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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Feb 14. 2022

세대 전쟁 in Sweden

3-1 외레순 대교는 그냥 다리가 아니었어

"근데 코펜하겐으로 오는 게 맞아요? 아무리 스코네(Skåne)가 다리 건너라지만 다른 나라잖아요?"


"그러게, 회사에서는 이게 더 편하다고 하지만, 우리도 외국인이 경상도를 경험하고 싶다고 물어본다고 '그래 그럼 대마도로 가서 올라와라' 이러지 않잖아?"


Team Småland 구성원들은 코펜하겐 공항을 거쳐 중앙역(Københavns Hovedbanegård)에 들어서며 이게 맞는 건가를 반복했다. 처음 상경해 서울역을 헤매는 이들처럼.


마침, 동양인으로 보이는 모자가 사진을 찍고 있길래, 막내인 시문이 물어보니 스톡홀름에 사는 한국인이었다.


"그래요? 스톡홀름에서 여기 얼마나 걸려요?"

"기차 타면 한 5시간 걸려요."

"오... 말뫼는 보셨어요?"

"네.. 여기서 기차로 한 40분도 안돼요. 그래서 말뫼에 사는 교민들은 스톡홀름에 있는 대사관보다 여기 주덴마크대사관이 훨씬 가깝대요. 국제선 비행기를 타도 여기가 가깝구요."


"어.. 옆동네 하고 차이가 없네요..."

"네, 역 근처에 관광안내소 가면 스웨덴 안내 책자도 좀 있을 거예요."

"스코네도 있을까요?"


팀원들은 기차 시간이 아직은 몇 시간 남아 코펜하겐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어 진짜 자료 많네... 야~ 스코네 안내 책자 중 이건 60페이지도 넘어~ 이거 베끼면 되겠다."

"앱솔루트 보드카의 출발지도 여기고... Kullaberg라는 국립공원도 멋진데~"


"자, 그럼 우리 여기서 스코네 안내 책자 좀 보고 기차 타러 갑시다."

팀원들은 세계 3대 별 볼 일 없는 거리인 '인어공주' 동상에 가는 것도 잊고, 스코네 책자를 읽었다.



팀원들을 태운 코펜하겐을 출발한 열차는 외레순 대교(Öresund Bridge)를 건너고 있었다. 지루했던 대신(팀원 박대신)은 옆자리에 앉은 스웨덴 사람에게 질문했다.


"이 다리 길이를 보면 12km라 기도하고, 8km라기도 하는데 뭐가 맞나요?"

북쪽 말뫼에서 중간 인공섬인 페베르홀름까지 연결된 외레순 대교의 모습. 밑에 코펜하겐까지는 해저터널로 연결되어있다(출처: 나무위키).

"아... 이 다리 중간에 덴마크 땅인 페베르홀름이라고 인공섬이 있는데, 스웨덴 땅인 말뫼에서 거기까지가 7,845m이지요. 이 섬을 지나 코펜하겐까지는 세계 최장의 해저터널이 4km 정도 돼요. 그래서 둘을 합쳐 12km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다리만으론 8km라는 것이 맞지요."


"아.. 그렇군요. 선생님같이 이렇게 통근하는 분들이 많은가요?"

"하하, 그럼요. 한 2만 명은 넘는 걸로 알아요."


"와, 그렇게 많아요?"

"북유럽 최대의 공항인 코펜하겐은 아무래도 유럽의 관문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말뫼 사람들 입장에서는 덴마크와의 연결을 통해 일자리가 확대되는 것이지요. 이 다리가 2000년 7월 연결되기 전 10여 년 동안 말뫼는 120년간 주요 산업이었던 조선업이 부도가 나며 실업률이 22%까지 치솟아 죽어가던 도시였어요. 코쿰스(Kockoms)라고 큰 조선소가 망해 그를 상징하던 골리앗 크레인이 1달러에 한국으로 팔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이 모두 나와서 눈물을 지었죠."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본 외레순 해협(2019.12.)

"네... 제가 한국에서 왔는데, 그래서 말뫼가 어딘지는 몰라도 '말뫼의 눈물'은 압니다."

