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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Feb 22. 2023

유머-내가 쓴 유머를 읽는 이유 2

마누라 속이기 in Sweden 외전(3)

* 경찰청 외사과 근무당시 사무실에서(2002년)


한국 사회에서 유머가 있는 사람은 종종 선호하는 신랑감, 소속한 집단에서 인기 있는 사람, 사회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로 언급되곤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게 얼마나 적용되는지 모르겠다.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들도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화면을 독점하지 나머지 사람들은 근근이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고,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높은 직급이나 부자가 아닌 이상 '실없는 사람'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요즘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유머는 서양에서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젊은 시절, 유머는 내성적인 나를 외향적인 나로 바꿔주는 마법과도 같았다. 남들처럼 그렇게 사교적이지 않았기에 내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적극적으로 인연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신은 그런 나에게 유머 감각이라는 좋은 무기를 주었다. 직장 동료들은 그냥 샌님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밌네? 하면서 즐거워했고, 어느덧 나에게는 생각보다 재밌는 사람이라는 명찰이 붙게 되었다. 모임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유머로 사람들을 한번 웃겨보려는, 그리고 그 웃음에 희열을 느끼는 그런 사람들.


생활 유머를 표방하던 나였지만, 그래도 넘쳐나는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과외(?)도 병행하는... 그래서 각종 유머란은 섭렵하고 거기에 핵심 사례들을 수집해 써먹다가,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하고 동문회 사이트에 올리기도 하고 아예 연말에는 '2016 박태진 유머집'이라는 식으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뿌리곤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연말에 지인들에게 돌렸던 유머집


그렇게 살다가 진급을 했고 나는 충청도의 한 군 단위의 작은 3급 경찰서의 지구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조선일보에 '한국의 오지 10곳'에 선정될 정도로 시골이었던 그곳에서 관리자의 입장인 내가 웃기고 그럴 곳이 아니었다. 물론 주변에 여전히 웃기는 사람들이 많기는 했다. 충청도는 충절의 고장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코미디언들의 고향 아니던가.


예를 들면 어떻게 알게 된 권투선수에게 충청도 사람들이 느린데 어떻게 그렇게 권투를 잘하냐고 물으니, "경상도나 전라도는 세 마디하고 주먹 한번 나가지만 우리는 한마디 하고 세 대를 패유~"라고 하질 않나, 관내 스님에게 "저 남쪽 천성산에서 터널을 뚫느냐니까 도롱뇽이 죽는다고 한 스님이 단식을 하시던데 스님도 '단식'을 가끔 하시나요?"라고 여쭤보니 스님께서 "음...  저는 '과식'을 하지요~"라는 둥...


주변에 재밌는 사람들이 있어 웃기는 했지만, 직급이 올라가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유머나 재밌는 사람이란 것은 불필요한 명찰이 되어간 것 같다. 그렇게 웃길 만큼 한가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12년을 일한 직장에서 전혀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서 그런 것은 더욱 멀어져 간 것 같다. 살아남기도 바빠죽겠는데 무슨 유머냐... (물론 가끔가다 전에 웃겼대메요... 하며 물어보는 직원들이 있으면 좀 당황스럽긴 하나...)

외교부로 건너와서 첫 출장에서-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2008년)


그러다 50이 되었다. 이제 사무실에는 크게는 나와 20살이 차이가 나는 직원도 있다. 가끔 뭐 왼쪽 머리 위에 검은 악마가 날아와서 '이 친구들하고 나하고도 별 차이 안나는 거 아냐?' 생각하다가도, 오른쪽 머리 위에 하얀 천사가 날아와서 '허이고, 그렇게 치면 당신은 53년생인 분 들하고도 차이가 안 나나요?'라고 현타를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더군다나 요즘은 세태가 더 빨리 변하지 않나? 그러니 주변에서 그런 걸 깨닫지 못하고 아재개그를 하다 무참히 짓밟히는 동년배들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많은 것이 달라지고 사라지는 것 같다. 건강도, 친구도, 그리고 나를 둘러 샀던 유머들도.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있는 이동형 저장장치에 있는 파일을 저장하다가 예전에 유머를 모아두었던 폴더를 찾았다. 지울까? 하다가 죄다 문서 파일이라 저장해 놓은 동영상파일 1개의 1/10도 안되는데...라는 고민 끝에 한번 보고 지우기로 했다. 조삼모사 시리즈 등등... 그림파일까지 뒤져가면서. 


2006년 만화가 고병규씨가 연재했던 '조삼모사' 시리즈


결과는... 한참 신나게 웃었다. 25년 전 한 대형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집어든 유머집에 혼자서 낄낄대는 나를 보고 친구가 말했듯이 아내가 "뭘 보고 그렇게 웃어?"라고 하듯이 물었다. 그러고는 와서 같이 웃었다. 가뭄에 쏟아지는 단비처럼, 마른 고목에 떨어진 물기처럼 그렇게 예전에 모아 두었던 유머가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에게 단비처럼 내려주는 것이었다. 


그런다고 50이 된 내가 이 유머를 들고 사람들 앞에 나설까? 예전에 그런 감각도 없겠지만 시대가 지난 이런 유머에 웃을 사람들은 내 또래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예전에 유머를 주변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모았다면, 이제는 그때 가장 뒤에 앉아 서있었던 '나'를 웃기기 위해 보면 되는 게 아닐까. 가장 중요한 관객인 나를 웃기는 과정은 눈치 볼 것도 없고 나도 즐거우니.



나만을 위했던 유머가 요즘은 좀 더 버전 업이 되었으니 바로 '고의로 아재개그 하기'다. 

주 희생양은 아들인데 예를 들면 이렇다. 


"아빠, 말할 거 있어요."

어이없어하는 아들로 만든 이모티콘 

"그럼 '소'해"

"에?"

"'말'하지 말고, '소'하라고."

"아빠...." 


"아빠, 모(뭐) 드실 거예요?"

"나? '윷'."

"아빠...." 


"아빠, '내'일 뭐 할까?"

"'니'일 해"

"아빠...."  


처음에는 그냥 민망하라고 했는데 계속하니까 재밌다. 아들의 어이없는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더 재밌다고나 할까? 그걸 캡처해서 이모티콘도 만들어보고, 카카오톡으로 보내기도 한다.


남을 웃기다가, 이제 나만을 웃기는 걸 좀 이기적이라고 했다가, 이젠 아예 남을 희생 삼아 아재개그로 나의 재미를 찾는 것은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 그래도 좋다. 웃을 수만 있다면.


p.s. 물론 일말의 양심은 있어 직장에선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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