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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Jan 30. 2023

기억 – 내가 ‘아빠’이던 시절

마누라 속이기 in Sweden 외전(1)

언젠가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들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허허.. 많이 컸구나 하는 기특함과, 어? 하는 뭔가 모를 허전함에 그 답을 찾지를 못하겠다.

시간이 지나면 아빠가 아버지로 불리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내가 내 아버지에게 그랬듯이...     


지난 기억들을 찾아보았다. 아빠로 불리든, 아버지로 불리든, 아직은 미성년자인 아들에 대한 법적보호자로서 지위는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르고 그것이 왜 허전함을 만드는 것일까. 일기장을 들추다가 10년 전 첫 근무지였던 포르투갈 근무를 마치고 가족들을 한국으로 보낸 기억에서 그에 대한 어렴풋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들이 안기면 세상 그 모든 것이었던 그것이 바로 ‘아빠'였고,

이제는 아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면서 그만큼의 자리를 비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아버지'인 나다.



2012. 2. 23. 4:26     

2년여의 포르투갈 생활을 마무리하며 오늘 새벽 아내와 아들이 한국으로 떠났다.     


새벽 비행기라 새벽 3시에는 일어나야 해서 어제 퇴근하고 아내와 부랴부랴 짐을 꾸린 뒤 밤 10시에 잠을 청했다. 아기 침대에서 재우던 아들을 아내와 사이에 두고 셋이 같이 누워 아내와 지나간 얘기들과 앞으로 살아갈 일들을 얘기했다. 아들놈은 계속 꼬물 꼬물대더니 어느샌가 잠이 들고 아내에게도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 빨리 자자고 11시부터 말을 아꼈다.  잠시 후...   


아내와 아들 모두가 잠이 들었는데,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도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요즘 잠자리에 누워 생각하듯, 아내와 아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영화필름 돌리듯이 그려보았다.     


아들이 태어나던 2007년 10월 마지막날,

15평짜리 개포동 공무원아파트에서 갓난 아들을 데려와 살던 초보 아빠시절,

아들이 처음 나를 보고 웃어 너무 좋아했던 일,

아들놈을 안고 마루를 뛰어다니면 이놈이 입을 하마만큼 벌리고 좋아하던 일,

아내와 돌을 지난 아들을 한국에 두고 리스본에 처음 오던 날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던 야경,

포르투갈에 처음 시작한 해외 생활에 힘들어 담배가 유일한 친구였던 날들,

그러다가 아내와 아들이 온다고 손꼽아 기다리던 일,

17시간의 비행 끝에 아들을 안으니 그래도 아빠 얼굴을 잊지 않고 웃던 내 아들,

리스본에서 걸음마부터 시작하던 아들놈이 점점 걷고 또 뛰어다니던 일,

몇 번 되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나들이 가던 날,

열이 펄펄 끓던 아들놈을 업고 말도 잘 안 통하는 병원 응급실에 뛰어가던 일..     


그래도 잠이 오질 않아 아들의 뺨에 손을 대고 한동안 얼굴을 보았다.     


수천번도 이런 아들을 내게 주어 하늘에 감사하다고 했건만,

자주 놀아준 것도 아니고 혼도 많이 내고 피곤하다고 짜증만 내었던

그런 아빠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만이 감돌았다.

내일이면 이렇게 보드라운 아들의 얼굴을 한동안 만질 수도 없겠지...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나보다 더 좋은 아빠를 만났으면 더 행복하고 사랑받을 텐데..

못난 아빠를 만나서 너무 부족하게만 해준 것은 아닌지..

내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아빠를 더 사랑하는 나의 아들..

네놈이 얼마나 소중한지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날에서야 깨닫는구나..


그러다 잠이 들었다.   

  

새벽 세시에 깨어 출국 준비를 하는데

피곤할 텐데도 잘도 일어나서 따라나서는 우리 가온이.     


"아빠도 비행기 타는 거야?"

"아냐, 가온이는 엄마랑 타고 가는 거야."

"아빠 안 타면 나두 안타."     


피식 웃고 새벽 바람을 가르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에서 표를 끊고 짐을 수속한 다음,

아내를 아들과 함께 출국심사대에 보낸다.

어.. 그런데...


아들놈이 갑자기 안 간다고 버틴다.

아까 아빠가 안 타면 나두 안 탄다고 했잖냐면서.


"아빠가 사무실 갔다 와서 탈께. 맨날 그러잖아."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들어간다.

아까 한 내 말이 맞는 건지 의심스러운 듯 아들놈이 출국장을 향하는 승강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계속 뒤돌아 본다.

       

아내가 들어가라고 손을 흔든다.

눈에 눈물이 넘칠 것 같다.

왜 이러지.. 미쳤나...


안되지.

나도 같이 흔든다.

빨리 가라고.


잠시 후,

계단 위로 아내와 아들의 얼굴이 사라진다....  

   

가슴이 텅 비었다는 느낌은

이런 걸까.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은 너무 황량하다.

아빠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잘해주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이 생각난다.

이제 17시간 50분의 긴 여정을 거쳐

아내와 아들이 한국에 잘 도착하기만 바랄 뿐.


영화는 보다가 뒷장면을 보고 싶으면 뒤로 돌려도 되지만 나의 인생은 한 번 지나가면 되돌아갈 수 없다.

아들의 귀여운 웃음, 목소리, 그리고 한아름 안았을 때의 행복함은 이제 시간이 지나면 없어져버리겠지.


앞으로도 인생에 여러 가지 길이 있겠지만,

아들과 아내와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많이 느껴가면서 살고 싶다.     


몇 달 뒤 다음 임지인 상파울루에서

한국에서 다시 찾아올 아들을 다시 보게 되면

또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있겠지.     


다시 시작될 상파울루에서의 재회를 그리며

리스본에서의 추억을 닫는다.


2012년 2월 어느 밤.


그에게 나는 넓은 세상 그 자체였었다(2012.2월, 리스본)


10년이 지난 요즘도, 가끔 잠이 들기 전 살아온 날들을 추억해 보는데, 리스본 공항에서 돌아오면서 느꼈던 그 새벽 바람은 자주 생각난다.


추억이지 뭐, 하며 애써 의미두지 않는 것도

중년을 맞이하는 아버지,

50살의 나의 몫이다.


10여년 새 멀어진 탁자보다 더 멀어지지 않기를(2022년 4월, 스톡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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