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속이기 in Sweden 외전(9)-외로움,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
[지구상 어디에 서 있더라도 40대 남자는 외롭다]
2016년 3월 20일
6년 반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들어올때 무척 설렜다. 내 나라, 가족, 친구들이 있으니.
20년의 공무원 생활 중에 처음으로 교육기관에 발령받아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 3월 국내 안보현장학습차 판문점 일대를 가게 되었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업무를 챙기고 사무실을 출발했는데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같은 사무실의 한 직원이 고민스럽게 나에게 말을 했다.
남편이 어제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밤새 연락도 없었고 지금도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껏 30여 년이 다되가는 결혼 생활에 이런 적이 없었는데다
묵묵하고 성실한 남편과 그동안 다툼 한 번 없었고 종교 생활도 같이 했는데
너무나도 뜻밖에 벌어진 일이라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남자들이 술 먹다보면 깜박하고 여관같은데서 자다가 휴대폰 배터리가 다 방전될 수 있으니
9시가 되면 회사에 출근했는지 전화해보고 그리고 나서 경찰에 실종신고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라고 했다.
우리 버스가 행선지에 다다랐을 때 무렵, 그 직원은 더욱 안절부절하며 말했다.
회사에 연락해보니 남편이 어제부터 출근을 안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락이 끊긴 시간이 더 뒤로 가는 것이 아닌가.
직원에게 여기 일은 나와 다른 직원들이 맡을테니, 바로 들어가서 경찰서에 상담을 하라고 했다.
들어간 직원은 카톡으로 상황을 전달해왔지만, 그 남편은 그 날도 들어오지 않았다.
주말내내 걱정을 할 직원을 생각하며 나도 걱정했지만 내가 크게 도와줄 것이 없어 너무 안타까웠다.
다음날 아침, 기적같이 그 남편이 돌아왔다는 카톡이 들어왔다.
그리고 아무말도 없이 내내 방에서 잠만 자는데, 너무 하늘에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메시지가 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은 메마른 회사생활에 지쳐 탈출을 감행했고,
강릉 경포대와 산을 일대로 다니며 이생각 저생각하다가 밤도 새고 노숙도 했다는 것이다.
그 직원은 이일을 계기로 자신이 너무 남편에게 잘못생각한 것이 없었는지 반추하게됬다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남편과 주말에 조카 결혼식차 지방에 내려갔다오는 소소한 일상이 너무 행복했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고 했다.
그 얘기가 너무 공감이 갔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그러기에 계속 답답함만 쌓여가는. 그 심정을 누가 모를까.
부모에게 털어놓자니 너무 나이가 드셨고,
친구들과 얘기하자니 그들도 똑같은 처지로 답답한 상황인데 내가 가서 그들에게 뭐라고 할 것이며,
아내와 어린 자식에게 이런 것을 말하는 것도 우스울 것 같다.
하지만 답답함은 더 해가는...
일을 터뜨려버릴까?하는 생각을 늘 안고 살았는데,
그를 실행에 옮긴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남자에게 고독이란 것은 매우 어울리는 것이며,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과 고독을 씹는 것을 낭만스럽게 얘기했지만,
채울 수 없는 고독함에 가슴시린 기억이 계속되기에
연배도 차이가 나서 나와는 거리가 멀 것 같다고 생각했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나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계속 듣고 또 듣는게 아닐까.
외국에 나가살면 아예 화끈하게 외롭거나 한국에서의 생활을 잃어버리기에 안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에 근무했던 리스본, 상파울루, 칭다오에서 모두
담배가 이렇게 좋은 친구가 되는구나라는 것을 느낄만큼
처절하게 외로웠는데,
서울로 돌아와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 어쩌면 더 심해지는 것은
무엇때문인지 모르겠다.
지구상 어디에 서있더라도 40대 한국 남자는 외로운 존재인가 보다.
그러다보니 이유없이 아내에게 짜증내고 투덜대기도 하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도 잘 못 놀아주는 못난 아빠가 되가는 것 아닐까.
사추기(思秋期)라고 했던가.
나름 젊은 취향과 유행을 쫓아가는데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낭만에 대하여’ 같은 노래들이 좋아지는 주말 오전이다.
[외롭지 않은 혼자만의 삶에 익숙하려면...]
2017년 2월 11일
간혹가다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나는 몇 명의 친구를 알고 살아가고 있을까.
한국 사회는 모임의 사회다. 향우회, 운동모임, 직장모임 등등...
마치 그런 모임에 속해 있지 않다면 사회성이 없고 무능한 사람인 양 취급당하는 그런 사회 속에 살기 때문에 더더욱 혼자만의 삶에 익숙치 않은 것 같다. 40대가 넘어가고 50대로 향할수록 그런 모임에 속하고 싶은 성향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어찌보면 발버둥 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겪고 있는 외로움의 근원도 거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자꾸 내가 만날 수 있고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자꾸 확인하려고 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느껴지는 것은 그런 사람을 세는데 나는 얼마나 그런 능력이 있는지 따져보게 된다.
돈이 많은가? 한국사회에서는 경제력이 곧 인품이고 사회적 신분이며 사람을 끌어모으는 척도가 되어가고 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문제있는 짓을 해도 돈이 있는자는 주목받게 된다. 그의 도움이 필요할 순간이 최소한 나중에는 오게 되니까.
지위가 높은가? 세상은 기브앤테이크의 관계다. 글로벌 교육생들도 보면 소위 권력있는 기관의 사람은 인성이 개같아도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원래 그런 사람이고, 하지만 잘 따지고 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유명 작가나 종교인도 어찌보면 여기 포함된다.
