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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Dec 21. 2020

흔들리는 눈빛 속에서 내 옛 모습이 느껴진 거야

요가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요가 인스트럭터의 마음가짐

 나를 만난 죄로 신랑은 요가를 시작했다.


 이제 겨우 아쉬탕가 프라이머리 시리즈를 얼추 외운 정도에 불과하지만, 나름 생색은 엄청 낸다.


 대한민국 남성의 1/3이 비만이고 그중 30대 남성은 1/2이 비만이라던가. 남편은 '평범한' 대한민국 남성형에 정확히 해당한다. 키부터 비만도, 간수치, 심혈관계 컨디션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다. 확실히 건강하다는 느낌을 주는 몸은 아니었다.

 결국 입사 후 첫 건강검진에서 예상 기대수명이 60대에 그친다는 충격적인 검진표를 받고는 한껏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https://pixabay.com/illustrations/man-fat-sofa-fatness-human-guy-2288176/

 다른 운동을 하지 못할 이유가 너무 많았다. 우선 과체중 때문에 달리기를 할 수 없었다. 관절, 특히 무릎에 무리가 갈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체형적으로 어깨가 안 좋아 덤벨류를 이용 한 무게 운동은 과체중이 아니던 시절에도 조심스러웠다. 민첩성을 필요로 하는 구기운동은 원래도 잘 못했는데 지금 상태로는 더더욱 어려울 터였다.


 그나마 수영은 좀 할 만했다.

 옛날에 배우기도 했고, 근처에 수영장도 있었다. 근데 또 이게 혼자 하자니 뻘쭘한 거다. 그룹으로 배우기에는 몸을 드러내기가 창피하고, 레일을 혼자 돌자니 또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집에서 함께하는 요가가 항상 화목하기만 하지는 않지만 뭐...

 남편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아주 그냥 시간 날 때마다 칭얼거렸다. 누워서 제 뱃살을 통통 두들기는 이 슬픈 짐승에게 동거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함께 요가원에 등록하는 것뿐이었다. 

아쉬탕가가 나한테는 제일 잘 맞는 것 같아


 내가 가르쳐 줄 때는 툭하면 힘들다고 철퍼덕 주저앉기 바쁘더니,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열댓 명이 함께 호흡하는 현장에서는 기를 쓰고 자세를 유지하는 모양새가 괘씸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의외로 남자들도 드문드문 보였고, 개중에는 신랑이 제일 힘이 좋았으므로, 요가 열정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열렬한 아쉬탕가의 팬이 된 이유도 근력이 워낙 좋았던 터다. 살이 많이 붙기는 했지만 체질적으로 근육이 많고 골반도 유연한 편이라 다른 그 어떤 요가보다도 아쉬탕가를 선호했다.

 

발가락도 못 잡았는데 3년 여 만에 이제는 전굴도 좀 된다.

 비지땀을 비 오듯 흘린 덕에 발가락 잡을 엄두도 못 내던 사람이 어느새 아쉬탕가 프라이머리 시리즈를 얼추 다 외웠다. 잘 안 되는 자세는 아직도 슬쩍 넘어가고는 하지만, 한 단계씩 성장해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새삼 나 자신까지도 돌아보게 된다.

그래, 나도 처음엔 다리 뻣기는커녕 후들후들했지. 맞아, 무릎이 어떻게 발이 어떻게 일직선이 된다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어느새 당연하다는 듯이 하고 있었네.

언제부터였지?


 처음에는 수리야 나마스카라 A와 B만 돌려도 복근이 펌핑되어서 빡 갈라졌는데, 언제부터인가 프라이머리 다 돌리고 변형 동작까지 몇 번 해봐도 예전만큼 근육이 갈라지지는 않는다. 새삼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그대는 약간 힘을 빼도 된다고, 호흡에 맡기라고. 겉으로 보이는 근육이 다는 아니다. 

골반열기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욕심내면 다치는데, 자꾸 잊는 초심.

 요가 한 판 마치고 난 지금의 신랑의 몸이 그때의 나와 비슷하다. 신랑은 짜투랑가만으로도 한껏 펌핑된 어깨에 잔뜩 고무되어 거울 앞에 서서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는데, 잊고 있었다.


 오늘도 휘청거리며 혼자 스탠딩 시퀀스를 돌리다가 "나 좀 잡아줘!!!"를 외치는 남편에게 뛰어간다. 신랑 역시 변했다. 내가 어쩌다 근처에 지나가기만 해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휘리릭 자세를 바꿔버리던 그였는데, 언제부터인지 핸즈온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빨리 와서 교정해달라고 난리다.

 뭐, 열심히 생색내는 것에 비해 뱃살이 엄청 줄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스스로는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껏 고무된 표정의 남편을 볼 때마다 초심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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