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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Nov 03. 2022

온탕에서 냉탕으로

02. 그들에게는 냉탕이지만, 나에게는 온탕이다

* 집에서 바라본 전경


언젠가 대학 동기들과 저녁을 할 때였다.


20,30대 초급 간부에서 어느덧 40을 훌쩍 넘어 50을 바라보는 이들,  잘나서라기 보다는 연차가 되다 보니 이제는 경찰서 과장, 지방 경찰서장, 기업의 부장 등 서로 다른 삶들을 살아가고 있어 공통점을 찾긴 힘들지만 역시 인사 문제가 공통 관심사가 될 때가 많다.

우리도 X세대라고 하던 92학번이었는데. 항상 고마운 친구들.


"야, 난 지방청 끝에 경찰서에서 이번엔 반대편 끝으로 났어. 옮겨가는데만 두 시간이야."

"어이구, 뭐 잘못했냐? 저런..."


그러나 나의 한 마디로 모두 숙연해졌다.

"난, 브라질 근무하고 다음이 중국이었어. 비행기로 가는데 33시간이지. 차로 가면 한 달은 될 거다."  




스웨덴에서 3년의 근무를 마치고 결정된 나의 다음 근무지는 브라질리아가 되었다. 인사가 자신이 원하는 100%인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0%도 100%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스펙터클하게 사시네요'라고 하지만, 좀 다르고 멀뿐이다. 브라질 근무는 10년 전 상파울루에서 했었기에 두렵지는 않았지만, 나도, 아내도, 아들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새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떠났다.  

출국 날까지 공항 마중 나온 동료들. 휴일이기도 하고,  출장단까지 있어 바쁠 텐데, 너무 고마웠다.

떠나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내려다본 스톡홀름의 모습은 별로 그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눈을 못 떼고 계속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3년을 살았는데 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그곳. 내가 또 언제 다시 여길 올 수 있을까. 매일 출근길에 보았던 숲과 퇴근길을 수놓았던 아름다운 노을. 그리고 사람들과 스웨덴 속에서 푹 빠져 살았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브라질로 가는 길은 멀었다. 비행기를 두 번 환승해야 했고 총 걸린 시간은 28시간이었다. 사실 이젠 비행기를 타는 것이 썩 좋지는 않다. 몇 시간씩 망망대해 위를 날다 보면, 뭔가 모를 불안함과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뒤섞여 멍해지는 거 같다.   


첫 번째 환승지 카타르 도하에 도착해 몇 시간 머물다 보니 느껴지는 복잡하고 무질서함이 왠지 낯설다. 그래 사람이 적게 살기도 하지만 교과서대로 돌아가던 북유럽이라는 곳을 떠났다는 것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는 적응해야지. 도하에서 다시 상파울루로 오는 14시간 동안은 기내식을 어쩌다 보니 세 번이나 먹었다. 아휴 처음이나 좋지 계속 앉아 먹으니 속이 더부룩하고 허리도 쑤신다. 애들은 힘도 좋은지 내내 울어대고 달래지도 않는 부모덕에 내내 삐질삐질 대다 드디어 브라질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10년 만에 도착한 상파울루 과를류스 공항은 예전 근무할 때와 몰라보게 새로 단장되어 크고 깨끗해졌다. 다만, 짐을 다시 찾아 수속해야 하고,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과정이 길고 멀었다. 공항 근무자들은 스웨덴과 달리 영어가 거의 안 돼 불편했지만, 그나마 예전에 배웠던 포르투갈어가 머리에 남아있는 게 다행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브라질리아로 갈아타는 국내선 게이트에 도착해 30분 정도 남아, 오랜만에 '아싸이(açaí)'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맛이야.'


30분 연착 이후 탄 비행기는 광활한 브라질 대륙을 거쳐 1시간 50분이 되어 최종 도착지인 브라질리아에 도착했다. 아, 진짜 멀다. 사실 예전에 상파울루 근무를 마치고 떠날 땐 당시 근무가 너무 힘들어 내가 다시 또 여길 올 일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떠났는데, 인생이라는 것이 참 희한한 게 돌고 돌아 나는 다시 브라질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첫날 밤은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다채로운 브라질리아 풍경들(2022.8월)



"꺅!"       


