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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May 02. 2022

세대전쟁 in 스웨덴

6-3 '숲과 호수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 사는 나라', 스웨덴

* Jämtland주의 주도인 Östersund시 시청사(2020.7월)


본사 회의실에서는 TK팀의  ‘장거리 월경성 대기오염 협약(CLRTAP)'발표 보다 그 뒤로 펼쳐지는 광경들에 더 주목들을 하는 듯했다. 이윽고 나온 한 임원의 질문.


"좋은 경치 잘 봤습니다... 정말 장관이군요. 저도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 회사 운영이나 현지화에 참고할 내용은 뭔가요? 경치가 좋은 게 답은 아닐 테고..."


Skogskyrkogåtan의 자전거 타는 모자(2020.5월)

"CLRTAP의 시발점이기도 하고 그를 통해 스웨덴이 지키려고 했던 숲과 호수라는 존재가 그냥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그리고 영혼을 지배하는 개념 중 하나라는 것이죠.


스톡홀름에는 스웨덴의 15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Skogskyrkogåtan'이라는 공동묘지 공원이 있는데, 이 공원의 모티브도 '사람은 숲에서 태어나서 숲으로 돌아간다'라고 합니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어주기도 하구요."


"스웨덴 사람들은 6월 중순부터 8월 하순까지 여름휴가나 12월 크리스마스 주간부터 다음 해 1월까지 겨울 휴가를 즐기는데, 상당수가 깊은 숲이나 군도(archipelago)에 들어가 휴식을 보낸다고 합니다. 주말에도 수시로 이런 곳에서 캠핑을 즐기구요.


이처럼 1년의 4분의 1 이상을 숲에서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것 같구요. 자연이라면 하늘도 있고 바다도 있겠지만, 스웨덴인에게만큼은 '숲과 호수'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숲과 호수'가 황폐해진다는 건 자신들의 삶의 4분의 1이 없어지는 것이겠죠. 그래서 CLRTAP을 비롯한 인간과 환경에 관한 주제에 그렇게 열성적으로 참여했는지 몰라요."


"아 그렇네... 자연 중에서도 '숲과 호수'. 그럼 그를 통해 형성됐다는 스웨덴인의 아이덴티티로 뭐가 실제 기업활동이나 현지 활동에 참고할 수 있을까요?"


"이건 휄레프테오 공장에서 만난 부장님께 들은 말과 접맥 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요. 한국 사람 입장에서 스웨덴 사람들하고 일하다 보면 좀 답답한 측면이 많대요. 우리나라는 속전속결하는 스타일인데, 스웨덴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스케줄을 정해놓고 누가 뭐라 해도 그 스케줄대로 가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4월 말 우리 회사 본사에서 휄레프테오 공장에다 '회장님께서 6월 말에 현지 방문을 해서 협력사인 N사 관계자들과 만나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라고 지시가 내려왔어요.


그래서 우리 현지팀이 협력사에 이 사실을 전달하면 약간 성사가 안될 가능성이 있어요. 왜냐면 그들이 매우 소중히 여기는 가족과의 휴가 시즌인 6월 중순을 지나 6월 말에 온다고 우리가 제의를 했기 때문이죠.

스웨덴 기업인들과의 회의 장면(주스웨덴 한국대사관-Volvo Truck, 2022.3월)


백번 양보해 6월 말 회의가 성사됐다고 합시다. 그럼 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울 거예요. 5월 초 스톡홀름 본사와의 정기회의를 통해 한국 측의 요청 사실을 알리고, 그 본사에서는 이에 대한 주요 의제 등의 계획을 수립하게 될 겁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기에 6월 말 회의에서 여러 가지 현안을 동시에 제기하고자 내부 회의 등을 5월 중에 실시해서 5월 말쯤 휄레프테오 지사에 통보하겠죠.


본사가 회의 주제 이외 수반될 만찬 등 계획을 세우는 동안 휄레프테오 지사에서는 6월 초 한국 측에 자신들의 회의 의제, 참석자, 일정 등을 전달하고 의견을 구하겠죠. 그리고 피드백이 올 1주를 예상한 뒤, 한국 측에서 피드백이 오면 6월 중순 본사에 전달해 준비를 마무리할 거예요. 그리고 6월 말 손님을 맞는 거죠.


그럼 한국 측에서는 이런 스웨덴 측 일정에 따라갈까요? 거의 아닐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회장님이 오신다고 해서 4월 말 회의 제의를 한 순간부터 계속 스웨덴 측의 준비 상황을 물어보고 확인하려들 껍니다. 심지어는 스웨덴 측 의제를 한국 쪽에서 만들어 줄 가능성도 있지요. 그만큼 한국의 본사도 휄레프테오 지사에 계속 채근을 할 거구요. 아니 1주일이면 대충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스웨덴의 일처리에 답답해할 거예요.    


