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첫 홀로여행의 깨달음
혼자 공항에 가고 혼자 비행기를 탔다가 혼자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성동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뒤로
이 몇 년 만의 홀로 여행이던가.
가족도, 친구도, 배우자도 없이 떠나는 여행이 난생 처음도 아닌데.
그러나 넷째 손가락에 맞는 반지를 맞춘 뒤로는 처음이다. 엄밀히 말하면 완벽한 '홀로'는 아닌 게, 본래는 서울에서 고작가님과 함께 떠나고 같이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언니에게 이러저러한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나는 예정 없이 떠날 때 혼자고 돌아올 때 혼자며 여행지에서의 하룻밤이 혼자인 여행이 되었다.
단 하룻밤.
내 집이 아닌 공간에서 살을 부빌 사람 없이 맞이하는 밤은, 평화로웠다. 파도소리를 안주삼아 맥주 한 캔 비우는 여유를 선사해 준 우연에 감사했다. 신경이 안 쓰일리 없는데도 흔쾌히 나의 글짓여행을 응원해 준 신랑에게 전해달라며 바람에 애정 듬뿍 실어 보냈다. 서울까지 갈런가 모르겠지만, 안 가면 뭐, 직접 가서 전해주면 되지.
문제는 오고 가는 길 위에서 마주하는 부재였다.
너의 부재가 이토록 낯설 줄이야.
너도 날 두고 홀로 다녀와야 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둘이 같이 여행 갈 때면, 아니,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우리의 시선은 서로 다른 걸 보고 있지 않았던가. 지하철에서는 책을 보고 버스에서는 핸드폰 게임을 하고, 혹 6시간 넘는 먼 길을 떠날 때면 닌텐도까지 챙겨서 게임으로 겨우겨우 버텨내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둘이 함께 있다고 해서 굳이 우리 사이에 뭔가를 열심히 공유하지도, 대화 비스무리 한 것이 많지 않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 마음이 착잡하냐는 말이다.
반려의 부재를 실감한 순간을 돌이켜보니, 대체로 이동하는 동안 별의 별 생각을 다 했음을 깨달았다.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이동하는 과정, 그 과정이 뭐길래 참 이토록 사람을 그립게 만드는지.
어떤 여행이던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어쩔 수 없이 소요되는 시간이 있다. 지하철로 30분이던, 버스로 2시간이던, 비행기로 1시간이던, 혹 배로 15분이던, 모두 어딘가로 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바다를 건너거나 하늘을 가르는 순간이라며 의미부여를 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그 시간마저도 단축할 수 있다면 참 효율적인 여행이리라. 몇 년 간 한 달에 한 두 번 씩 서울과 베이징을 오고 가거나, 매 주말마다 여행을 떠나다보면, 12시간 기차 타고 가느니 3시간 비행기로 바꾸고 차라리 끼니를 한 번 거르기를 택하겠다.
말하자면 여행에서 이동시간이란, 뭘 보는 것도 아니고, 듣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목적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일 뿐인 셈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렇게 그저 어쩔 수 없는 소모라고만 생각했는데, 남편과 쌓아 온 시간이, 함께 해 온 '과정'이 켜켜이 쌓여 어느새 꽤나 존재감 있는 돌담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구멍 송송 뚫린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제주도 돌담처럼, 저게 담인가 싶을 정도로 허술한, 제주도 담벼락 같은 너와의 시간.
문도 없고 듬성듬성하니 짤뚱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 믿음으로,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과정을 쌓아와서, 내가 이렇게 홀로여행을 낯설어 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결혼이란 본디 그런건가보다. 과정, 결혼의 본질은 과정을 함께 한다는 그 자체에 있음을.
천하의 티제이라면 어떤 형태의 여행이라도 신통방통하게 즐기는 사람이라고 자부해왔건만, 변해버린 내가 좀 낯설어, 선뜻 좋아! 라고 외쳐지지가 않는다. 그토록 동경하던 '여행을 통한 깨달음'을 드디어 얻었는데, 얻기는 얻었는데,
아직 깨달음을 품을 그릇이 못 되어서.
결혼을 하고 보니, 그와 아무 말 없이 쌓아 온 시간이 켜켜해서 나는 이제 침묵이 편안하다. 아무 말 없이 밥만 먹는 부부를 보면서 뭐 저렇게 재미없게 사나 싶었는데, 이제보니 굳이 뭐라 말을 하지 않아도 한없이 편안했을 뿐이다. 내가 하던 게임을 네가 하고, 네가 하던 게임은 내가 굳이 하지 않더라도, 너의 모든 부분을 속속들이 캐묻지 않아도 우리는 한껏 편안하다. 그동안 쌓아 온 과정이 많아서 그렇다.
그 과정을 기리는 마음으로 왼손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꼈다. 고이고이 모셔 둔 결혼반지 말고, 어디서 굴러다니던 건지 모를 평범한 반지 하나를, 뜨거운 햇살 아래 하얗게 반지자국을 남기고 싶어 남몰래 끼고 다녔다.
이토록 어설픈 내가 너에게 보내는 쑥스러운 고백을 잘잘하니 써본다.
p.s. 신랑에게.
미안하지만 너보다 더 많은 과정을 쌓아 온 이가 있어 나는 아직도 둘 다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하겠냐는 질문에 너를 구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대는 수영을 할 줄 아니까 이토록 이기적인 나를 용서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