 연말 달력 이벤트 신청하니까 받아주더라)

대학교땐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수도없이 들으면서 외사랑을 하던 시절도 있었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노래는 삼겹살 회식-2차 맥주집-3차 노래방-4차 해장국으로 이어지며 부르고 싶던 노래를 불렀다기보다는 상사들이나 선배들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노래를 불렀어. 한때 내 별명 중 하나가 '람보'였지. 내가 선배들 앞에서 김지애의 '물레야'를 부르면 모두 쓰러졌으니. 옆테이블 사람들도 몰려와 어떻게 그렇게 잘부르냐며 꽁짜술도 많이 먹던 시절이었지.




하지만,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듣고 싶고 부르고 싶던, 내 마음이 부르던 노래를 찾던 기억이 아주 멀어졌던 거 같다.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잊혀져 갔고 지워졌지.


나는 그 사이 한국 나이로 오십이 되었고,

여우가 자기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두듯이

그렇게 혼자 있으면 아주 먼 시절 좋아했던 노래를 튼다.


내 젊음이 빛나던 80년대,

왕가위, 오우삼, 주윤발, 장국영, 양조위... 검은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던 형들과

내 책받침을 장식했던 임청하를 기억하며.


https://www.youtube.com/watch?v=u9zqkn3Cf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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