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속이기 in Sweden 외전(11)-외로움, 천천히 그리고 나
[외교관의 '외'자는 외롭다는 것]
2020년 7월 13일
주말에 간만에 많은 사람들과 통화를 했다.
선배, 후배, 친구... 점점 누군가가 나를 찾아준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할 나이다.
요즘 잠들기 전 우두커니 생각해보면, 세월이 참 빨리 간다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잊혀져 갔다는 것. 나와 얘기하고 같은 하늘 아래 살던 사람들 중 몇몇이 떠나가버린 그 세상에서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념에 잠이 못들때도 있다. 나이가 드나부다. 그러기에 제대로 잠못들고 일어나기 힘든 날들이 늘어간다.
이제는 앞으로의 인생에서 같이 살아갈 사람들을 챙겨가야할 시기라고 한다.
누가 나와 같이 살아갈까 생각해보면 그리 많은 사람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떠나면 많은 사람들이 지워질 것이다. 마치 경찰에서 떠나 외교부로 전직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지금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야한다는 상투적인 말보다는, 필요없는 '필요에 의해 맺어진 이들'을 정리해야하고 그러한 인연에 굳이 신경쓰고 겉으로라도 친하게 지내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싫은 것은 싫은 것, 그래서 억지로 친하게 친절하게 대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보니 인간관계란 지키는 것보다 잃는 것이 앞으로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일부러 인맥을 만든다고 만들어질 것도 아니지만, 이젠 노를 힘차게 저어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다행인 나이가 되가고 나이가 든다는 것 자체가 그런 인간관계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이든 많은 이들이 믿음을 주는 만큼 품어주는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인이 된다던지, 무한한 애정을 표시하는 동물을 키운다던지, 아니면 혼자의 삶에 익숙해져가는 것 같다. 아니면 종교에 귀의해 억지로라도 사람이 많은 곳에 속하려고 하던지.
외교관의 인생은 더 한 것 같다. 늘 2~3년마다 정기적으로 옮겨야하고, '외교관적 수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내면을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 엄숙함과 진지함 속에 묻어있는 차가움, 외롭다는 것에 익숙해져간다는 것 자체가 외교관이 되간다는 것-외교관의 '외'자는 외롭다는 것 같다-이 현실이 되고, 국내 지인과 친척들과는 멀어져 간다. 어째보면 늘 외롭고 1년의 반이 넘는 어두운 밤하늘이 뒤덮는 스톡홀름의 하늘은 이 직업의 인생의 축소판 같다.
반면 늘 부러운 사람이 가장 가까이 있다. 바로 아내다.
외교관 부인이라고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내는 신기할 정도로 어딜가든 해가 가던 사람 사귀고 관리하는 기술이 느는 것 같다. 그녀는 어딜가든 자매같은 언니, 동생들을 두세명씩 꼭 만들고, 그를 아직까지도 이어나간다. 나는 임지를 떠날때 사실 별 감흥이 없고 그럴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아내가 떠나는 날엔 그녀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열성을 다해 챙겨주고 눈물을 쏟는다. 떠나면 이내 잊혀지는 나와 달리, 아내는 늘 그들에게 기억되고 언제라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면 자신들의 집 한 켠을 내줄만큼 끈끈한 인간 관계를 맺는다. 어찌보면 아내는 허술한 점도 많고 치밀하지 않은 점이 많은데, 먼 훗날 인간관계를 정리한다면 나보다는 훨씬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허술하고 치밀하지 않은 점이 오히려 아내의 매력이 아닐까. 나는 너무 계산하고 차가웠던 것이 아닐까. 말은 유머가 풍부하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가 다가서기 어려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로 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일로 주로 사람들과 얘기하고, 일로 평가를 받을려고 했기에, 거기에서 그 일이 끝나면 잊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일이 기준이 아니었기에, 아내가 더 생명력이 있고 인간미있고 서로 보고 싶은 사람들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일을 지울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영화속에 나오는 놈처럼 치밀하고 일중독자도 아닌데?
어디서부터 해답을 찾아야하는 것일까.
외롭다.
[이젠 속도가 중요한 게 아냐]
2021년 3월 13일
이번 주는 앞으로의 걱정과 무리한 몸놀림으로 병가까지 내면서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 한 주였다.
