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20. 그래도 학교 입학했네?"
"오, 50. 오랜만이야. 아니, 한 두 달 만이구나."
"뭐하구 있냐?"
"아, 친구들이 보내줬던 편지 다시 읽고 있어."
"왜?"
"아니, 그냥 생각나서..."
학교 입학 당시 고등학교 친구들이 보내주었던 편지들
"음... 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게로구나."
"어... 뭐... 좀..."
그랬다.
학교를 처음 들어가고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시간. 입학 과정도 남달랐기에 친구도 별로 없었고, 그렇게 숫기가 많은 것도 아니었기에 늘 외롭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것 같다. '아웃사이더'라는 표현이 더 맞았을지 모른다. 그때마다 친구들이 보내주었던 편지들을 다시 보고 또 보고했다. 지금처럼 이메일이나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1992년 4월의 어느 날. 공강 시간 도서관 뒤에서. "야, 그래도 편지 정말 오랜만에 본다. 요즘은 별 볼일 없는데."
"왜? 30년 후에는 편지 말고 뭘로 소식 전하는데?"
"햐... 이거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그.. 말이지... 아니 됐다. 나중에 되면 그냥 손바닥에서 바로바로 확인한다. 말해도 이해 못 할 테니 그냥 넘어가지."
"50. 난 니가 이해가 안 가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런데 정작 생각해보니, 지금 카톡 날리면 '카톡' 하며 날아가는 속도보다, 대학에 입학한 92년에서 지금 2022년까지 30년의 세월이 더 빠른 거 같다.
"50. 근데 지금 이 친구들하고 아직도 연락해?"
"글쎄..."
그렇다.
그 편지를 보내주었던 한 친구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주에서 살고 있다는 메일을 받고 연락이 끊긴 지 10년이 넘었고, 또 한 친구는 내가 스웨덴 근무를 나갈 때 미국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막 들어와 기러기 아빠가 됐다며 술잔을 기울인 이후 카톡에 친구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절교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잊혀갔다.
"20. 영원한 것은 없대잖아. 세월이 가면 지금의 친구들이 계속해서 남는다는 보장은 없어."
"그래? 그래도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평생 간대잖아. 그리고... 지금 이 대학은 다른 대학과 틀려서 계속 보지 않을까? 직장이 거의 정해진 건데."
92년 120명의 동기들과 학교에 입학하고 지도교관에게 수없이 들은 말이 있다. 여기서 4년을 같이 생활하고 졸업하면 죽을 때까지 다시는 못 볼 동기들이 태반이라고. 그런데, 그 말은 정말 맞았다.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고도 한 번도 못 본 동기도 있었으니.
1학년 2학기 동기생회를 같이 했던 성권이는 26년 후 세종시의 작은 식당에서 아들이 서울 모 대학 의대에 수석으로 붙었다고 좋아하는 아빠의 모습으로 만났다(2018.12월).
"20.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남지 않을 거야. 인간관계라는 것이 영원한 게 없거든."
"뭐.. 아주 다 길게 갈 거라고 생각은 않지만.. 50. 그래도 중학교 친구 00이, 고등학교 친구 00이 같은 애들은 같이 죽을 때까지 같이 할 거 같은데..."
그래, 그 친구들을 떠올려 보았다. 한때 단지 혈맹이라도 할 것 같았던 그 친구들. 역시 어느 순간 사라져 갔다. 20대 시절에는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다.
"20. 그런데 말이야. 점점 생활이 변해져 가. 그래서 인간관계가 넓은 것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졌지만, 점점 사람이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인간관계라는 것이 한정적이고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거야. 나같이 50이 되면, 특히 남자들의 경우, 회사에서의 직함을 단 인간관계가 어찌 보면 자신이 가진 인간관계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고, 정말 남아있는 친구는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돼."
"그래? 그럼 선배나 후배들과의 관계도? 지금 외출해서 식당에서 밥 먹다 보면, 가끔 어떤 선배들은 몰래 밥값을 계산해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어. 멋있지. 저런 사람들은 계속 존경을 받게 되지 않을까?"
지난달 미국 휴스턴에서 개최된 사건사고 담당회의에서 만난 선배들(2022.11월)
"20. 친구가 그런데 선후배는 오죽하겠어. 유지하는 건 쉽지 않지."
"50. 그럼 지금 인간관계를 넓힐 필요가 없겠네. 어떻게 살아야 해? 어떤 사람이 나와 오래갈 수 있는 사람이야? 어떤 사람에게 내 시간과 애정을 투입해야 하는 거지?"
"20. 그래도 몇몇은 계속해나갈 인연들은 있어. 그런 건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나 그런데 많이 나올 거야. 지나고 나서 보니, 그렇게 이어지는 건 비슷한 사람들이기에 가능했던 거 같애. 그건 뭐라 설명할 수 없어. 우리가 마음이 가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 사람들과 보낸 시간이 특별하다면 가능하겠지. 다만, 나무에 열린 사과를 모두 담을 수 있는 바구니가 없듯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돼."
좋은 친구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최근 가장 공감이 많이 갔던 김병조 교수의 동영상 강의(8분)
"50. 근데 지금의 학교 생활보다 나중에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날 거 아니야? 근데 친구도 줄어가고 인간관계도 줄어간다는 것이 좀 이해가 안 되네."
"20. 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그것이 다 니 사람이 되는 건 아냐. 심지어는 사람보다 나를 반겨주는 동물이, 아니면 아무 말도 없는 자연이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 젊은 시절인 20~30대에는 사람들을 만나 떠들고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노는 게 좋지.
하지만 40만 돼도 그게 큰 의미가 없다는 걸 느끼게 될 거야. 그럼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굳이 내가 그 모든 사람들에게 시간과 정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된다는 거지. 그러면서 자연이 더 좋아지는 거야. 차라리 말없이 바람이 불어도 좋을 때가 있거든."
"50. 나는 지금도 이 촌구석에 있는 학교가 답답한데 자연이 좋다고?"
1992년 6월, 대학 강의동 뒷편에서 생활실 동기들과 "그래. 그러다 보니, 60이 넘고 은퇴를 하게 되면 점점 아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고 자연은 더 가깝고 좋아지는 거 같애. 그러다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겠나."
"오, 좀 서글픈데."
"하하, 20. 니가 지금 그 걱정할 나이는 아니지. 어차피 그렇게 될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역으로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되기도 해. 걱정 말고 지금을 즐겨.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사랑도 많이 하고, 경험해보고 싶은 모든 것을 해보고. 어차피 너에게 남을 사람들은 남아있게 될 테니."
"그 남아있을 사람이 누군지 안다면, 다른 놈들에게 시간 낭비 안 할 텐데."
"그런 인생은 없어. 예상치 못한 배신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인연도 있어. 그 인연에는 결혼도 있고. 그게 인생이야."
"와! 50, 나도 결혼하는 거야? 여자는 이쁘냐?"
"... 너 미팅 때도 그러지?"
"남자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이번 주에는 00여대하고 한다던데~"
불쌍한 20.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주에 미팅했던 여자가 내 인생에 제일 못생긴 애였다.
지금도 생각해보니,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아직은 남아있다.
자주 연락은 안 하지만, 존재만으로 늘 감사한.
이제 많은 사람도 필요 없고, 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 감사하다.
영원하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내가 빼먹은 한가지가 있다면,
그래도 아직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빼지영
2018년 어느 여름. 경리단에서 친구들과.
영원하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내가 빼먹은 그 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