 

"이후에 그 정부에서 SAAB라는 기업에 조선소 부지를 넘겨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기도 했지만 몇 년 안 가서 문을 닫았어요. 이미 임금 경쟁력도 잃었고, 한국 같은 신흥 조선 강국에 밀렸기 때문이죠. 정말 가망이 없는 도시가 돼버린 거죠."


그런데 일마 리팔루(Ilmar Reepalus) 시장이 90년 중반 취임하면서 외레순 대교의 완공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말뫼 사람들 입장에서는 600km 넘게 떨어진 스톡홀름보다는 단지 10km의 외레순 해협만 건너면 바로 있는 북유럽 중심도시이자 유럽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일자리로 바로 연결될 수 있는 코펜하겐과의 연결은 오랜 숙원사업이었거든요. 이미 스웨덴과 덴마크 정부 간 협력으로 1991년 시작됐었지만 지지부진 했었어요.


이것은 단순한 도시 간이나 국가 간 연결로 그친 게 아니었죠. 이런 말뫼의 상공업이 유럽과 연결되면서 찾아온 기회를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모두가 논의를 거쳐 얻은 결과는, '친환경'과 '혁신' 이었어요. 전통적인 상공업의 부흥은 기성세대 경영자들의 관점에서 기회였다면, '친환경'과 '혁신'은 젊은 세대들을 향한 손짓이었죠.


코펜하겐 관광안내소에 있는 스웨덴 관광 안내책자. 'Swedish Copenhagen'이랄 만큼 가깝게 여긴다.

말뫼 중심가에는 말뫼대학이 있는데, 이 학교는 기존 대학들과 달리 가보면 멋진 빌딩 안에 있는 무슨 회사나 스타트업 같아요. 스웨덴 말고도 독일, 그리스,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학생들도 많이 있죠. 젊은 인력의 유입을 추구하는 시정부의 노력이 돋보이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말 그대로 젊은 사람들이 연구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준 건데 이런 교육기관에 그치지 않고 기존 공장 부지에 스타트업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주고 친환경 주거단지 조성, 재생에너지 활용 등 젊은이들이 공부만 하고 떠나지 않고 계속 살 수도 있는 도시를 만들어갔어요.


저기 보이는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 보이죠? 저 동네가 바로 그 친환경 주거단지의 상징이랍니다.



터닝토르소 앞에서 찍은 전경과 입구에 있는 설명 표지판(2021.11월)


"아.. 지난번 서울에서 있었던 P4G 정상회의에 Simon Chrisander 말뫼 부시장님의 발표 봤습니다."


"말뫼도 조선업이 망하고 나라에서 배를 사주기도 하고 자동차 산업도 유치하기도 했는데, 중요한 건 앞으로 시민들을 위한 일자리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새를 잡아 가까이 두는 것보다 새집을 만들어주면 새들은 저절로 올 테니까요."


"아니, 왠 파랑새에 나오는 구절을..."


"물론 말뫼는 예전부터 지리적 위치상 여러 나라 출신들이 들어와 사는 국제도시이긴 해요. 저도 유대인입니다. 말뫼 사는 유대인들은 1860년대부터 폴란드나 독일에서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19세기 말에는 빈곤과 러시아군으로 징집의 위협을 벗어나려 했던 동유럽계들이, 1930~40년대는 나치의 탄압을 피한 독일계들이, 1960년대는 반유대주의를 피하고자 폴란드계들이 많이 들어왔거든요.


 말뫼 출신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현재는 유대인말고도 엄청 많은 민족들이 살아요. 축구 국가대표 공격수로 세계 최고의 스타 중 하나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말뫼에서 태어난 유고슬라비아계 사람이죠. 그게 말뫼의 국제화와 발전의 기반이 되었고, 외레순 대교 연결은 그 도화선이라고 볼 수도 있죠."


"아휴.. 감사합니다. 이제 곧 내려야겠네요. 아니 처음 본 저에게 어떻게 이렇게 자세한 설명을..."

"뭐... 잘 아시면서.. ㅎㅎ"



Team Småland 구성원들은 말뫼 역에 내리자마자 대신에게 뭔 얘기를 그렇게 오래 했냐고 물었다.  


"아... 저 다리가 그냥 다리가 아니더라구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그래 저거 유명해~ 우리 사진이나 한 번 찍고 가자고~"


역시 아저씨와 아줌씨로 구성된 팀 다 왔다.

외레순 대교 앞에서(2021.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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