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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May 01. 2022

세대전쟁 in 스웨덴

6-2 CLRTAP-스웨덴의 맑은 공기와 물은 어디서 왔는가

* Jämtland주의 중심 도시인 Östersund시의 호숫가(2020.7월)



'런던 포그(London Fog)'.


자칫 낭만적이게 영국을 상징할 수도 있는 이 어휘를 생각하고 런던을 방문해보면, 생각보다 영국이 그렇게 안개가 많거나 오염이 심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냐면 좀 지난 시간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런던의 Thames 강변(2018. 4월)


유럽의 산업화 도시를 중심으로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대기오염은 1900년 초 최고치에 이르렀고 제2차 대전 종전 이후에도 계속된 바, 관련 정책이 등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52년 12월 발생한 ‘런던 스모그 참사(Great Smog of London)’였다. 상태가 심각했던 8일간 4천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최종 12,000여 명에 달했는데, 이를 계기로 대기오염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심각성을 절실하게 깨달은 영국은 1956년 '청정공기법(Clean Air Act)'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영국 전역에서 가정용 연료의 사용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이후 런던을 포함한 영국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난방과 취사를 위한 연료로 석탄의 대체재로 천연가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거주지역에서 오염 발생원을 제거하고자 공장들을 시내에서 시외의 산업단지로 재배치하고 오염원을 멀리 퍼뜨리고자 ‘높은 굴뚝을 만드는 정책(tall stacks policy)’등도 등장하게 되었다.


외곽으로 이전된 공장 등은 영국은 물론 스웨덴 내도 새로운 오염 확산을 야기했다.

이러한 노력은 영국 내 이산화황(SO2)과 미세먼지(PM10)의 배출을 1970년~1990년 사이 절반 이상으로 감소시키는 등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대기 질을 크게 개선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원들이 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유럽 전반에 걸친 배출량은 계속 증가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오염원들은 타 지역 생태계 산성화(acidification)의 원인이 되어 1960년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호수에서 다량의 물고기가 폐사하고 독일의 숲들이 고사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산성비(Acid Rain) 논쟁’을 촉발하였다.


이는 스웨덴의 과학자 Svante Odén 이 제기한 바, 그는 유럽 전역에서 유황 성분 축적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여 스웨덴 내 축적은 타 지역에서 국경을 넘어 유입된 오염원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1967년 스웨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고 국제적으로 본격적인 산성비 논쟁을 촉발하여 1972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유엔 인간 환경회의(UNCHE)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6.5.~16. 개최된 이 회의는 지구환경문제가 국제적인 관심사로 부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그 결과 7개의 선언문과 26개의 원칙으로 구성된 유엔 인간 환경선언(일명 스톡홀름 선언)이 채택되었고, 올해 5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산성비로 인한 숲의 피해와 스웨덴의 과학자 Svante Odén(출처: Acid Rain, 스웨덴환경연구소(IVL) 2018)


여기서 더 나아가 1970년대 OECD 환경정책위원회(EPOC)는 ‘월경성 대기오염 관련 기술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오염원의 월경성 이동 정도의 측정을 위해 11개국에 측정소를 설치하고 데이터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이 데이터들의 분석을 통해 한 나라의 대기오염 관련 성분들이 실제로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가 다른 나라에 축적되어 다양하고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1974년 OECD 이사회의 ‘연료 연소에 따른 황산화물(Sulphur Oxides) 및 미세먼지(Particulate Matters) 배출 감소 가이드라인’, 1978년 유엔 유럽 경제위원회(UNECE)의 ‘장거리 대기오염원 이동 측정을 위한 기술협력 프로그램’ 등 과학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국제 협력 없이 산성비와 같은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 출발한 이러한 노력들은, 1979년 유럽경제위원회는 ‘장거리 월경성 대기오염 협약(Convention on Long-Range Transboundary Air Pollution, CLRTAP)'이라는 세계 최초의 대기오염 관련 다자간 조약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산성비로 인한 호수 내 물고기 폐사를 연구 중인 스웨덴의 과학자들(출처: Acid Rain, 스웨덴환경연구소(IVL) 2018)


CLRTAP는 주요 오염원을 신속하게 감축시키고자 1985년 유럽의 각국들이 유황의 배출을 1993년까지 1980년 대비 30%를 절감하도록 하는 소위 ‘30% 클럽’ 시행을 골자로 하는 헬싱키 의정서를 체결하였지만, 영국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호수 산성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고 관련 오염원의 장거리 이동과 호수의 산성화 사이의 원인 결과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동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러한 영국의 주장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의 논쟁으로 이어졌는데 이를 해결하고자 양측 과학자로 구성된 ‘지표수 산성화 프로그램(Surface Water Acidification Programme, SWAP)'이라는 공동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 스웨덴·노르웨이 내 호수의 산성화가 영국 스코틀랜드 지역 호수의 산성화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기에 이르렀다.       

유럽의 환경 정책의 역사와 과학의 기여도(출처: 스톡홀름환경연구소(SEI), 2019.11월)

특히, 스칸디나비아 지역 호수에서 기존 미세 생물들과는 산성도(PH)의 선호도가 다른 규조류(diatoms), 미세조류(microscopic algae)와 호수 바닥의 침전물 중 검댕(soot particles)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는 당시 유황과 질소화합물의 배출이 증가하고 있는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영향을 받아 호수의 산성도가 증가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한편 영국 내에서는 이러한 과학적 결과들을 바탕으로 국영 중앙전기연구소가 내놓은 ‘스칸디나비아에서의 산성 호수들: 생각의 전환’과 같은 출판물들이 대중으로 하여금 석탄 사용으로 인한 유황 배출이 대기 오염을 유발한다는 비난의 소지가 있고 이러한 배출은 줄여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당시, 국영 중앙전력공사(CEGB)가 정부에 다수의 발전소에 석탄을 사용하도록 상당한 로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전기 발전의 원료로 석탄에서 천연가스로 대체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였으며, 전기 발전 등 공공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오염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선택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인식이 정착하기에 이른다.

