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해도 넌
"남자 좀 소개시켜줘"
동갑내기 친구가 최근에 싱글이 되었다.
미래를 약속했을지도 모르는 사람과 헤어졌다고, 어디 괜찮은 남자 좀 소개시켜 달라고 칭얼칭얼 농을 던졌다. 웃는 얼굴에서 불안이 느껴져서 알겠다고, 알아보겠다고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아마 나는 결국 아무 소개도 주선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결혼하지 않았으면, 해서.
2020년을 살아가는 나는 기혼자 신분이지만, 본디 결혼 할 생각이 없었다. 여자에게 결혼은 제약이고 구속인데, 마조히스트가 아닌 이상 굳이 평생에 걸친 억압을 몸소 끌어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딱히 최악을 보고 자란 건 분명 아니다. 누구나 다 겪는 정도의 학대와 차별과 폭력 정도야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 대부분이 겪는 정도로, 딱 그 정도로 보고 듣고 겪고 자랐다. 그러나 나는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무던한 성격이 못 되어서,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에 혐오감을 감춘 적 없다.
혼인신고서를 접수하는 날에도 아이의 성을 아빠 성으로 하겠냐, 엄마 성으로 하겠냐 체크하는 것 때문에 기분이 더러웠다. 이걸 왜 출생신고서가 아니고 혼인신고서에서 정해?
나는 그냥 내가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해.
내가 원해서 지구의 아시아대륙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난 게 아니듯, 내게 사랑스럽고 완벽한 동생이 있는 것도 내가 뭘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다. 어느 시절에 어느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느냐는 순전히 운에 달렸다고, 인간의 아둥바둥으로는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재벌2세로 태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내가 유부가 된 것도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다.
운명이라기엔 너무 거창하고, 그저
우연히 얻어 걸린 길.
'가지 않은 길'을 꿈꾸다가,
지금은 남들 다 가는 길을 따라 가고 있지만.
우연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면도 있다. 바라던 삶은 아니었어도 다행히 내 결혼생활은 꽤 행복한 편이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신랑 때문이다. 나 혼자 살 때는 나만 잘 하면 중간은 가는데, 둘이 사는 지금은 내가 아무리 잘 해도 그가 쿵짝을 맞춰주지 않으면 무쓸모라
그의 역할이 매우 결정적이다.
결국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한 결혼생활은 전적으로 배우자의 덕이다. '어느 병원 어느 의사가 잘 하더라'는 식으로 '우리집 배우자가 잘 하니 이 사람 데려다가 써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아무래도 결혼을 추천할 수가 없다. 그와 같은 사람이 하나 더 있다고 해도, 개의 약이 뱀의 독이듯, 나에게 맞는 인간형이 그대에게도 편할런지 역시 자신이 없어
나는 설사 그와 비슷한 사람이라도 쉽게 소개하기가 불안하고 미안하다.
실은,
결혼 전의 나는 이미 행복했고 안정적이지는 않아도 만족스러웠다. 결혼 전 결혼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은, 결혼 후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결혼한 여성을 두고 쏟아지는 말말말, 가족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은 상상했던 범주 내에서 대부분 모두 이루어졌다.
그러니 어쩌면,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행복했을 것이 분명하다.
행복이 그러하듯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에도 찾아오는 외로움을 반려는 해결해 줄 수 없다. 뼈와 살을 준 부모도 모르는 내 속을, 피를 나누지도 않은 인간이 알 리가 없다.
싱글이었을 때 불안했던 내 삶은 유부가 되어서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보장받고 있다. '이러다 평생 혼자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고독사하면 어쩌지'가 '어느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사고로 배우자를 잃으면 어쩌지'로 바뀌어봤자 암담하긴 매한가지다.
유부의 인생 어차피 불안한 일 투성이고 어쩌면 결혼으로 인해 더욱 캄캄해 진 부분도 있으므로, 나는 여전히 친구가 싱글로 남기를 바란다. 당신은 애써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지 않아도 충분히 부족함 없는 사람인데다가, 고독이란 본디 디폴트값이므로.
외로워서, 기댈 곳이 필요해서 결혼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유부'라는 새로운 사회적 지위는 또 다른 불안정을 선사하고, 두 말하면 입 아픈 또 다른 잔소리로 도전받는다. 원래부터 나의 일부였던 고독과 불안은 그 무엇으로도 해소되지 않는다.
대신 안정적인 삶도 불행할 수 있듯, 고통인듯 불안한 삶도 행복할 수 있다. 나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만, 종종 쓸쓸하고 종종은 또 부담스럽다.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었다는 사회적 안정감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의 일부가 아니다. 그럼에도 행복한 이유를 묻는다면,
결혼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의 내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지만, 행복이 두 배로 뻥튀기 된 건 아니라고.
친구여 그대가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