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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Mar 28. 2022

세대전쟁 in 스웨덴

5-4 인구 3만의 휄레프테오가 어떻게 기가팩토리를 유치했나

↑휄레프테오 시의 전력회사인 Skellefteå Kraft 홈페이지


"사실 N사가 기가팩토리를 휄레프테오(Skellefteå)에 지으니까 협력업체인 우리도 거기 짓긴 했지만, 처음에 뭔 이런 시골에다 그 큰 공장을 짓나라는 생각은 했었어요. 그 이유를 좀 찾았나요?"


화상으로 연결된 본사 임원진의 질문에 TK팀은 발표를 이어나갔다.


"이건 수소 철강 하고도 같은 이유인데, 바로 전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향후 배터리 산업은 규모(scale)의 경제 효과를 통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본과 공장 자동화를 갖춘 기가팩토리 건설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대규모 시설 유지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고 환경도 고려하는 지속 가능한 청정에너지(Green energy)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게 됩니다. 현재 기준 스웨덴 내 배터리 생산에는 스웨덴의 연간 전력 총생산의 1.5%에 해당하는 360MW가 재생에너지 형태로 필요하거든요.


100%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기 생산임을 강조하는 Skellefteå Kraft사 홈페이지

이러한 관점에서 풍부한 수력 발전 시설을 보유한 휄레프테오는 최적의 생산기지라고 할 수 있죠. 앞서 발표한 Norbotten이나 Vasterbotten 지역 모두 수력이 풍부합니다만,


그 지역 내에서 어느 곳이 수력 발전의 가능성을 현실로 이끌어 낼 수 있는가로 봤을 때, 휄레프테오는 시 정부가 운영하는 전력회사인 Skellefteå Kraft가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전력을 직접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N사의 투자 유치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입니다.


휄레프테오 지역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마련하여 저렴하고 지속 가능한 청정에너지 확보는 물론 EU가 추진 중인 탄소 국경 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시행에도 대응 가능했던 것이죠. 친환경 배터리 생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 생산에 필요한 풍부한 자연적 요소들이 산업 전환 시대에 있어 휄레프테오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겁니다."


"아.. 뭘 해도 전기가 중요한 거구나."


"그것도 재생에너지를 통해 얻어진 전기지요. 전력 생산의 40%를 재생에너지인 수력에서 생산하는 스웨덴에 비해 천연가스나 석유 등 화석연료에 의존도가 높은 독일이나 우리가 앞으로 생각해볼 사안이기도 해요. 스웨덴은 이러한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상징적으로도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데도 부각하고 있어요.


지난해 개관한 극장·도서관·호텔이 입점한 휄레프테오시 문화센터(Kulturhuset)의 경우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목조 건물로 시정부가 지역 개발에 있어 중점을 두고 있는 지속가능성(sustainablity)을 상징할 수 있도록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하였고, 지금은 이 지역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휄레프테오시 문화센터(Kulturhuset, 2021년 9월)


"휄레프테오는 북동부 항구 도시인만큼 니켈 등 배터리 원료가 풍부한 러시아나 망간ㆍ리튬ㆍ코발트 등의 원료 가공 기반을 갖춘 핀란드로의 접근이 용이해 관련 산업의 수직 계열화가 가능하다는 지리적 장점과 스웨덴 특유의 아웃소싱 전통을 살릴 수 있어, 배터리 관련 세계 최대의 원자재 생산 및 가공 국가인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줄일 수 있지요. 지리적 장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최근 스웨덴 정부는 북부 지역 개발에 힘쓰고 있는데 마치 과거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를 연상하게 해요. 그 중심이 룰레오-피테오-휄레프테오를 연결하는 동북부 해안도시들인데,

동북부 해안도시 라인

특히 휄레프테오는 지역 간 연계를 용이하게 해주는 디지털 인프라, 우메오나 부덴 등 동북부 산업 도시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 산업 부산물이나 폐기물에 대한 재활용 능력, 배터리 관련 기업의 유치를 통한 밸류 체인 구축, 우메오대학과 룰레오대학의 휄레프테오 캠퍼스를 통한 산학 연계로 점점 탄탄한 기반을 갖춰나가고 있어요.


2021.7월 휄레프테오 시정부는 Skellefteå Kraft, N사, 룰레오 과학기술대, RISE(국책 연구기관)와 함께 향후 3천만 크로나(한화 40.7억 원)를 투자해 에너지 전환 관련 교육과 연구를 담당할 ‘북극에너지센터(Arctic Center of Energy, ACE)’를 셀레프테오시에 설립하기로 합의한 것은 상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지요.


과거 미개척지였던 동북부를 해당 지역이 가진 장점(재생에너지 생산)을 최대한 추출해서 강점으로 바꾸고, 변화하는 시류에 맞춰(파리기후협약 등 친환경 정책의 대두) 국가-지방자치단체-대학-기업이 합심해 산업 발전은 물론 지역 개발까지 거둬내는 혁신과 효율의 단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UrG4atZJFY

"This is why Northvolt chose Skellefteå" - 이 지역의 최근 성장 배경이 잘 설명되어있다.



"음.. 좋아요. 그런데, 지금 그 지역에 그 큰 기가팩토리가 들어간다면 사람도 엄청 늘어날 것 같은데... 소도시에 불과한 휄레프테오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100년 전 금광 개발 열풍 이후 최근 유럽 전체의 전기화(electrification) 시대의 도래로 새로운 부흥의 계기를 맞고 있는 휄레프테오는 시 정부를 중심으로 이러한 발전에 맞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반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합니다.


