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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Aug 24. 2020

네잎 크로바

아내 -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

얼마전 아내와 주말에 걷다가 공원을 지나게 되었다. 풀밭 사이로 크로바가 많이 보였다. 아내가 "난 네잎 크로바를 본 적이 없어.. 남들은 많이두 봤다는데... 자기는 본 적 있어?"


나는 잠시 있다가,


"나."

"뭐?"

"내가 너한테 네잎 크로바지... 이거보다 더 큰 행운이 너한테 어딨어.. 안그래?"


미친거 아니냐는 듯이 쳐다보던 아내의 눈초리를 잊을 수 없다.

내가 네잎 크로바라고 강요 중 한 컷



주말에 간만에 많은 사람들과 카카오톡으로 통화를 했다. 선배, 후배, 친구...  점점 누군가가 나를 찾아준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할 나이다. 요즘 잠들기 전 우두커니 생각해보면, 세월이 참 빨리 간다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잊혀져 갔다는 것. 나와 얘기하고 같은 하늘 아래 살던 사람들 중 몇몇이 떠나가버린 그 세상에서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념에 잠이 못들때도 있다. 나이가 드나부다. 그러기에 제대로 잠못들고 일어나기 힘든 날들이 늘어간다.


이제는 앞으로의 인생에서 같이 살아갈 사람들을 챙겨가야할 시기라고 한다. 누가 나와 같이 살아갈까 생각해보면 그리 많은 사람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떠나면 많은 사람들이 지워질 것이다. 마치 경찰에서 떠나 외교부로 전직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지금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야한다는 상투적인 말보다는, 필요없는 '필요에 의해 맺어진 이들'을 정리해야하고 그러한 인연에 굳이 신경쓰고 겉으로라도 친하게 지내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싫은 것은 싫은 것, 그래서 억지로 친하게 친절하게 대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보니 인간관계란 지키는 것보다 잃는 것이 앞으로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일부러 인맥을 만든다고 만들어질 것도 아니지만, 이젠 노를 힘차게 저어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다행인 나이가 되가고 나이가 든다는 것 자체가 그런 인간관계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이든 많은 이들이 믿음을 주는 만큼 품어주는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인이 된다던지, 무한한 애정을 표시하는 동물을 키운다던지, 아니면 혼자의 삶에 익숙해져가는 것 같다. 아니면 종교에 귀의해 억지로라도 사람이 많은 곳에 속하려고 하던지.


외교관의 인생은 더 한 것 같다. 늘 2~3년마다 정기적으로 옮겨야하고, '외교관적 수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내면을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 엄숙함과 진지함 속에 묻어있는 차가움, 외롭다는 것에 익숙해져간다는 것 자체가 외교관이 되간다는 것-외교관의 '외'자는 외롭다는 것 같다-이 현실이 되고, 국내 지인과 친척들과는 멀어져 간다. 어째보면 늘 외롭고 1년의 반이 넘는 어두운 밤하늘이 뒤덮는 스톡홀름의 하늘은 이 직업의 인생의 축소판 같다.


반면 늘 부러운 사람이 가장 가까이 있다. 바로 아내다. 외교관 부인이라고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찌보면 외교부에서 제일 불쌍한 존재 중 하나가 외교관의 부인이다. 남편의 임지를 따라 이곳저곳 다니면서, 남편과 자식들을 챙기느라 자신의 아픔은 내색도 못하는 것이 외교관의 아내들이다. 물론 즐겁고 행복한 케이스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안타까운 경우가 더 많다. 외교관들이 외국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일하고 쉴 수 있도록 24시간 지원해주는 항공모함처럼, 그들의 존재는 크기만 하지만 정작 가족들 사이에서 늘 희생을 감수하는 이들이다. 애가 아프면 밤을 새면서 한국처럼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함을 한탄하며 좌불안석이면서도, 정작 자신이 아프면 그냥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워서 잘 뿐이다. 남편은 사무실에서 못다한 일을 거실에서 계속하고 아들은 스마트폰을 보다 잠이든다. 그런 사이, 아내는 이불 속에 끙끙앓다 잠이 든다. 그러고는 여지없이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아무일 없듯이. 이것이 외교관 아내들의 일상에 대한 단편이다.  


그런데, 아내는 신기할 정도로 어딜가든 사람 사귀고 관리하는 기술이 느는 것 같다. 그녀는 어딜가든 자매같은 언니, 동생들을 두세명씩 꼭 만들고, 그를 아직까지도 이어나간다. 나는 임지를 떠날때 사실 별 감흥이 없고 그럴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아내가 떠나는 날엔 그녀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열성을 다해 챙겨주고 눈물을 쏟는다. 떠나면 이내 잊혀지는 나와 달리, 아내는 늘 그들에게 기억되고 언제라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면 자신들의 집 한 켠을 내줄만큼 끈끈한 인간 관계를 맺는다. 어찌보면 아내는 허술한 점도 많고 치밀하지 않은 점이 많은데, 먼 훗날 인간관계를 정리한다면 나보다는 훨씬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허술하고 치밀하지 않은 점이 오히려 아내의 매력이 아닐까. 나는 너무 계산하고 차가웠던 것이 아닐까. 말은 유머가 풍부하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가 다가서기 어려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로 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일로 주로 사람들과 얘기하고, 일로 평가를 받을려고 했기에, 거기에서 그 일이 끝나면 잊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일이 기준이 아니었기에, 아내가 더 생명력이 있고 인간미있고 서로 보고 싶은 사람들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돌이켜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어떤 상사, 선배, 후배, 친구가 기억에 남았었나. 답이 저절로 나왔다. 차이는 거기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더 소름이 끼치는 것은, 그렇게 떠나가면서 평생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착각아닌 착각 속에, 나는 가족에게 조차도 그런 인간미를 잃어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세간의 성공이 따른다고 해도, 그것은 상대 전투기를 몇대 격추한 비행기가 착륙할 항공모함이 없는 모습과 같을 것이다.



나의 곁에 벌써 14년째 지켜주고 있는 아내. 짜증내고 화내는 일이 더 많았고, 늘 부족하지만, 오늘 저녁에 들어가면 사랑한다고, 당신이 내 인생의 네잎 크로바라고 말해주어야겠다.

해군사관학교 순양함대 방문행사에서,

네잎 크로바와 생명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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