그러면 스웨덴 측은 한국 측의 이러한 재촉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정답은 크게 반응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그들이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일을 진행할 뿐이죠. 한국 측이 아무리 애간장을 태워도 그들은 정해진 기일에 그들의 준비상황을 맞출 겁니다. 특징은 한국 쪽이 아무리 답답해하고 왜 이리 느리냐고 해도, 결국 6월 말 회의는 정상적으로 예정된 시간 내에 치러진다는 겁니다. 재촉하던 안 하던 결과는 나와요.


이것은 스웨덴에서의 업무 처리에 중요한 단면입니다. 어찌 보면 느린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준비를 게을리하거나 미루지는 않아요. 그들은 큰 일도 서서히 준비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완수를 합니다. 마치 스웨덴의 숲과 호수가 수억 년에 걸쳐 천천히 조성된 것처럼.


이것을 무시하고 인공으로 숲이나 호수 만들듯이 강행한다면 일이 진척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신뢰에도 큰 금이 가게 될 거예요. 그들은 한국 측의 전화를 받지 않거나 메일에 답장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숲과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요."   


"아. 중요한 포인트네요."


"그러게. 이 좁은 땅 떵이에 사는 우리나라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다르잖아. 거의 지구 반대편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스웨덴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우리 식으로 해선 안 되겠지."

스웨덴 중부의 대표적인 숲인 Tiveden National Park(2020.7월)



호형이 말을 더 붙였다.


"스웨덴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다르게 봐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요? 뭐죠?"


"이번 방문한 Jämtland주의 면적이 남한의 절반입니다. 그런데 인구는 12만 6천여 명에 불과하죠. 각각 두 배씩 한다면 남한 면적에 35만 명이 사는데 환경이 같을 수가 있을까요? 35만 명 모두가 1년 내내 쓰레기를 버려도 그보다 140배의 인구인 5천만 명이 사는 우리나라에서 한 달에 배출되는 쓰레기만도 못할 겁니다."

한 여름휴가철인데도 한산하기만 한 Östersund시 중심의 호숫가(2020.7월)


"그렇긴 하네요."


"물론 준법의식이 강하기로 소문난 스웨덴 사람들이 그러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주어진 여건이 다름에도 스웨덴을 무작정 부러워하는 것은 좀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 하겠지만요."


"저도 호형 군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희 팀이 북부 룰레오부터 지금이 세 번째인데 수소 철강이라던지 배터리 산업이라던지 스웨덴의 풍부한 수력발전을 바탕으로 한 녹색산업의 성장과 Jämtland주의 풍부한 숲과 호수를 부러워하며 야 역시 스웨덴 최고야~라고만 외칠 것은 아니라는 것이 문득 들었어요."


"맞아요. 어제 1박을 하는데... 한국 가면 어디든 볼 수 있는 편의점이나 가게를 초저녁인데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맑은 공기와 물만 보고 사는 것도 아니고... 사진 찍으면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언젠가 '재미없는 천국'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바로 스웨덴이 그곳이 아닌가 싶어요." 

Jämtland주를 달리다 보면 일상으로 마주치는 전원 풍경. 다만, 이게 계속 이어지면 좀 지겨워진다(2020.7월).


"어제 CLRTAP 건의 적용도 그렇잖아요. 좋은 모델은 될 수 있지만, 이를 바로 한국에 100% 적용시키긴 어렵죠. 우리가 오기 전 한국에서 본 많은 스웨덴에 대한 책들은 스웨덴을 지상 천국에 최고의 모델 국가로만 묘사해놨는데 입국한 지 3주가 되면서 과연 그런 것만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요. 불편한 점도 많고... 그래서 저희도 앞으로 일정에 스웨덴을 우상처럼 생각만 하는 오류는 피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고요."


"가장 비근한 예로 드는 것이 스웨덴의 복지를 부러워하기 전에 매달 소득의 최소 30% 이상을 거둬가는 세금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들을 많이 하죠. 대도시 중심가를 빼면 거의 볼 수 없는 경찰차와 휄레프테오 공장의 부장님이 갑자기 아팠을 때 병원에 가서 신속하게 치료받는 것조차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앞으로는 그런 것을 감안해서 스웨덴 사회를 들여다보고 싶어요."


회의실의 한 임원이 거들었다.

최근 출간된 스웨덴 사회에 대한 비평적인 책. 볼 만했다.

"그래, 내가 이 평가회의에 들어오기 전 서점에서 스웨덴에 대한 책들을 뒤져봤는데, 과거에는 말한 대로 스웨덴을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책들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여행이 아닌 실제 어느 정도 살아 본 사람들이 관찰자 입장에서 문제를 지적하는 책들도 좀 나오더라구.


선진국이라고 무조건 선망의 눈초리로 보기보다 다양한 시각을 갖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장이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 우리 앞으로는 스웨덴을 천국이 아닌 '숲과 호수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 사는 나라'로 관찰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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