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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Nov 05. 2022

50살의 내가 20살의 나에게  02

내가 물은 건, 좋은 거냐는 게 아니라, 좋았냐는 거야.

* 대학시절 들고 다니던 007 가방


"어이, 일어나 봐."

"(비몽사몽)... 헉, 누구세요..."

92학년도 학력고사 체력장 수검표와 경찰대학 1차 시험 수험표(1991년)

"소리 지르지 말고... 야, 고민을 했으면 다 풀고 자야지, 그대로 자면 어떡하냐."

"아니, 그러니까... 누구냐고..."


"그거... 좀 설명이 긴데... 내가 너야."

"...?"


설명이 길어졌다. 자다가 깬 20살의 나는 50살의 나를 간밤에 집에 들어온 강도로 생각했다. 설득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당연하지.


"정 못 믿겠으면, 내가 너에 대한 거 몇 가지 말해볼 테니 맞나 봐 봐."

"네..."


"너, 독서실에서 000 보면 속으론 좋으면서 겉으론 담담한 척하고 니 자리에 들어와서 걔에 대해서 한 바닥 쓰고 혼자 상상하지?"

"엇, 걔 이름을 어떻게?.."


"너 그리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친구들이랑 0000 봤지?"

"아니 참..."


"너 그리고... 신체적 비밀 몇 가지 얘기할 테니 맞나 봐 봐..."


잠시 후 20대의 나는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저 근데... 누구세요? 그건 우리 엄마 아빠도 모르는데.."

"말했잖아... 내가 30년 후에 너라고... 설명하자면 긴데..."



20대의 내가 50대의 나를 인정하기 시작한 건... 

책상 옆 거울에 비친 둘이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대학시절, 졸업 후 경찰서, 경찰청까지(1989~2001)

"그래.. 거울에 같이 서보니 좀 닮긴 닮았네요. 그럼 뭐라고 불러요?"

"뭐라고 하긴 뭐라고 불러 임마, 내가 넌데. 그냥 '야'라고 해야지."

"... 아빠하고 닮았는데... 아저씨한테 '야'라니..."

"괜찮아. 내가 너라니까. 그럼 편하게 '야 50'이라고 해. 나도 '응 20'이라고 할게."  


그렇게 50의 내가 20의 나와 친해지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나는 가끔 니 인생에 나타날 거야. 이런 순간에."

"그럼 50, 니가 나타나서 내가 고민 얘기하면 다 풀어주는 거야?"

"... 몇 마디 해줄 순 있겠지. 다 풀리진 않겠지만."


"야, 그럼 올해 여친 생기는지, 걔가 이쁜지 못생겼는지 좀 알려줘..."

"... 그렇게 내가 한가하진 않아, 임마."

"난 중요한데..."


"그나저나, 내일 학교 간 대매? 춥겠다."

"그러게. 근데 추운 거보다... 가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 잠이 안 왔어."


"근데, 넌 아마 내일 아침이 되면 갈 거야."

"그래? 왜?"

"넌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너 말 잘 듣잖아. 부모님 말, 선생님 말..." 

"그렇긴 하지."

"그래서. 좋았어?"

".... 그냥 그렇게 사는 게 좋은 거 아니야?"


"내가 물은 건, 좋은 거냐는 게 아니라, 좋았냐는 거야."


"그건... 모르겠다.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 같애." 

"왜?"

"그것도... 뭘 그런 걸 따져?"


"내가... 어디서부터 얘기해줘야 할지 모르겠지만... 넌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잖아. 아침 6시 전에 겨우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에 7시까지 가서 8시에 0교시 수업 듣고... 밤 10시까지 공부하다 다시 독서실로 가서 1시까지 공부하고 집에 왔었지... 물론 기계적으로 맞춰진 틀 속에서 움직인 거지만, 너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걸 보이려는 마음도 있었을 거야. 모범생, 공부 열심히 하는 애로 비치고 싶은."


고2 수학여행-첫 번째 줄 가운데 빨간색(1990.5월)

"뭐... 그런 거도 있었겠지."


"그럼 니가 짬짬이 자는 시간을 1~2시간 뺀다 해도 하루에 열몇 시간을 책상에 앉아 책을 볼 텐데... 니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래서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보다, 시키는 대로 남이 만든 책을 보고 푸는데 거의 99%를 소비한 거 아니냐? 그러니 니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게 산 거지."


"다들 그렇게 살잖아."

"그런데, 그래서 지금 너한테 남은 게 뭐야."

"... "


"잠깐이라도, 하루에 잠깐이라도 너한테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 뭘 어떻게의 중심이 너로."

"그럼 내일 학교 가는 건 어떻게 해야 해."

"그것도 니 스스로 생각해 봐."   


"근데, 일단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좀 생활하다가 맞지 않으면 다른 길도 알아볼 수 있잖아."

"글쎄. 다른 길을 알아보는데 시간이 꽤 걸릴 텐데."



그렇다. 1992년 경찰대를 들어가 2007년 외교부로 직장을 옮길 때까지 나는 15년이란 세월을 경찰이라는 울타리에서 살았다. 인생의 가장 황금기인 20,30대를 경찰이라는 조직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함께했다. 경찰은 나에게 대학교육의 기회를 주었고,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놓아주었다. 


