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하는 사람

글 쓰러 떠난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

by 티제이

글을 써야하는 사람이 있다. 글쓰기가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인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봤는데, 나에게 글쓰기는 충분조건이다.글쓰기가 빠졌다고 해서 나라는 명제가 흔들리지는 않음을, 검푸른 바다 끝 섬 속의 섬, 우도에 가서야 깨달았다.


글이야 앉은 자리 어디서는 쓸 수 있어야 할 터인데 나는 굳이 굳이 서울에 남편을 홀로 남겨두고 남해바다로 떠났다. 글을 쓰러 가는 거라고 했는데도 신랑은 굳이 굳이 바닥 두꺼운 운동화를 사줬다. 새 신 신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신발을 사주냐는 낡은 농담 따위 묻어두고, 신나게 여름을 즐기러 떠났다.


제주는 한창 여름이었다.


햇살은 찬란했고 바다는 반짝였고 바람은 내 머리를 한껏 흐트러뜨렸다. 3박4일 간 노트북 앞에 붙어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우리는 바닷가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고 카페에 앉아 땅콩아이스크림과 한라봉주스를 들이켰다. 나이가 들었는지 암것도 안 하고 가만히만 있어도 좋아서, 가만가만히 우도를 누비고 다녔다.

하고수동 해변의 뒷골목에서. 딱 한 골목 뒤로 넘어왔는데도 충분히 조용했다.

노트북은 무겁고 핸드폰을 켜면 괜히 인스타 한 번 보고 딴 짓 한 번 하느라 시간을 뺏기니까, 역시 뭔가를 쓰려면 필기구가 정답이었다. 작은 공책에 주절주절, 뭘 먹었고 뭘 봤다고, 여기 뭐가 있다고 적어 내려갔다. 글 같지도 않은 그저 메모였지만, 뭔가를 끄적거리는 느낌은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감을 선사했다.

그 말 되게 좋다, 꼭 적어놔. 적어놨어? 글로 쓰면 되겠다. 그걸 글로 써야겠네.

돌아보면, 고작가가 적으라는 것들은 내가 공책에 적은 것들과 결이 좀 달랐다. 나는 당연하다 생각하고 넘기는 것들을 언니는 콕 집어내어 반짝반짝하게 바라보고는 했다. 나는 그저 좋구나, 하고 넘기는 것들을 언니는 꼭 사진으로 남기니, 괜히 '사관(史官) '이란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사진 찍기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깜박하고는 뒤늦게 후회하기 일쑤였는데, 고작가를 보며 나도 조금 더 열심히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여행 마지막 날, 언니는 서울로 떠나고 우도에서 혼자 맞이한 밤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정리를 시작했다. 되는대로 휘갈겼던 기억들을 한 장 한 장 다시 읽어봤다. 몇 장 되지 않는 작고 흰 종이를 넘기면서 그제야 기록은 미래를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글이란 현재를 고정해서 미래로 보내는 매체임을,

언제고 배웠던 것도 같은데 잊고 있었다.


IMG_3211.JPG 숙소 앞은 곧바로 현무암과 바다, 하늘이었다. 바다가 너무 가까운 나머지 갯강구를 만난 뒤로 다시는 벤치에 앉지 못했다.

문자매체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의사소통 수단이다. 학부 때 접했던 [사학입문] 수업 이후로, 나는 인간은 문자와 기록으로 인해 인간이 되었다고 굳게 믿기 시작했다. 문자가 있었기에 정보를 축적하고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벗어난 공유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이란, 어쩌면 인간 본능의 일부분인가보다고 생각한다. 지구상 어느 고등생명체도 기록을 남기지는 않는다. 생의 흔적을 남기고 몇 세대 간 '지식'을 전달하기는 하지만, 문자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생명체는 없다. 그러니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문자의 사용, 글을 쓰는 행위일 것이다.

근데, 브런치를 쭉 보다가 든 생각인데,
사람들은 글을 왜 쓰는거지? 인정받고 싶어서? 뭘 알리고 싶어서? 공감받고 싶어서?

이유를 묻던 친구에게, 이러저러 잡다한 핑계를 대기는 했다. 글로 쓰면 불확실했던 내 생각이 정리가 된다, 말로는 잘 표현이 안 되던 부분이 글로 쓰면 명확해 진다 등등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건 변명에 불과함을 알고 있었다. 마치 ‘그를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착해서', '사려깊어서', '어느 날 감기약을 사다줘서' 와 같은 대답으로 맞서는 것 처럼, 본능에서 기인한 행위를 이성의 언어로 포장하는 것 뿐이다.

IMG_3296.JPG 제주와 관련한 에세이 책이 많았던 밤수지맨드라미에서. 서점까지 갔는데 책은 안 사고 커피와 가념품만 샀다.

구실을 덜어내고 나면,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사실 없는 거라고, 사건이 먼저 발생하고 그 뒤에 이유를 갖다 붙인 거라고, 나는 그저 거창할 것 없이 인간답게 살고 있을 뿐이라고.

읽고, 쓰고, 그렇게

본능에 충실하게 말이다.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본능으로 인한 글쓰기야 먹고, 자고, 싸는 일련의 다른 행위와 마찬가지지만, 일상의 범주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하고 평범한 것들에서 특이점을 찾아내는, 의미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은 글을 써야만 한다.

붉게 익은 홍시에서 할머니를 보는 사람은 시를 써야 한다. 검은 바다 위 창공을 가르는 갈매기 두 마리에 가족이 그리운 사람은 소설을 써야 한다. 여행지에서 바닥 얇은 신발을 버린 적 있는 사람이라면 수필을 써야 한다. 그래야 의미가 남고,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누군가 그 글을 읽고 지나간 시절이나 시대의 비극 등을, 하물며 여행짐 싸는 방법이라도 배울 수 있으니.

IMG_3219.JPG 우도에서 얻은 깨달음은, 첫째, 나는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둘째, 제주는 바람이 겁내 많이 분다는 것. 심지어 추웠다.

내 눈엔 많은 것들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나의 언어는 지극히 평범하다. 비록 나 자신은 세상 만물에서 의미를 찾는 눈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은 못 되어도, 나는 이미 글 쓰는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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