       

이후 영국은 헬싱키 의정서 목표 시한인 1993년에 유황 배출 감소 목표치인 30%를 초과하는 성과를 거두며 동시에 헬싱키 의정서에 서명하였고, 서명 거부로 얻은 ‘유럽의 더러운 인간(Dirty Man of Europe)'이라는 오명도 벗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과학적 기반 도출을 위한 공동 연구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준 바, 유럽은 물론 북미 지역에서도 오염원 배출 감소에 있어 과학적 증거에 따른 분석과 조치들은 오염원 배출량 감소라는 환경 개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CLATAP 시행으로 다져진 유럽의 대기오염 관리는 수단의 다양화, 새로운 오염원의 반영, 법적 의무 부과를 통해 질적으로 한층 더 강화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기 질의 지속적인 향상과 안정적인 관리 시스템이 정착하게 되었다. CLRTAP은 탄생 배경은 물론 시행 과정에서 매우 과학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조직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구성요소인 각 태스크포스들은 네트워크 구축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바, 최근에는 대기오염의 새로운 경향을 반영하여 미세먼지도 다른 오염원과 같이 측정의 대상으로 추가하고 있다.

CLRTAP의 주요 조직과 구성(출처 : The CLRTAP Convention. AirClim, 2003)




"와... 박사님... 강의 감사합니다.."

"맞아, 중국발 황사 문제가 나올 때 언론에서 'CLRTAP'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걸 봤어요."


"Thank you. 'CLRTAP'는 오염이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국경을 넘어 발생할 수 있고, 이에 대한 국가 간 공동 대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사례라 의미가 깊죠. 스웨덴은 이를 주도했다는데 자부심이 크고, 스톡홀름환경연구소(SEI)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싱크탱크들이 이를 이어가고 있어요. "


"그럼 많은 나라들이 CLRTAP를 적용했겠네요. 빨리 우리나라도 중국 하고..."


"Oh... 스톡홀름환경연구소가 스웨덴 국제개발협력청(Sida)의 지원을 받아 남아시아와 남아프리카 지역의 대기오염 국제 협력 사업인 ‘개발도상국 간 지역 대기오염(Regional Air Polution in Developing Countries, RAPIDC)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지만, 아쉽게도 성공하지는 못했어요.


일정 지역의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을 위해 유럽의 경험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일한 수준의 협력을 달성하거나 실제 오염원 배출 감소 등의 현실적 성과를 거두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죠. 유럽과 달리 남아시아나 남아프리카 지역의 정치적 환경적 여건이 다르고 지역 운영 주체들도 문제 해결 능력 부재했으며, 국가 차원에서가 아닌 정치적인 차원에서 대기 오염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그럼 우리나라도 쉽지 않겠네요... 쩝..."


"Well...동북아 사정을 볼까요? 한·중·일 모두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관련 법령 및 제도 정비를 거쳐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이미 2000년대부터 시작해 최근 월경성 대기오염의 원인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라 CLRTAP 관련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유럽에서 CLRTAR이 채택의 전 단계로 다양한 기술 프로젝트나 협력 프로그램이 이루어졌고 ‘유럽 감시 평가 프로그램(EMEP)'과 같은 정책 개발이 적극 추진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협약 자체보다 월경성 대기오염에 대한 과학적 기반 마련을 위한 공동 연구 프로젝트 등에 대한 지원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어요. 또, 유럽이 CLRTAP 서명을 거쳐 현재의 대기오염 관련 국제협력 성과를 내기까지 거의 4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참고하여, 장기적인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는 점도 중요하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의 갈등 관리인데, 19.11.20.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연구한 '동북아시아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LTP, Long-range Transboundary air Pollutants) 국제 공동연구 요약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국의 초미세먼지에 대한 중국의 기여도가 32%라고 발표되자, 한국의 주요 언론은 이번 연구가 '연평균 농도'를 기준으로 진행되어 지난 3월과 같은 고농도 시기에 특정 국가의 기여도에 대해서는 포함되어있지 않다고 하면서 국내 자체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기여율은 70%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어요.

 

Hackås의 호숫가에서(2020.7월)

이와 관련, 중국 관영언론(환구시보)은 ‘한국 스모그의 원인의 과반이 한국산이며 중국을 탓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도‘ 한국의 주장은 억지’이며 ‘중국과의 무역을 한국이 포기하고 싶다는 소리로 들린다’라는 격한(?) 반응까지 나온 적이 있지요.


하지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영국 간 마찰이 상호 비난이나 책임 전가보다 공동 연구를 통한 과학적 성과를 기반으로 극복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중 양국 간 상호 비난은 월경성 대기오염 국제 협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어요.


오히려 함께 오염원을 감소해나가기 위한 공동 연구의 필요성의 계기로 삼고 이에 대한 대국민 홍보나 언론에 대한 설명도 강화하면서, 대기오염 정책에 있어 중국이 한국에 큰 관심을 표명한 분야가 무엇인지 적극 발굴하여 이를 국제 협력의 주요 기회로 만드는 노력도 필요한 것이죠."


"그렇군요... 와, 이 맑은 공기와 물이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었군요."


"40~50년을 걸쳐 지켜낸 이 공기와 물에 4~5분간 흠뻑 좀 담가보렵니다~"


그렇게 스웨덴의 한 시골 호숫가의 푸르름에 사람들은 머물러 갔다.



* 본 내용은 2019년 스톡홀름 환경연구소 Johan Kuylenstierna 연구본부장과 대담 등을 바탕으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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