나머지는... 맘이 선한 사람? 개가 웃을 일이다. 요즘 착한 사람이 오히려 우습게 보이는 것 같다. 똑똑한 사람? 위 두가지 해당되지 않으면 꼰대나 피곤한 존재로 빠질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얼마전 낭만닥터 김사부란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물론 주인공인 김사부는 현실적이지 않은 캐릭터다. 하지만, 그는 한국 사회에서 의사라는 신분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지위 때문에 인기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사람은 신회장이라는 캐릭터다. 정선 카지노 대부. 거대병원 재단의 숨겨진 실세. 현찰이 많기로 대한민국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할배. 남대문에서 일수놀이, 달러 장사부터 시작해 검은돈 세탁까지 돈이 되는 일이라면 안 해 본 일이 없다. 정재계 유명인사들부터 조폭에 이르기까지 그의 고객명단에 이름을 안 올린 사람이 없을 정도.
그가 나중에 어느 웹툰 지망생을 도와주며 정 많은 할아버지로 남을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진 경제력 때문이다. 만약 그가 단지 심적으로만 거의 죽을 때가 다된 지망생을 신실하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원해주는 것만으로 그가 좋은 사람이란 평가로 남을 수 있을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결국, 스스로를 평가했을때, 가족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물론 요즘은 점점 가족도 의미없는 존재가 되가긴 하지만- 돈과 지위가 뛰어나지 않으면서 스스로가 남에게 주목받고 모셔가기를 바란다는 것은 나무 밑에서 사과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자기 시간을 그리고 자기 돈을 써가면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지도 않으면서 나는 외롭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점이다. 친구끼리 심지어는 가족끼리 만나도 돈안쓰고 얻어먹는 것도 한두번이지 계속 그런다면 만나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당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문득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특히 혈기가 철철 넘치는 20대를 지나 30대에서 사회적 지위가 고착되었고 40대 들어 크게 인생 역전할 것이 없는 상황이라면, 1) 현실을 인정해 외로움에 익숙하고 2) 자신의 시간과 사랑을 한정적으로 쓸 수 있도록 인적 관계의 범위를 정리해야 할 것이고 3) 그러함으로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스스로 스케줄을 만들어가야한다.
남는 시간만 야무지게 쓴다해도 외로울 시간이 없도록... 그리고 자기만의 시간을 잘 가꾸고 현실화시킬 공간을 만드는데 신경 쓰자. 그래서 혼자 있어도 재밌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사람은 혼자와서 혼자가는 인생이라고. 왁자지껄 떠드는 속의 공허함보다는 혼자있으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다.
p.s. 낭만닥터 김사부의 주인공 소개 중 ”세상에 죽어도 되는 생명은 없다. 하지만 죽지 는 생명도 없다.“ 라는데... 나는 이렇게 써볼까?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외로운 것이 곧 고통은 아니다.
[실핏줄 터진 날]
2019년 9월 22일
어느새 스웨덴에 도착한지 한 달이 넘었다.
그 새 눈에 실핏줄이 두 번 터졌고 이번엔 좀 더 크게 터졌다.
이제는 그렇게 되기 전에 전조 증상을 알게된다. 너무 피곤하다는 것.
이번 주도 한국에서 오는 출장단에 대한 준비, 아직도 안갯속 같은 집 찾기 문제, 그리고 새로운 사무실에서의 적응, 가족들에 대한 걱정 등이 겹치면서 나도 모르게 임계 상황에 다다랐나 보다. 아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출장단을 만나러 나가는 아침부터 아 정말 피곤하고 오늘이 토요일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출장단과의 현지 기관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온 뒤, 소파에라도 앉아 조금 쉬고 싶었지만 주말까지 사무실에 나와 일하기 싫어 계속 일을 하면서 몸에 무리가 간다는 사실을 느꼈고, 다시 이어진 만찬까지... 물론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이 있긴 했지만 분명 긴장과 무리가 계속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깜짝 놀라며 지난번보다 실핏줄이 더 크게 터졌다고 얘기해야 그런 줄 알았다.
언젠가부터 피곤하고 머리가 계속 아프다가 눈에 실핏줄이 터지면 머리가 시원하다.
지인이 말해주길 그것은 어딘가 다른 곳이 터졌으면 큰 일날 일인데 일종의 배출구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몸은 내 의지가 어떻든지 간에 신체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메카니즘을 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아무리 내가 바꾸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그래서 내가 아무리 2,30대처럼 일을 하려고 해도 이제는 그렇게 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또 내 몸은 그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1~2년 사이에 테니스 엘보, 오십견, 족저근막염, 어깨수술 등을 통해 이제는 나의 신체능력의 저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큰 시련이 온다는 것을 계속 알려주고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주말에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시내에 옷도 사고 장도 보면서 젊은이들의 활기참과 쾌활한 웃음이 너무나도 부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무슨 80대 노인도 아닌데, 왜 젊은이라는 표현을 쓰고 그들이 부럽지... 라는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그를 사로잡은 것 같아 서글픔마저 들었다. 늘 동안이라 젊다는 얘기를 들었건만, 이제는 나도 40대 후반 중년으로서 그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남들 얘기 같던 나이 들어감이 이제는 내 얘기라는 것을, 그리고 부럽기만한 그 젊음을 이제는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이제 무엇을 찾아야하는 것일까.
그를 대체할 것을 말이다.
쉽지않은 40대의 고개길에서 나는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ZGReh7eNT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