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친구로부터 얻은 깨달음
"I don't like meat(나 고기 별로 안 좋아해)"
"How come(왜)?"
"I can't sleep well(고기 많이 먹으면 잠을 설쳐)"
"Oh"
"I just dream too much. I'm a little tired today but it's fine(꿈을 너무 많이 꿔. 힘들어)"
"Gees I'm sorry(헐, 미안..)"
그는 몽골에서 왔다.
대부분의 몽골 남자들은 덩치가 좋았다.
술을 잘 먹었고, 술안주로 풀을 먹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먹는 만두에 고기 아닌 것들이 너무 많이 들어 있다며 언제나 불만이었다. 고기가 부족해서, 또는 너무 비싸서 저렴한 재료로 채우나보다고 생각했다.
몽골은 다분히 '남자'다운 나라다. 남자라면 자고로 술과 여자를 좋아하기 마련이고, 힘도 좋고 호탕하기 마련이다. 여자란 자고로 보석과 비단(?)을 좋아하고 손재주가 좋으며 사려깊은 존재라고 여겼다. 한국여자는 술 잘 먹고 말도 잘 하는 예쁜 대상 정도로만 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어서 슬슬 정나미가 떨어질 때 쯤,
바담이 왔다.
바담은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말랐다 싶을 정도로 덩치가 작은데다가 키도 크지 않은, 처음 만나는 종류의 몽골사람이었다.
바담이 '전형적인' 몽골남자 아니라고 해서 뭔가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등산이 취미였던 그는 몽골의 높고 높은 산들은 물론 히말라야까지도 다녀왔다. 술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자답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아내와 딸 둘과 함께 화목한 사진을 얼마나 자주 보여줬는지 모른다.
바담이 술, 담배, 고기, 여자를 밝히지 않는다고 동료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지도 않았다. 몽골사람들끼리 어울리는 장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꾸사리 주는 사람도 없었다. 몽골인들의 성격이 그런건지 바담이 워낙 괜찮은 사람이라 그런건지, 어쨌든 바담은 여러 사람과 잘 지내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다.
왜소하고 어쩌면 볼품없다 할 수도 있을법한 사람이었는데,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나는 그가 그저 부러웠다. 솔직하게 말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 그의 흔들리지 않음을 닮고 싶었다.
그가 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고 말 했을 때, 우리는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사실 그도 첫 회식자리에서는 술도 조금 먹고 고기도 조금 먹었던 것 같다. 나중에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야 편하게 속을 터 놓았다. 누군가는 웃었지만, 대다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음식을 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또는 '저는 비건입니다'라는 말에 격한 반응을 보이고는 한다. 나의 부모님도 그렇고, 신랑의 부모님도 그렇고, 몇몇 친구들도 그렇다. 모두가 갑자기 전문가가 되어 단백질과 인류의 본성과 진화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무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가 외국인이어서였을까. 언어가 불편해서였을까.
그는 육고기를 먹으면 잠자리를 설친다고 했다. 꼬아서 듣는다면 고기를 왕창 먹고도 잘만 자는 사람은 양심이 없다는 뜻이냐고 쏘아붙일 수도 있었을 텐데, 성격 꼬였기로 유명한 사람도 바담에게는 '그러냐'하고 말았다. 회식자리에서 그를 위한 메뉴를 따로 시켜도 그 누구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도 한 때는 '아무리 불편해도 먹어야 한다!'고 다그치던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바담은 그저 웃고 말았을 것이다. 갈등을 일으키느니 슬쩍 자리를 피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의 직책이 그다지 높지 않고 앞으로도 승진대로를 걸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바담은 티내지 않았다. 뒤늦게 그도 인간적인 고민을 많이 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마저도 더욱 대단해보였다. 침착하게 공과 사를 유연히 구분하면서도, 무식하게 참기만 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고기를 많이 먹은 날에는 뭔가 꿈을 참 많이 꿨던 것 같다. 식곤증의 원리와 똑같이, 소화하느라 피가 위장으로 다 몰려서 그럴지도 모른다. 간밤에도 신랑과 함께 돼지고기 3인분과 김치찌개와 공기밥을 먹고 와서는 이혼하는 꿈을 꿨다. 신랑은 때가 왕창 나오는 꿈을 꿨다는데, 둘다 과식하기는 했나보다.
