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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Nov 24. 2020

노인에게 바다를

할머니 모시고 떠나는 제주도여행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딸이다. 


 낼모레면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 '외'자를 붙이기 귀찮아서 초등학생 때부터 그냥 할머니라고 불렀다. 친할머니께도 '친'자 붙이기 귀찮은 건 매한가지였으므로. 될성부른 귀차니스트는 다 커서 용케도 귀찮음을 무릅쓰고 할머니를 모시고 제주로 떠났다. 

 

 근데 제주도에 머무는 내내 하루도 빠짐 없이 비가 왔다.


서귀다원에서. 제주의 비바람은 남달랐으므로, 실내 위주로만 돌아다녔다. 

 키가 큰 편에 속하는 손녀딸들에 비하면, 허리춤에나 간신히 올 듯 조그맣게 늙어 버린 우리 할머니. 손도 작고 발도 작은 할머니의 양쪽 무릎은 모두 인공관절이다. 척추와 갈비뼈 사이 사이에는 '시멘트'도 들었다. 치아도 젊은이의 그것과 같지 않음은 물론이다. 단단해야 하는 부분들이 모두 닳아 하나 하나 대체품을 끼워 넣은 작은 몸뚱이.

 지금의 할머니는 조그만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내가 할머니 나이 즈음 되었을 땐 의료기술이 더욱 발달할테니 진정한 사이보그같은 모양새가 되겠지. 

 사랑하는 우리의 프로토타입 사이보그를 위해 동생과 함께 공항과 항공사에 휠체어 대여서비스를 신청했다.

동생과 할머니. 동생은 할아버지의 카메라를 들고 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한층 더 작아지신 것 같다. 이런 저런 약들을 시간 맞춰서 챙겨 드신지가 벌써 수 년 째다. 동글동글한 크고 작은 약들에, 엄마 아빠는 또 이런 저런 영양제까지 꼭 챙겨드린다. 할아버지가 안 계셔도 혼자 사시겠다던 분을 집으로 모셔오자는 의견에 반대한 사람은 할머니 당신, 딱 한 사람 밖에 없었다. 그만큼 할머니는 작았다. 

 늙은 엄마를 상상해 보았다. 지금도 작은 우리 엄마, 늙으면 더 작아지겠지. 그렇다고 설마 우리 할머니 만큼 작아지려나? 할아버지도 할머니에 비하면 키가 엄청 큰 분이셨다. 할아버지쪽 가족들은 다 크고, 엄마의 외갓집 친척들은 다 작고. 

 그건 나의 친가와 외가 역시 마찬가지다. 


전생이란 게 있다면, 우리 딸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 전생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실 전생과 이생은 죽음을 기점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동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인데, 무슨 말인지 알겠니?

 

 하루 하루 커 가는 내 모습 위로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이 겹쳐 보였나보다. 엄마는 큰 딸로 자랐기 때문에, 뚝섬에 살던 시절, 중학생 때인가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학교를 다니는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겹쳐 보았나보다. 

제주바다와 할아버지의 미놀타. 三星이 한자로 적혀 있는 구식 필름카메라다.

 그러나 엄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같지 않다. 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엄마와 엄마의 엄마는 성격이 좀 다르다. 나는 엄마보다 키가 한참은 더 크다. 그러니 내가 살아 갈 모습은 엄마가 살아 온 모습과는 다른 각도로 뻗어가리라. 

 무엇보다, 키 크고 늘씬한 남자를 배우자로 삼던 고리를 내가 끊었다. 조부모님과 다 함께 가족사진을 찍던 날, 사진기사는 아빠라는 사위가 할아버지의 아들인 줄 알았댄다. 남자 고르는 눈이 할머니나 엄마나 비슷비슷 했나보다. 우리 신랑은, 누가 봐도 남의 집 자식이다.

끊이지 않고 비가 계속 오는 바람에 무지개는 실컷 봤다.

 할머니는 자기 큰 딸인 엄마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을 닮은 딸을 닮은 듯 안 닮은 손녀를 보고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할머니는 평소에는 그냥,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우리 할머니는 자기 얘기를 많이 하지 않으신다. 이것저것 물어야만 대답을 해 주시지,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는 드라마 얘기를 할 때 뿐이다. 목청 높이면서 화를 낸 적도, 목에 핏대 세우면서 자기 주장을 펼친 적도,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이 없다.  

 할머니는 바다를 좋아하는지, 산을 더 좋아하시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우리는 제주에 갔다. 

휠체어만 빌리면 될 줄 알았는데, 다음에는 꼭 비즈니스로 태워드려야겠다. 

 나는 늙은이의 마음을 모른다. 늙어가는 중인 엄마, 아빠도 잘 모르는 눈치다. 사람 깊은 곳을 볼 줄 아는 동생이 오히려 할머니의 맘을 가장 잘 헤아리는 듯 하다.

 동생은 이제나 저제나 할머니 건강 걱정에 눈을 떼지 못했다. 유리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간간히 날아가는 새들을 보고 웃으셨고, 세찬 파도를 보고 어머나, 하셨다. 맛있는 거 먹여줘서 고맙다고 하셨고, 녹차밭에서 차를 마실 땐 아주 좋구나, 라고도 해주셨다. 

 그러나 칠흑같은 밤바다를 수놓은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에도 할머니는 무릎이 아팠다. 앉던 눕던 매 일어나는 순간은 불안할 수 밖에 없어서, 동생은 자다가도 설핏 할머니의 기척을 살폈다.

제주도에서 할머니가 제일 큰 소리로 웃었던 순간은 가족들에게 민화투를 가르쳐 줄 때였던 것 같다. 

 나름 누군가를 모시고 가는 여행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를 모시고 떠난 이번 여행만큼은 아쉬움이 남는다. 더 좋은 차를 렌트했더라면, 숙소를 직접 보고 고를 수 있었더라면, 조금 더 편하게 모실 수 있었을 텐데.


 이번 여행이 할머니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코로나만 좋아지면, 가까운 해외구경까지 시켜드릴 자신도 있다. 

 민화투 계산 때리는 속도를 보아하니, 할머니는 충분히 다음 여행 가실 수 있다. 제주바다보다 더 파랗고 더 따뜻한 바다를 꼭 안겨 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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