2017.9월 노스볼트가 기가팩토리 건설 후보지로 휄레프테오를 지목한 이래 시정부는 학교ㆍ공항·항만·도로 등 사회 인프라 구축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향후 생산량 증대에 따라 N사가 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여 현재 32,000의 인구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시 정부는 90,000명의 추가 노동력을 유치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주택 건설은 물론 새로운 주민에 대한 정착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해 나갈 거라는 군요.


시 발전방향을 설명하는 휄레프테오 시정부 관계자(2021.9월)

당장 기가팩토리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세계 90개국 출신의 노동자들의 지역 사회 유입으로 주택 확보나 생활여건 개선 이외 시 전체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에, 시 정부는 신규 주민들의 정착과 지역사회로의 통합을 위해 주거단지의 조성이나 국제학교와 같은 교육시설에 대한 투자를 이어나가고 있어요.


특히, ‘차이나타운’같이 지역사회에 통합되지 않고 고립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임시  주거 타운의 조성이나 지역사회의 시민단체들이 추진하는 새로운 입주민에 대한 정착 지원 및 교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는군요."


"그 90개국 출신 노동자들 중 하나인 우리 근로자들도 어려움이 있지 않나요?"


"물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뛰어난 기술력과 성실성으로 전체 건설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높이 평가를 받고 있는데, 현지에서는 기술력이 좋은 한국 기업들이 유럽 시장에 대한 이해도 좋기 때문에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목적지로 다양한 장점을 갖춘 스웨덴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N사와도 협력을 확대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이러한 기업 측의 기대와 달리 휄레프테오의 경우, 오랫동안 외국인의 유입이 거의 없던 소규모 도시였다가 최근 기가팩토리 건설로 대규모 외국 노동자들이 유입되다 보니 일부 현지인이나 공사 관계자들로부터 외국인 특히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행위 위험도 다소 있다합니다. 이러한 점은 외국 진출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겠지요.


이를 위해 우리 근로자들은 우리 문화에 대한 소개와 우수성 전파를 통한 한국에 대한 인식의 확산을 위해 다양한 문화 행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하는데, 올해 북유럽 최초로 개관 예정인 한국 문화원이 설립된다면 이러한 갈증을 좀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음.. 국가나 자치단체가 어떻게 낙후된 지역을 개발해나가고 기업을 유치하는지, 기업은 어떤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해외 진출할 경우 어떤 지역에 관심을 두느냐에 대한 것에 대한 좋은 사례인 거 같습니다. 그럼 여기서 가장 많이 느낀 스웨덴의 특징은 뭐라 생각해요?"


"스웨덴은 넓은 땅덩어리에 비해 사람이 부족해요. 그럼 이것을 메꾸기 위해서는 얼마나 주어진 여건을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인데, 이를 위한 협력과 아웃소싱에 능한 개방성이 스웨덴의 특징이자 장점인 것 같습니다.


국가는 선구안을 가지고 새로운 산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주었고, 이를 믿고 돌아온 기업가는 지역사회와 학계 그리고 기존 대기업들과 합심해 휄레프테오라는 황무지에서 기적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모자라는 기술은 한국과 같은 외부와 연결했고, 이제 몇 년 후 유럽 최대의 배터리 생산기지라는 결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N사의 기가팩토리 건설 현장. 그들은 맨땅에서 기적을 일구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협력과 개방성은 비단 휄레프테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스웨덴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해요.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학창 시절부터 과도한 경쟁과 개인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입니다. 이동 중에 여기서 정착한 지 30여 년이 넘는 한국인 과학기술인을 만나 한국과 스웨덴을 비교해달라니 이렇게 설명해주시더군요.


스웨덴인들은 과묵하지만 타인의 의견에 매우 개방적이고 경청하는 사람들이다.

'양국에서 5명씩 뽑아 방법을 가리지 않고 1000m 떨어진 목적지에 도달하는 달리기를 한다고 봅시다. 어느 팀은 개개인의 달리기 역량이 상대 팀보다 월등해요. 다만, 이들은 개개인이 서로 우승하려고 따로 달릴 겁니다. 반면 상대팀은 좀 느리지만 서로 200m씩 이어 달린다고 합니다. 어떻게 될까요.


앞서 말한 '어떤 팀'의 주자들은 한 4~500m 정도에 모두 헉헉대며 지쳐있을 거예요. 하지만 '상대팀'은 200m씩 이어달려 어느덧 1000m에 도달해 있을 겁니다. 누가 최종적으로 이기는 걸까요. Slow But Steady Wins The Race. 이게 인구는 적지만 다수를 이기는 스웨덴의 힘이고 한국과 다른 힘이죠.'


스웨덴의 정책을 보다 보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공통점은 '지속가능성(sustainablity)'이고 이는 협력과 개방의 결과입니다. 우리도 스웨덴에 진출한 만큼,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이러한 룰을 따라야겠죠."


"그래, 협력과 개방을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성'. 좋은 생각이다."

박 사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화상 화면이 꺼지고 회의실에 모인 임원들은 블레킹예주의 칼스크로나를 주제로 한 TS팀과 베스테르보텐주의 휄레프테오를 주제로 한 TK팀의 발표 중 어느 팀에 손을 들어주어야 하느냐에 대해 갑론 을박을 벌였다.

과연 어느 팀이 승리하고 다음 주로 넘어 갔을까.


스웨덴 북부의 숲속마을. 조용한 이 지역이 깨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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