임시 숙소의 베란다에 빨래를 널던 집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뭔가 봤더니 왕도마뱀이 날름날름 인사를 했나 보다. 이후로 집사람의 비명은 수시로 들렸다. 어느 밤에는 밖에 웬 곰이 지나간다고 해서 보니 카피바라(Capybara)라는 대형 설치류가 몰려다니는 것이었다. 스톡홀름에 살 때는 북구여서 그런지 3년 내내 아주 시골을 가도 순록이나 사슴 등 순한 동물만 봤지 큰 동물은커녕 모기나 파리에 시달리지 않았는데, 집 근처가 거의 동물의 왕국 수준이다 보니 아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나는 "도마뱀이 있다는 건 환경이 깨끗해서라네. 저게 모기나 파리도 잡아먹잖아.", "카피바라는 덩치만 크지 순하대. 밤에 안 나가면 되잖아" 등으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보면 귀여운 도마뱀들. 카피바라는 자동차와 비교하면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다음 날 출근하니, 미국이나 유럽 대사관이 몰려있는 곳과 달리 약간 외곽에 있긴 했지만 대사관은 한국식으로 멋지게 지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사님을 비롯해 많은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전에 본부에서 과장 근무할 때 같이 근무했던 직원도 있어서 많은 위안이 되었다. 다만 사무실은 좀 황량했다. 스웨덴에서는 방이 작긴 해도 여러 편의시설이 있었는데, 여기는 그냥 휑한 사무실에 책상하고 소파만 놓인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잘 꾸며야 지하고 생각하고 더 정을 붙여가야지 생각도 했다(조그만 짐승을 좀 키워볼까 생각도..)

주브라질 대한민국 대사관 전경


근무를 시작하고 며칠 안돼 주말이 되어 슈퍼마켓도 가보고 집도 보러 다니기도 했다. 슈퍼에 싱싱한 과일이 많은 것은 스웨덴에 비하면 참 좋은 것이었다. 전에 좋아하던 과라나 주스나 수박주스를 사서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살 집을 구하러 다니며 도로가에 주렁주렁 매달린 망고나 두리안 같은 과일을 보며 여기가 열대가 가까운 곳이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보니 확실히 - 자꾸 비교하고 생각하면 안 되지만- 스웨덴과는 모든 것이 정반대라는 생각이 더욱더 들어갔다.  


집을 구하러 다니다 보니 아내가 좀 실망하는 모습인 것 같았지만, 이내 적응하고 한 달만에 살 집을 정했다.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딘들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낡은 아파트도, 황량한 주변도 오히려 스톡홀름의 빈틈없는 깨끗함보단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제 퇴근길에 돌아가는 아파트 주변도 정이 조금씩 가고, 주말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깔끔하게 생긴 작은 일본계 프랜차이즈 카페(브라질은 일본계가 200만에 달해 영향력이 크다)에 들려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되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과 당골 집이 된 2평 남짓의 작은 카페

 

붙임성이 좋은 아들도 학교 생활에 금방 적응하고 잘 학교를 다니고(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도 초보 포르투갈어에 손짓 발짓까지 하며 브라질 생활에 익숙해져가고 있으니 다행이다. 세 가족 구성원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그래도 잘해나가고 있으니.. 두 달이 넘어가는 지금 우리는 거의 브라질리아 시민으로 훌륭히 적응해나가는 거 같다.  

아내는 동네 세탁소 아줌마와도 절친이 되었다.


생활도 생활이지만, 처음 오자마자 맡게 된 업무에도 벅차게 밀려왔다. UN 인권이사회나 국제 민간항공기구(ICAO) 같은 국제기구 선거 지지 요청이라던지 북한 관련 이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주목하고 있는 브라질 대통령 선거 동향 파악 등 정무 업무, 우리나라 방송까지 탔던 영사 업무, 10월 국경일 리셉션 등 총무 업무 등 능력 있고 착실한 직원들이 잘 도와줘 근근이 넘겼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 뒤돌아 보면 하휴...라는 마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뿐이다. 그냥 어떻게 능력에 찰랑찰랑해가면서 넘어간 느낌...