너 고기 좋아하잖아
맞다. 나는 고기를 좋아했다. 술도 좋아한다. 근데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많이 먹기를 기대한다. 나는 끽 해봤자 맛있는 음식에 어울리는 술 한 잔이면 충분한데, 소주를 짝으로 갖다놓고 마시는 줄 안다. 양고기, 말고기, 토끼고기 등등 안 먹어 본 고기가 없지만, '좋아한다'고 하는 순간 혼자 3인분은 기본으로 해치우는 줄 알고는 '좋아한다며 왜이렇게 깨작거리냐'고 핀잔을 준다.
'좋아한다'고 하면 빨리 허겁지겁 먹지 않는 것도 지적의 대상이 되어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좋아한다'는 표현을 조심스레 쓰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야 처음으로 '트름 같은 트름'을 배웠다. 체하거나 탈이 난 것도 아닌데 트름이 날 수도 있음을, 음식을 빨리 먹으면 덜 씹고 더 많이 먹게 되니까 트름이 난다는 걸 서른이 넘어 익혀가고 있다.
소화력이 약해져서 못 먹겠어
지금도 치킨, 삼겹살, 스테이크, 양꼬치 다 좋아하지만, 조금은 덜 먹고 싶다. '이 사람을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수만가지 이유를 댈 수 있는 것 처럼, 먹기 싫은 데에도 이유는 많다. 사실 이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유는 필요한 만큼 찾아다가 붙일 수 있다.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최근에 친한 친구가 '비건지향'을 실천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에게 비건은 하나도 낯설지 않은 개념이었지만 그에게는 신선한 도전이었다. 그의 선언 덕분에 간만에 바담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고기를 왕창 먹고 꿈을 잔뜩 꾸었다.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두 명의 채식주의자와 한 명의 비건을 만났다. 그 사이사이에는 글루틴 인톨러런스부터 락토스 인톨러런스까지 서로 다른 용어를 가진 자들이 층층이 있었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 소고기와 돼지고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고추장 없는 산채비빔밥만 잔뜩 먹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다 한 자리에 모였을 때였다. 몽골인까지 모였을 땐 치킨 밖에는 답이 없었다. 몽골인에게 고기 없는 식사는 굶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공부하면서 만난 인도인들은 대부분 채식주의자였다.
나는 고기 먹는 걸 배우질 못했어.
처음 중국에 와서는 먹는 게 너무 힘들었어. 오빠는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이 고기 먹는 걸 가르쳤는데, 그 때 나는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왜그랬을까 후회가 돼. 나는 이제 겨우 닭고기는 조금, 고기맛이 잘 안 나게 튀겼다면 좀 먹을 수 있어.
그 친구에게 '육식'이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마치 한국사람들이 상상하는 '채식'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개고기 먹는 법을 '배우는' 것 처럼, 그들은 육식을 배울지 말지 선택하고는 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항상 배려받아야 할 입장이 되었다. 맞다, 너 고기 먹지? 네 건 따로 시켜줄게 기다려봐.
배려는 의외로 기분이 좋지 않다. 배려받는 당사자는 '소수'에 '약자'고 '다른' 존재기 때문이다. 친구들이야 그렇지 않았지만, 배려를 해 주는 입장이 일종의 우월감까지 갖고 있으면 더욱 피곤해진다. 이쯤 되니 앞으로는 장애인도 '배려'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아주 기본적인 논리다. 바담에게 그랬던 것 처럼, 그저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p.s. 중국음식은 워낙에 고기열전이라지만, 채식주의자에게는 한국보다 조금 낫다. 미식의 나라답게 비건의 역사도 길기 때문이다. 굳이 비건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미식을 추구하다보니 '육재료 없이 맛내기' 풀떼기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 만들기'에 도전하던 인간들이 있어서다.
여기에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문화,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고자 하는 도교문화, 배 타고 낙타타고 들어 온 회교도의 무슬림문화까지 더해져 다양한 식문화가 발달했다. 식재료도 워낙 저렴하다보니, 채소값이 금값인 한국에 비하면야 천국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