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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Dec 30. 2020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초콜릿을 대하는 너와 나의 자세

어느 날은

... 내 껀 안 사?
응? 너 아이스크림 안 먹잖아?
야, 그렇다고 둘이 와서 네 것만 띡 사냐? 다른 거 뭐 먹을지 물어는 봐야지.
뭐 먹을래?
이미 계산 다 했잖아. 먹을 생각만 하지 말고 옆에 있는 사람도 좀 돌아봐줘라 좀.


또 다른 어느 날에는

하... 네 입만 입이고 내 입은 뭐 장식이니.
너 초콜릿 안 좋아하잖아?
어이구야 참내, 야, 남편, 나 초콜릿 좋아해. 저기 잔뜩 사놓은 거 안 보여? 저거 다 내가 산거야. 너처럼 한꺼번에 다 때려 넣지 않을 뿐이야.


그리고 시작된 푸념 어린 잔소리

내가 진짜, 이래서 뭘 좋아한다고 말을 못 해요 말을.

 나, 콜라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해. 초콜릿도 엄청 좋아한단 말이야. 근데 이게 진짜 사람들이 말이야, 와구와구 처먹어야 좋아하는 줄 알고 말이야... 너까지 나한테 그러지는 마라 진짜.. 


 회사에서 만난 나의 인생선배, 체구도 작고 손목도 가느다란 사수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냥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는 편이 속 편해. 나중에는 별 것 가지고 다 꼬투리를 잡더라고.'


 경험담이었다. 

https://unsplash.com/photos/c-S9qxFxtSQ

 순댓국에는 소주죠!라고 외치면 소주를 짝으로 갖다 놓고 마시기를 기대한다. 소고기보다는 돼지고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삼겹살 3인분 정도야 혼자서도 기본으로 깔고 가는 줄 안다. 기분 전환에는 드라이브가 딱이라고 하면 아닌 밤중에 홀로 정동진까지 다녀오는 게 취미인 줄 안다. 


 뭐 이렇게 극단적이람.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고디바 한 판 정도는 뚝딱이고 사무실 서랍에는 언제나 ABC초콜릿이 큰 봉지 가득 구비되어 있어야 할 정도는 되어야 하므로,

 그냥,

 말아야지, 하고.

https://unsplash.com/photos/we4l7ch6iwc

 그래서 테두리를 그려냈다. '좋아한다'는 행위를 으로 정의하느냐 로 정의하느냐를 기준으로 삼았다.

 테두리 내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나누는 걸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가족들은 내 위장의 할당량을 정확히 알고 있으므로 입으로는 더 먹으라고 권하면서도 굳이 더 덜어주지는 않았다. 친구들은 어차피 나와 똑같은 인간들이어서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이 사람, 사랑한다고 해서 테두리 내로 들였는데, 심지어 '친구'였는데, 너는 왜 자꾸 양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게야.

신랑은 일단 잔뜩 남기는 한이 있더라도 많이 시켜 놓고 보는 편이다. 근데 안 남겨서 문제다.

 신랑의 '양보다 질' 논리에 따르자면, 피자는 무조건 패밀리 사이즈로 시키고 중국집에 가서도 요리는 반드시 '대'자로 시켜야 한다. 음식은 조금씩 만들면 아무래도 맛이 덜하기 때문이란다. 결국은 같은 테두리 안에 있다는 주장이다. 

 신랑은 오히려 반문한다. 진짜로 좋아한다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한 입 더 먹고 싶어 지는 거고 행여라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라고. 진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 상 가득 주문하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무언가를 맘 놓고 사랑만 하기엔, 너는 미리 걱정이 너무 많아,라고.


 많이 시켰다가 남길 걱정, 많이 먹었다가 체할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무심결에 던진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가 불러 올 파장이 언제나 두려웠고, 사랑한 만큼 상처 받을 걱정이 앞서서 미리미리 조심하는 습관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두려움을 걱정하지 않는 너는 매 순간이 진심이구나.

 그의 진심은 좀 어설프기는 해도 유달리 소나무 재질이라 이 사람은 괜찮다고 확신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근심 걱정 없는 표정이 부러우면서도 어이없기도 하고 밉기도 밉지만 여전히 남산 위에 저 소나무임은 불변하다. 

https://unsplash.com/photos/DHYfjAe_eeo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보이는 대로 입에 집어넣고 보는 초콜릿(어디서 난 초콜릿이냐고 물어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단 한 조각도 남겨 놓지 않은 초콜릿(종류별로 맛보고 싶었던 거라면 반 씩 잘라서 먹어도 된다). 권하지도 않고 도로 집어넣어 버리는 초콜릿(안 먹겠다는 대답을 듣고 난 후에 치웠어야 한다). 제 배를 다 채웠으면 눈은 폰에 고정한 채 쪼르르 소파에 가서 눕는 이 사람. 

 그래도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거겠지. 너만의 방식으로, 매 순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단순함의 근본이므로, 아무래도 너의 사랑을 이해하려면 나도 내가 중심이 되는 방식을 좀 익혀두어야겠다.

 그대는 나의 문법을 좀 배워야겠다. 간접 목적어와 직접 목적어가 난무하는 4형식 이상의 문법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나도 초콜릿 좋아해.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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