10월 국경일 리셉션. 코로나 이후 첫 큰 행사였는데 직원들의 헌신으로 다행히 잘 치렀다.



외교부에는 재외공관 근무에 있어 온탕 냉탕을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온탕은 선진국 근무를 의미하고 냉탕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 근무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원칙이니 100% 지켜진다고 보기도 그렇고, 또 스웨덴 같이 환경이 좋은 곳에서 근무하면 당연 다음은 그렇지 않은 곳으로 가야겠지만, 막상 닥치게 되면 어려운 점도 있고 생각할 점이 많다. 나만 소위 말하는 좋은 곳에 근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해도 가끔은 가족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들게 된다.


특히, 이제는 나이가 들다 보니 젊었을 때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두려워질 때가 있다. 이제는 환경을 옮겨도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보다는 어리고 젊은 사람들이 많으며, 그렇기에 더 걱정이 앞서고 실제 외로움도 많이 느끼게 된다. 또, 가장으로서 아내는 그리고 아들은 어떻게 잘 적응할까.. 걱정도 되고,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도 더욱 그립다. 한국에서 지구 반대편인 브라질이다 보니 더 그런 마음이 앞선다.

브라질 천도 200주년 기념식 준비하는 전투기가 하늘에 수놓은 하트(2022.9.6.)


다행이라고 한다면, 브라질에는 따듯한 사람들이 많다. 대사관 직원들도 그렇고, 동네 슈퍼나 식당을 가도 친절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것은 유럽에서 깨끗한 환경이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느낌과는 또 다른 것이다. 또, 멀리 떨어져 있기에 같은 처지인 사람들과 공감이 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온 지 한 달 만에 일본대사관의 정무팀장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는데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마지막으로 커피라는 친구가 생겼다. 은행 계좌에 가입하니 담당 직원이 커피를 선물로 주었는데, 동네 당골 커피집에서 드립 커피 기구를 사다가 아침을 드립 커피에 물 내리며 퍼지는 향기로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 업무계획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데 혼자이지만 마음이 풍족해지는 느낌이 든다. 커피 향이 퍼지면 텅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좋다. 이제 나는 외롭지 않다.



다만, 3년 동안 겨울이 1년의 반인 북구의 서늘한 나라에서 살다가(북위 59도) 열대가 가까운 지역에 살다 보니(남위 15도) 더위도 더위지만, 도착한 8월 말~9월은 건기여서 마치 사막 같기만 했다. 또, 해발 0에 가까운 스톡홀름에서 해발 1000m가 넘는 브라질 고원에 위치한 브라질리아에서 살다 보니 한동안 머리가 멍멍하기도 했다. 뭐 로보나 너무나도 다른 환경이다. 사막에서 사는 것 같이 건조한 더위가 턱턱 다가온다.


말로는 표현 못해도 힘든 하루가 계속될 때쯤, 퇴근길에 우버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아, 슈바(chuva)!"


그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기(rainy season)를 알리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땅이 갈라질 듯한 날씨 더니, 하늘은 참 이럴 때 대지에 비를 내린다. 그래서 어디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우기가 시작된 지 1달이 다되다 보니 이제는 거의 폭우나 천둥번개도 하늘이 갈라지게 내리치지만, 그래도 이 우기가 좋고, 빗소리를 들으며 마루에 상을 펴놓고 공부를 했던 어린 시절처럼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할 때가 많다. 물론 그 덕에 모기나 벌레들이 많이 늘었긴 한데...

우기에는 비가 오면 엄청 많이 온다.


남들이 말하는 온탕에서 냉탕으로 온 지 2개월이 넘었다.


그들에게는 냉탕일지 모르지만

사람의 온기와 대지의 따스함, 그리고 촉촉한 빗방울이 느껴지는 브라질은


나에게는 온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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