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의 멘탈력
“백수여도 바쁘지?”
“나도 직업이 있어 엄마, 나는 이제 작가가 직업이야”
회사를 관둔지 만 2년이 지났다.
내 손으로 사직서를 내고 나온 직장이건만, 첫 해에는 아프기도 많이 아팠다. 매 달 들어오는 수입이 없다는 사실이 참 아팠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가 아팠다. 매일 아침 출근할 이유가 없어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무데도 없어서, 30년을 쉼 없이 달려온 나로서는 이 공백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백수가 체질이 아니었던 건가.
내가 기대했던 백수생활이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직장이 없어진 대신 [전업주부]라는 직업 타이틀을 얻은 게 탈이었나보다. 주부의 손은 백수와는 거리가 멀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시간이 많이 생길 줄 알았다. 퇴근하고 드문드문 해왔던 취미생활을 즐기며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악기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소소하게 기록도 하면서 말이다. 하루종일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또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널고 지쳐 잠들게 될 줄은 몰랐다.
결혼을 하기 전, 나의 24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혼자 살 때와 달리 청소를 해야 할 공간이 늘었다. 2명이 되었으니 딱 2배만 늘 줄 알았는데, '방'이 '집'이 되면서 청소거리가 늘었다. 빨래와 설거지도 2배 이상 늘었고, 식재료를 사서 손질해서 반찬다운 반찬 몇 개 해서 상을 차릴라면 최소 한 시간은걸렸다. 나 홀로였으면 적당히 먹고 끝내겠건만. 식사를 마치고 돌아서면, 애가 있는 집도 아닌데 또 사방팔방에 물건이 늘어져 있었다.
타지에서, 외국에서 홀로 살았던 나와는 달리 신랑은 군대 한 번 다녀온 것 빼고는 홀로 살아본 적이 없다. 결코 빠르지 않은 나이에 첫 취직을 한 그는 몇 개월 되지도 않는 연수를 받는 동안 얼마나 살이 찌고 찌든내를 풍겼는지 모른다. 자기관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연수기간이 최소 1년이라도 되었다면 홀로서기를 배울 수 있었겠지만, 인간이란게 두 세 달 정도는 대충 살 수 있는 법이라 결국 그는 결혼을 계기로 최초의 독립을 한 셈이었다.
응, 나도나도 티제이처럼 1인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노력, 노력이라니. 그래,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너에게는 아닐 수도 있지. 신입사원을 다루듯 배우자도 대할 수 있었으면 좋을텐데, 정서적 거리가 가까우면 말을 예쁘게 하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의 실수와 실수, 그리고 실수들을 수습하고 가르치느라 진이 빠졌다. 짜증내고 다그치고 그럼에도 반복되는 실수들을 지적하면서 나는 지문을 다 잃었다. 왼손잡이라 왼손 지문만 연했는데, 이제는 오른손에도 지문이 없어 핸드폰의 지문인식 기능도 새끼손가락만 쓴다. 계속 쓰는 왼손은 관절을 잃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그와 같이 산다. 피를 나눈 가족과 같이 살면 더 편할텐데, 생판 남인 그와 먹고, 자고, 논다. 침대에 누워 일장연설을 뽑으며 그의 뱃살을 조물거리며 잠이 든다. 내일 당장 짐 싸서 나간다고 울면서 소리소리를 지른 날에도, 잠결에 "오동통한 손가락.."을 중얼거리며 그의 손가락을 잡는다. 누군가와 침대를 같이 쓰는 게 낯설어 모서리에서 자던 사람이, 밤늦게 들어와 먼저 잠든 내 품에 파고드는 느낌도 좋다.
나는 아직 사랑을 뭐라고 정의해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신랑은 매일같이'사랑해'라고 말하며 나를 안아준다. 내가 힘들다고 하니, 나를 끌고 방방곡곡 여행을 다닌 사람이다. 중국에서만 30여 곳이 넘는 도시를 다녀봤으니,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서 글을 쓰라고 권한 사람이다. 그러면 글을 쓰겠다고 했더니, 나에게 유리한 곳으로 집을 구하는 데 동의한 사람이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주부의 시간이란 회사 다닐 때와는 달리 내가 주체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처음에는 좀 힘들었다. 회사 다닐 때라기보다, 나 홀로였을 때와 비교해야 맞는 것 같다.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충분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병원에 같이 가거나 때때로 가족얘기를 나눌 엄마가 한 명 더 생겼고, 딸내미에게 수다를 털어놓고 싶어하는아빠도 한 명 더 늘었으며, 챙겨야 할 또다른 나, 배우자라는 존재가 있다. 가만히 앉아 책도 좀 읽고, 살림과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만을 위한 쇼핑도 좀 하고, 친구들과 밥 한 번 먹기도 빠듯했다.
취미가 아니야.
직업으로 삼아야 해. 너는 작가가 직업인거야. 말 하고다녀. 글 쓰고 있다고.
세 번째 책을 준비중인 작가언니가 말했다. 너는 지금 글을 쓰는 게 업이다, 글을 취미로 쓴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글을 쓸 수 없다, 오롯이 글쓰기에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꼭 확보하라고도 조언했다. 고작가의 진심어린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쯤 뭘 하고 있었을까.
정말이었다. 양가 부모님은 모두 나의 글쓰기를 전적으로 응원해주셨다. 어쩌다 전화를 할 때면 항상 '글 쓰느라 바쁠텐데 미안하다'는 말을 꼭 붙이셨고, 식사 자리에서는 '요즘 글은 어떠니, 최근에 이러저러한 책이 있던데, 너와도 관련이 있을까' 물어보셨다. 엄마는 내가 블로그에 깨작거린 표현을 인용해서 문자를 보내고, 아빠는 이러저러한 소재는 어떠냐고 생각날 때 마다 아이디어를 주셨다.
현직 작가의 진정성있는 조언이라니, 운이 좋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나는 나로 존재하기 위해 글을 쓰기로 한 건데, 한량이네, 돈도 안 벌어도 되고 아주 팔자 폈네, 라고 생각할까봐 두려웠다. 걱정이 무색하게 오히려 친구들은 잘 생각했다며 따뜻한 신뢰를 보내주었다. 할 수 있다는 응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안다는 공감, 그리고 그게 너의 새로운 직업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당사자인 나보다도 더 편안하게 받아들여줘서, 심장이 묘했다.
그렇게 나는 이직했다. 직장을 관두고 작가라는 직업을 얻었다. 직장은 공간이고 직업은 행위다.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사람이 정의된다고 하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나의 직업은 작가다.
*메인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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