어린 나를 사람으로 성장시켜주었던 부모라는 존재가 있었다면, 경찰은 나를 사회의 구성원으로 조각해주었던 고마운 존재다. 그러기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했고 조직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보다 강했다. 나는 경찰이 돼가면서 푸른 제복과 하늘색 근무복이 좋았고 그 속에 사람들이 좋았다. 나이가 들어도 고향을 잊지 못하듯이, 지금도 경찰에 대한 안 좋은 기사가 나오면 마음이 아프다.   

대학 1학년 중국어 수업 종강 후(1992.12월). 대만 출신의 화교이신 교수님과 학생 때는 싸우기도 했지만, 졸업하고도 항상 응원의 편지를 보내주셨고 결혼식 주례도 봐주셨다. 

다만, 어린 시절 나의 선택이 달랐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마음속 깊이 남아있다. 결과론적으로는 무난히 사회인이 되어갔고 지금도 그 조직에 대한 애착은 남아있지만, 나 스스로의 주도적인 선택이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또, 그래서 주도적으로 선택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에 대한 궁금함도.


"야, 20. 살아보니까 여러 가지 해줄 말은 많은데, 이제 날이 밝아질 테니 한 마디만 해줄게 있어."

"뭔데, 50."


"너 지금까지 객관식으로 살았잖아. 남이 만들어 놓은 시험지에 적힌 4개의 답을 찾는(당시 학력고사는 4지 선다형의 시험이었다). 정해진 답을 찾는 그런 시험. 근데 모든 시험이 다 그렇지는 않아."


"요즘 조금씩 주관식도 있어. 배점이 높지. 특히 수학은 답이 0 아니면 1인 경우가 많지."


"그래, 주관식처럼 살아. 인생을. 남이 만들어 놓은 시험에 남이 만들어 놓은 답안을 찾아 정해진 답안지를 맞추지 말고, 니가 만들어가는 답안을 만들면서 살아. 그럼 니 인생의 배점이 높아질 거야. 객관식 시험에 익숙해져서 주관식이 낯설지만, 앞으로는 자기 기준에 따라 자기가 만들어가는 답안을 써가는 연습을 더 해. 그럼 더 행복해질 거야. 30년 후에."


"그래? 50 그럼 그렇게 살은 거야?"



"내가 시간을 건너오면서 조건이 달린 게 있어. 현재의 나를 말해줄 수 없다는 것. 20, 너는 그걸 알아서도 안돼. 인생이란 조각을 맞춰나가는 퍼즐에 완벽하게 성공하는 사람은 없어. 또, 내가 너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준다 해도, 정해진 너의 결정이 바뀌지는 않을 거야. 그 또한 인생이니까."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하여간 다시 자면서 생각해 볼 여지는 준 거 같아 고마워. 근데, 50. 나야 니가 가끔 이렇게 나타나 얘기해주면 도움은 되겠는데, 넌 나한테 이렇게 얘기해줘서 뭐가 득이 돼?"


"나? 나도 도움이 돼. 50이긴 하지만, 나도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좀 있거든. 20 너하고 얘기하면서 나도 내 인생을 돌아보고, 또 너와 대화를 통해 나도 느끼는 게 있어. 전에 이렇게 살았으니 앞으로는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예를 들면 오늘 너한테는 이렇게 얘기했지만, 나도 주관식으로 살아가고 있지 못하는 점이 있어. 그래서 좀 더 그렇게 생각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게 너한테 받는 교훈이지."


"그래? 50, 결혼했어? 애는? 딸이야? 난 50 되면 뭐하고 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어디서 살아?"

"그거.. 너는 상상도 못 할걸? 주관식이 어렵잖아.ㅎㅎ"


그 말을 끝으로 20은 잠이 스르르 들었다. 

그의 머리맡에는 그 당시 인기 그룹이었던 ZAM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61fmKQyTak


"20. 가끔 찾아올게. 좋을 때 말고, 니가 고민할 때. 지금 보니 그래도 그때가 니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고 그러기에 힘들어하기보다, 그 고민조차도 너무 아름다워. 항상 응원한다."



대학 입학 후 첫 외출 여행에서(1992.3월)

30년 전, 그날 아침 나는 학교로 향했고, 생애 처음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쳐 학교에 입학했다. 지금 생각하면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은 운명인 것 같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 학교를 안 갔더라면. 개그맨 서경석도 육사에 입학했다가 예비입학을 마치고 스스로 나왔다고 하지않았던가. 내가 학교 다닐 때도 1년에 학교를 퇴교하는 선배, 후배 들이 소수였지만 있었다. 나가는 이들이 안되보였지만, 몇 년 뒤 그들 중 몇몇은 신문의 사회면을 차지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어 부와 명예를 모두 차지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면 학교 생활을 그렇게 잘했던 사람들이 막상 초라하게 늙어가는 모습도 살아가면서 목격하게 되었다. 내가 그때... 라는 가정은 어떻게 나의 현재의 모습이 되었을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모든 사람에게 정해져 있다는 운명.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었고,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나는 이제 운명을 믿는다. 앞으로도 주어진 운명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전보다는 좀 더 인생을 주관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20에게서 배우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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