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6일 손정우 석방
>야, 손정우 석방됐더라
>ㅇㅇ미국 안 간다며 ㅎㄷㄷ
>이런데 나라는 자꾸 애를 낳으래
>ㅋㅋㅋㅋㅋㅋㅋ(심한 말)
2019년, 손정우가 구속됐다. Welcome to video가 폐쇄됐다. 세계적인(?) 사이트여서, 수사에 참여한 국가마다 이러저러한 판결을 내렸다고 했다. 그래도 별 기대 안 했다. 처음부터 큰 기대가 없었다. 그러다가 손정우가 미국으로 송환되어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은 성범죄 중에서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 '범죄자들의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손정우가 미국에서 수감생활 하기를 고대했다.
조금 지나자 '자국민이 해외에서 해외법으로 처벌받게 두는 건 국가의 권위가 상하는 일'이라는 표현이 돌기 시작했다. 그래도 주한미군이 지켜주는 대한민국인데, 천조국이 요구하는 바에는 순순히 응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나라 국권이 언제부터 그렇게 강했다고. 불법사이트의 대가리인데도 형을 지나치게 가볍게 받은 건 다 다른 나라에서 돌아가며 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낭비 할 틈이 없어서일 거라고 믿고 싶었다.
2020년 7월, 손정우는 2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보내고 사회로 돌아왔다. 나는, 솔직히, 정말, 손정우가 미국으로 송환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힐러리가 떨어지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만큼이나 충격이었다. 자유, 평등, 인권의 종주국인 척 하더니, 나는 트럼프의 당선을 미국의 '진짜' 면모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손정우의 미국송환 거절 사건을 나는,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계기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처벌은 피해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나 아렌트가 고릿적부터 얘기해왔던 것 같은데, '악의 평범성'을 너나할 것 없이 쉽게 인용하는 걸 보면 이미 친숙한 개념인 줄 알았는데, 이 사회는 여성과 아이를 소외시킨다. 나는 '여성'이고 한 때는 '아이'였으니,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에 내가 발 붙일 곳은 없다.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아마, 미래의 나도, 이 사회는 나를 품지 않을 것이다.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언어로 어떻게든 구체회시켜보려고 국어사전을 뒤져보았다. '슬프다'를 찾았더니 '서럽거나 불쌍하여 마음이 괴롭고 아프다'라는 정의가 나왔다. '서럽다'의 정의는 '원통하고 슬프다'라고 했다. '원통하다'는 '몹시 억울하여 가슴이 아프다'고 '억울하다'는 '불공정하여 마음이 분하고 답답하다'니까, 이 사태의 불공정함 때문에 나는 지금 일단 매우 '서러운' 상태라고 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를 서럽게 만드는 이 현실은 뭐란 말인가. 나는 이 사태가 너무 싫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가 그런데도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이 상황에 진절머리가 난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싫은 걸 '끔찍하다'고 한다. 그리고 끔찍하고 절망적임을 표현하는 명사로 '참담'이 있다. 나는 서럽고 슬픈 감정을 더 강조하고 싶으니, '비참'하다고 해야겠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비참하다.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하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K-방역으로 '국뽕' 좀 놓나 싶더니, 이렇게 여지없이 사람을 또 실망시킨다. 혹은, 이 나라에서 나는 '사람'이 아닌가보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사람은 '가족을 부양해야 할 남성'이나 '자식을 둔 애달픈 마음의 아비'나 '아직 젊고 살 길이 창창한 아들' 정도인가보다.
범죄자에게 감정이입한다
내 눈에는 그가 범죄자고 가해자였는데, 내가 오해한걸까. '죄'를 판단하는 기준은 매 시대, 문화, 사회마다 다르다고 하니, 이 사회가 정의하는 '죄'와 내가 생각하는 '죄'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 아무리 차분한 척 노력해봐도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
나는 이방인이다.
우리는, 이방인이다.
*미국 법무부 공식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