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제이 Dec 06. 2020

할머니, 이건 라면이 아니잖아

라면 하나의 추억과 라면 하나의 비밀

 어쩌다 한 번 흘린 라면 얘기에, 언제부터인가 신랑은 비싸고 귀하고 맛있는 걸 먹을 때마다 할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물론 그 할머니가 그 할머니는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이 나나보다.


 어릴 적 살던 집은 지금 월세 들어 살고 있는 청년주택보다도 작았다. 그 작은 빌라에서 애 둘, 어른 둘, 노인 하나가 같이 살았다. 할머니는 혼자 방을 쓰시고 우리 넷이서 한 방에 누워 잤던 것 같다. 

 몇 층 되지도 않는 작은 빌라에 관한 기억은 이제 많이 남지 않았다. 유치원 어느 학예회 때인가, 엄마가 화장을 해줬는데 더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혼자 화장을 더 해 보겠답시고 스스로 립스틱을 곱게 발랐다. 거울을 안 보고 발라서 온 얼굴에 범벅을 쳤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너무 하고 싶었던 화장이, 지금은 너무 하기 싫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엄마 속옷도, 이제는 엄마도 나도 브래지어 입기 싫어서 갖은 애를 쓴다. 그때는 진라면 순한맛만 먹었는데, 이제는 신라면과 진짬뽕도 열심히 찾아 먹는다. 불닭볶음면은 아직도, 앞으로도 못 먹겠지만.

https://news.hmgjournal.com/TALK/reissue-variety-ramyeon

 구리에 살 땐 가끔은 밖에서 씻어야만 했다. 대중목욕탕에 가면 피부에 좋다는 소금으로 온몸을 문질러서 너무 아팠다. 지금에서는 놀라서 까무러칠 일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아파야만 가려움증이 낫는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크면 자연히 낫는다는 확신도 없었다.

 나이를 먹는 것도 먹는 거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집이 문제였던 것 같다. 좁은 집에 여럿이 살아서가 문제가 아니라 벌레가 너무 많았다. 가구 밑으로 굴러 들어간 동전이라도 찾을라 치면 항상 바퀴벌레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는 거의 맨 손으로 바퀴를 때려잡았고, 나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육 맛집에서. 남편은 여기서도 할머니 안부를 물었다.

 신랑은 화장실, 부엌, 그리고 배수구까지 들춰가며 잔뜩 웅그린 모양새로 낡은 칫솔을 문질러대는 내 모습에  매 번 경외의 눈빛을 보낸다. 누가 시킨 적도, 가르친 적도 없지만,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벌레가 알을 까고 야금야금 가구를 갉는다는 상상을 하면 청소를 안 할 수가 없다.

 밤이면 모기보다 바퀴벌레에 물릴까 봐 더 두려웠던 시절이지만, 대궐 같은 집은 아니었어도 배를 곪지도 않았고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은 인라인 스케이트는 모두가 부러워했으므로, 가난은 먼 이야기였다.

 그런 줄 알고 살았는데

라면이 먹고 싶은데 먹지 못했을 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속상했다.


 한창 젊고 바빴던 엄마, 아빠 대신 할머니가 우리를 돌봐주셨다. 라면은 주말에 한 번 씩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먹는 별식이었다. 집에 할머니 밖에 안 계셨으므로, 나는 엄마에게는 통하지 않을 시도를 했다. 라면이 먹고 싶다고. 

지금도 라면은 좋아하지만, 가능하면 뭐라도 차려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할머니는 라면을 끓일 줄 모른다고 하셨다. 내 키로는 가스밸브에 손도 닿지 않았다. 끓는 물에 면과 스프를 대충 때려 넣으면 되는 걸, 실은 집에 라면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 말을 곳대로 믿고는 시골에서 올라온 늙은 할머니를 원망했다. 할머니의 첫째 딸인 큰고모가 엄마의 엄마인 외헐머니와 나이가 같았으므로, 엄마의 시어머니인 나의 할머니는 엄마에게도 할머니였다.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본 할머니는 국수 꺼내셨다.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에 나는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동생이랑 마저 놀았다. 이윽고 먹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손엔 허연 국그릇이 들려 있었다. 멀건 소면이 한가득이었다. 

할머니, 이건 라면이 아니잖아. 라면은 빨간 건데

 할머니는 고추장을 퍼서 국수 위에 얹어 새끼손가락으로 대충 휘적여서 다시 주셨다. 아무 표정도 짓지 않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의 성의를 생각해서 고추장 푼 물에 담긴 소면을 한 입 먹었는데,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서로 다른 이유로 먹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조금 울었던가? 맛없다고, 안 먹는다고 다시 동생에게로 돌아갔다. 할머니한테 미안했고, 라면 하나 못 끓이는 할머니가 답답했다. 그제야 다른 친구들의 할머니는 이렇게 나이가 많이 않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고, 할머니가 더욱 촌스럽게 느껴졌다. 할머니를 미워하다니,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


 집에 라면만 있었더라면.


 퇴근 후 돌아온 엄마에게 비밀로 하려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결국 이실직고를 했다. 국수 얘기를 들은 엄마는 할머니께 사과했고, 할머니는 애들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엄마에게 다른 종류의 잔소리를 조금 하셨던 것 같다. 기억은 희미하다. 울먹일 듯 죄를 고하던 조그만 내 모습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비밀을 담기에는 너무 작은 몸이었다.

 할머니는 국수라면 사건을 언제까지 기억하고 계셨을까. 엄마는 기억하고 있을까. 


재택근무가 길어진 요즘, 찬장에 라면도 다 떨어져 간다. 

작가의 이전글 노인에게 바다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