저녁에 밥먹고 드러누워 유튜브 보고싶은 거 보다가 마지막은 마이클런스투락의 노래를 들으며 잠이들었다. 마음이 편했고, 건강하게 이 노래를 들으며 누워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그러다 지금 깨 일어났다. 그리고 침대에 비스듬이 앉아 좁은 창문을 바라보며 나에게 이런 말을 쏟아냈다.
더 이상 젊음의 패기로 살아가는 나이가 아니다.
더 이상 30킬로짜리 역기를 들고, 있는 힘껏 달리거나, 아스팔트 바닥에서 스쿼트를 하면
어깨가 끊어지고, 숨이 차고, 허리가 나가 며칠을 누워있어야하는 것처럼
나는 이제 나의 변화와 능력의 감퇴를 받아들여야한다.
이제는 완급의 조절이 중요한 나이고, 그것이 결정을 한다.
조바심을 갖지마.
이제 반환점을 돌았는데
처음 출발할 때처럼 뛰었다간 멈출 수 밖에 없어.
이젠 속도 조절을 해야 해.
중요한 건 빨리 뛰어서 그만큼 더 못가는 게 아니라
남은 만큼의 길이를 어떻게 속도를 유지하면서 뛰어
결승전에 도달하는가가 중요해.
생각해봐.
인생이 100이라면 이제 반을 돌았고
1996년 만 23살에 시작한 공직이 2033년 60에 37년만에 마무리를 짓는다면
지금은 반환점을 돌고도 남은 시점이야.
뭐가 중요하겠어.
이제는 속도가 아니라, 지속이고 살아남는 게 중요한 거야.
힘을 내.
누구도 대신 뛰어주지 않아.
레이스에서는 너 밖에 없어.
그럼 밖에서 앞에서 힘내고 빨리 뛰라는 말보다
중요한 건 너의 체력이 얼마나 남아있고 그래서 얼마나 뛸 수 있는가야.
그래서 사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사는 것이 행복하잖아.
건강하다면.
늘 감사하고,
감사하자.
[나를 찾아서]
2021년 4월 24일
많은 일이 있었다.
아들의 학교 선생의 편지로 고민의 날을 보냈고
아내의 이석증으로 응급실과 병원을 다니며 스웨덴의 불편한 복지 시스템보다 아내의 건강이 걱정됬고
괴팍한 직원과의 불쾌하고 불편한 회사생활이 하나 더 가중되었다.
그 와중에 추가된 업무로 압박은 더 심해졌지만
어찌하다보면 세상의 어려움은 그럭저럭 헤쳐나가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고
마치 예전 목욕탕 갔을 때 한증탕에서 100을 세는 마음으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쉬운 게 하나 없구나... 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적인 질문을 이어갔다.
여전히 그 답은 못 찾고 있고 하릴없이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그닥 삶의 재미가 없다.
정말.
이렇게 50은 다가오는 것일까.
이것은 하나의 힌트일까.
앞으로도 이렇게 바쁘게 살아봐야 재미없다고.
재미있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신체의 능력은 예전 같지 않고
친구들은 멀어져간다.
다행히 이번주에는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이 안부를 전해와
아직은 살아있네라고 생각했지만,
그들도, 80년대 생이나 70년대 생이나, 나처럼 똑같이
바쁜 일상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
인생을 뒤돌아 봤을 때, 그럼 힘들지 않고 외롭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학교 다닐 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외교부 생활을 시작했을 때, 공관 생활을 시작했을 때,
모두가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달려가고 있다.
어색하고 인위적인 멘트들-아프니까 중년이다, 맘대로 살아 등도 이제는 지겹지만
가장 와닿는 것은,
나를 찾아서라는 것이 아닐까.
내가 정말 원하는 길에 좀 더 가까이 보고 들어야한다.
익숙하지 않아도 나는 그렇게 들어야한다.
나는 나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렇게 계속 말했을지 모른다.
남들 눈에 맞춰살지 말라고.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왜 그렇게 살지 못하냐고.
그렇게 의식했던 남들은 이미 사라져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혼자 남는다.
남겨진 삶이든 영혼이 되어서든.
나와의 대화 시간을 좀 많이 늘려야겠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미친놈... 갑자기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