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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Oct 21. 2021

마누라 속이기 season3-4

내 인생이니까.

중3 때부터 숙제가 아닌 나 자신과 얘기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 33년 전 일기장은 블로그로 바뀌었다. 온라인에 있으니 일기를 보겠다고 창고를 뒤질 일도 없다. 참 편한 세상이다.


힘들고 생각이 복잡할 때마다 몇 년 전 비슷한 날짜의 일기를 들추며 그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찾아본다. 10년 전인 2011.10.23. 일기에는 첫 해외공관 근무지였던 포르투갈에서 한-포르투갈 수교 50주년 기념 문화행사 사진이 있었다.

비보이댄싱팀 '고릴라크루'팀과 수교기념 문화행사장에서(2011.10.23.)


환하게 웃는 모습이 왠지 낯설다.

지금 다시 저 공연팀이 온다 해도 그때처럼 웃지는 못할 것 같다.

늘 나와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어른들처럼 멀치감치 떨어져서 웃고 있겠지.

맘속으론 나도 들어가고 싶지만...이라고 생각하며.


지나간 일기장은 마약 같다.

보면 좋은데, 보고 나면 마음이 무겁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아주 짧지만 잠깐 해보는 일상 탈출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 탈출을 꿈꾼다.

특히, 나같이 소위 사추기의 홍역을 앓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떠나고 싶다, 혼자만의 여행 가고 싶다 등등... 아주 입에 달고 산다.


카카오 브런치만 해도 '사추기'라고 치면 적지 않은 글들이 나온다.

그 고민의 내용들이 나와 너무나 비슷해 놀랄 때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고민, 거기까지다. 나 역시도 그랬다.



볼링을 처음 치러갔을 때였다.

던지기만 하면 도랑으로 빠지고, 볼이 손가락에서 안 빠져 그대로 팔을 360도를 돌려 쿵 찍은 적도 있다. 너무나 창피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 킬킬대는 거 같아 더 안쳐졌다. 곤욕이었다.


그때 같이 간 형이 말했다.

"야, 아무도 너 신경안 써. 생각하지 말고 그냥 쳐."

그랬다. 지금은 옆자리에 바보가 생쑈를 해도 안 쳐다본다.

Nynäshamn시 소개 책자에 한 사진. 남들 신경 안 쓰고 일단 뛰어내리는 남자. 

 

나이 40에 사추기라고 괴로워하고 

그렇다고 일상을 탈출하는 것은 주저해야 하는 일일까?

이 또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슬픈 일 일수도 있다. 아니, 슬프다. 


내가 처음 마누라 몰래 여행을 갔다 오고 아주 뿌듯해하고 나중에 들키면 어떡하지? 했는데, 아내는 1년이 지나도록 상설할인매장에 떨이 세일만도 못할 만큼, 나의 일탈엔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사실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얘기하고 은근히 컴퓨터로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걸 내비쳐도 전혀 관심 없다.  


그래서 아예 직원이랑 같이 간다고 하고, 더 나아가 혼자 간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가까운 아내가 이럴진대, 다른 이들이 나를? 말해서 무엇하랴.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하자.


이제 40대의 시간을 몇 달 안 남겨둔 상태에서 

누군가, 특히 남자가, 사추기로 괴로운 불면의 날들을 보낸다면,

지금 일어나서 나가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혼자만의 여행을 꿈꾸면 하루라도 버스표 끊고 근교라도 나가보고

춤을 배우고 싶다면 쉘 위 댄스처럼 학원에서 스텝 좀 밟고

레슬링을 배우고 싶다면 반칙왕처럼 도장에서 깨지면서

보고 기뻐하고, 아직 살아있음을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글에서 내가 한 세 번의 일탈도 아주 길게 한 거 같지만

다 합치면 1년 중 9일이고 그중 6일은 주말이다.

10일도 안 되는 동안 얻은 것이 있다면, 우울하기만 했던 삶이 조금 바뀐 거 같다는 거.


전에는 소파에 앉아 벌써 10년 정도로 다가온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유튜브를 많이 봤는데,

이제는 책상에 앉아 당장 주말에 근처 벼룩시장에서 중고 미드 DVD 세트가 싸게 나올지 기대도 해 보고, 월말에 그리고 연말에 또 내년에 그리고 다음 해와 앞으로 펼쳐질 남은 날들을 기대해본다.


왜냐면, 지금껏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내 인생이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3pQ_o1mLbYM

고1 수학여행 기억 속의 '내일이 찾아오면'처럼, 나는 내일도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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