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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Feb 07. 2023

유머-내가 쓴 유머를 읽는 이유 1

마누라 속이기 in Sweden 외전(2)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한 가지씩 재주를 타고난다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남을 웃기는 소질이 좀 있었다. 내가 웃기는 스타일은 내 얼굴이 아주 우스꽝스러운 정도는 아니라 이주일이나 심형래의 슬랩스틱 코미디라기 보단, 김병조나 주병진식 개그에 가까웠고, 전유성의 개그를 지향했지만 너무 심오해서 미치질 못했다.


나의 유머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얘기가 멀쩡하게 생긴 놈이 웃기는 구만 정도의 반응이었다. 약간의 구라를 섞어 얘기하면 하굣길에 같이 오던 친구들은 제 집 방향도 모르고 듣다가 우리 집까지 따라올 정도였고, 나 또한 애들을 웃기는 것을 즐겼던 거 같다. 친구들 중에 개그 소재로 삼을 만한 놈들도 많았고 웃기는데 발군의 기량을 가진 놈들도 많아 굳이 주변에 소재를 찾을 필요가 없는 생활형 유머가 주종목이었다.


다만 유머가 넘치는 생활이라 하면 늘 즐거운 일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역설적으로 즐겁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에 유머가 많았던 거 같다. 같이 웃겼던 친구들도 풍족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이었다. 유명한 개그맨들 보면 어두운 기억들이 많듯이.      

영화 '선물'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무명 개그맨 용기(이정재 분)가 죽어가는 아내 박정연(이영애 분)을 생각하며 슬프지만 웃기는 연기를 해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유머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때는 그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유머에 대한 생각을 다시 갖게 된 것은 처음 파출소장을 하던 때였다. 98년 9월 스물다섯이 채 되지 않은 나는 서울과 접경을 하고 있는 구리시의 한 파출소장으로 부임했다. 이제 막 도시가 개발되는 지역과 구도심, 주택가와 사창가를 포함한 유흥가, 군경합동검문소, 국가중요시설, 나이트클럽, 술집, 산동네, 서울에서 넘어오는 폭주족 떼까지. 모두가 기피하던 1번 파출소. 발령받던 날 상사였던 방범과장님이 해주던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니까 젊은 니가 가야지."


다행히, 직원분들은 참 좋았다. 어려운 파출소 파출소라 소위 빽도 없는 젊은 직원들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늘 웃으면서 지냈다. 직원들 중에는 나중에 방송에 소리꾼으로 소개되시거나 대학교수까지 되신 분도 있었다. 30을 막넘은 젊은 경찰이었던 그 분들도 어느덧 50대의 중년이 되어버렸다.   

https://youtu.be/vYQY3ljO5to

https://youtu.be/slqADGqGcFs


하지만,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계속되는 업무와 쉼 없는 근무는 심신을 지치게 했다. 1998~99년은 IMF 구제금융으로 말 그대로 민심이 흉흉했고, 관할지였던 아차산에는 자살하는 이들도 많았다. 거의 한 달에 한두 번꼴로 형체를 모르게 부패한 망자까지 대면하는 것은 알게 모르게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한 달에 4번 정도 주어지는 휴무 날에는 한강시민공원에 가서 혼자 농구를 쓰러질 때까지도 해보고 집 근처 유명한 사찰에 가서 백팔 배도 해보고 도서관에서 조용히 고전도 읽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휴무날 한 대형 서점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하고 이 책 저책 보다가 구석에서 어떤 이가 킬킬대는 소리를 들었다. 뭔 책을 보고 저렇게 좋아하나 보니, 당시 유명했던 최불암 시리즈를 보고 혼자 웃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한심해 보이던지... 그러다 친구가 30분 늦는다고 연락이 와서 다른 책을 보려다 아까 그 최불암 시리즈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잠시 후, 도착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뭔 책인데 그렇게 침 흘리면서 보는데?"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 초급간부로서 겪는 사회생활의 어려움 등등... 말로 털어놓지 못할 고민을 나누다 보니 속은 후련했는데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아까 본 것 중 하나를 농담 삼아 말하고 같이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니 친구도 자기도 몇 개 안다면서 얘기를 해주니 또 피식거리며 나 또한 몇 개를 얘기했다. 헤어질 시간이 돼서 인사를 나누며 얘기했다. "야, 다음에 더 준비해서 오자."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시원했다. 그 생각을 하면 더 재밌었다. 혼자서도 킬킬대니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나는 좋았다. 그래서 느꼈다. 이렇게 사는 것도 재밌네.....


이후로 나는 유머책이라는 것도 몇 권 봤는데 생각보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주변에 웃기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하는 생각에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적어놓고 혼자 보기도 하고 직원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결과는 아주 좋았다. 크게 준비할 것도 없지만 중간중간 서로 나눈 유머는 윤활유 같았다.


몇 개 공개하자면....



[전공]

친구 만나러 간 식당에 옆자리에 맞선보던 남녀가 식탁 위에 깔린 걸 보더니 두 분들이 하는 말.

ㄱ: 식당이름이 '쉐누'네요. 불어로 우리 집이란 뜻이랍니다.

ㄴ: 아... 대학 때 불어 전공이었는데 몰랐네요..

ㄱ: 그럴 수도 있죠 머...

ㄴ: 그래서 누가 전공이 뭐냐고 하면 체육이라고 해요... 전공이 불어신가 봐요?


ㄱ:..... 체육입니다...



[양보]

어제 숙직하고 퇴근하는 바람에 지하철에 타자마자 눈감고 잤다. 어반자카파의 노래를 들으며 편하게~ 근데 자다가 눈을 떠보니 배가 좀 나온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앉으세요. 죄송합니다."

(물론 내가 임산부 보호석에 앉은 건 아니다)

여자가 좀 난감해하더니...

"아니에요...."

"피곤해서 몰랐어요... 얼른 앉으세요..."

"....."

마지못해 그 여자가 앉자, 잠시 후 그 여자 친구인 듯한 사람이 다가와서 속삭이는 게 들렸다.

 

"그러게 이년아, 살 빼랬잖아..."



[비밀번호]

사는 빌라 건물 옥상에 이상한 애들이 자꾸 다닌대서 입주자 대표가 출입문에 도어록을 달았다. 집사람은 "가온이 아빠, 비밀번호는 오빠친구 5879래. 재밌지?"라고 했다.


주말 오전 내내 자다 일어나니 아내가 옥상 가서 빨래 좀 널라고 해서 올라갔는데, 문을 열려고 하니 아무리 해도 안 열려 다시 내려와 "야 문 안 열리네"라니까 집사람이 같이 올라갔다. 나보고 다시 해보라고 해서 알려준 대로 하니 집사람이 인상을 찡그리더니,


"야, 내가 오빠 × 팔 5818이라 캤나?"



[10월 2일(일) 연휴를 앞두고 적은 단상]

단군 할아버지 너무 고맙다.

4천 년 전인데도

어떻게 내일 개천절이 월요일인 줄 아셨을까.

잘 쉴게요 ㅠㅠ 감동감동



[축약의 달인]

같은 사무실에 있는 조금 나이 드신 동료분이 질문을 했다.

동료: 실장님, 저번에 어떤 국장님이 갈비탕이 그렇게 맛있다 는 데가 어디라고 했죠?

나: 아 , '예촌 별관'이요.

동료: 고마워유. 예약하려는데 생각이 안 나서...


잠시 후

동료: (전화예약) 여보세요... 거기 '별촌'이죠?



이후로 나는 재밌는 사람으로 알려지고, 그렇게 많은 모임에서 화제에 중심에 설 수 있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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