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제이 Jan 04. 2021

멜론보다 라디오, 그리고 DJ

운전석에 앉는 게 즐거운 이유

 처음 운전석에 앉았을 때의 해방감을 잊을 수 없다. 2007년도에 나온 MAX14를 크게 틀고 혼자 도로를 누빌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운전대 앞의 여러 재미 중 하나는 바로 음악이다. 국산, 외제 할 것 없이 어느 브랜드의 오디오셋을 넣었다고 자랑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명품 오디오로 튜닝하는 데에 돈 백 씩 쏟아부을 만도 하다(고 가슴은 아니지만 머리로는 이해한다).

  육신의 힘을 들이지 않고 땅을 접어 내달리는 기계 속에서, 고정되지 않은 풍경을 해석하고 판단하느라 시선은 전면에 고정된 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바삐 움직인다. 인간은 시각정보에 크게 의존하는 동물이다. 그래서인가, 운전을 할 때 듣는 음악은 똑같은 노래여도 색다르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따라 유난히 새롭게 다가오는 노래는 대부분 내가 고른 노래가 아니다. 

https://unsplash.com/photos/CT_8qZeXx78

 신랑은 운전을 못 한다. 어쩌다 보니 아예 따질 않았다. 지방에서 산 적도 없어서 딱히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웨딩사진을 찍던 날, 나는 예신(예비신랑)은 조수석에 앉히고 하얀 드레스 밑에 단화를 신고 스튜디오까지 직접 차를 끌고 갔다. 드레스가 너무 풍성하면 운전하기 어려우니까 머메이드라인으로 고른 건 물론이다. 

 운전을 못 하는 배우자는 내 개인 라디오 DJ가 되었다. 그런데 전용 DJ 치고 내가 틀어달라는 노래를 재깍 틀어주는 법이 없다. 아비치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면 갑자기 마룬5를 틀지 않나, 이문세 노래가 듣고 싶댔더니 이선희를 틀어주는 식이다. 

 근데 또 듣다 보면 다 좋은 노래들이라, 너의 선곡이 맞았노라고 선언하고 마는 것이다. 

https://unsplash.com/photos/16ad3Hx4_fU

 바닷가로 내달리는 길에, 나는 보사노바를 듣고 싶었다. 그냥 재즈 말고 알아들을 수 없는 포르투갈어를 흥얼거리는 보사노바야말로 하늘과 바다가 닿은 경치에 무척이나 어울린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운전 중에 핸드폰을 볼 수는 없으니 라디오를 튼다.

 교통방송, 광고, 대리운전, 노이즈, 그리고 광고를 돌리다가 정말 우연히도 바로 그 순간에 거짓말처럼 보사노바가 나오는 채널에 딱 걸리면

 그 날은 운수대통이다. 무표정으로 내적 댄스를 흔들어 재끼며 속도가 살짝 오를 수는 있지만, 일단은 그대로다. 조용한 흥얼거림이 행복하다. 이 작은 우연에 먼 길 온 보람이 있다. 

겨울, 여수에서. 보사노바는 못 들었다.

 조수석에 앉은 퍼스널 DJ는 보사노바를 틀어주지 않는다. 혼자였으면 갓길에 잠깐 멈춰 서라도 유툽으로 보사노바를 틀면 되는데, 운전할 때면 언제나 내 폰은 그의 손에 들어가 있어 별도리가 없다. 

 아무리 떼를 써 봐도 결국 블루투스로 예상치 못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괜찮다. 구불구불한 도로에는 징기 징기 한 느낌의 올드팝이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다만 보느라 잊고 있었다. 멀리 고정되어 있던 시야의 끝에 도로가 와서 걸리고, 좌우로 출렁거리는 운전대를 잡은 손이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강을 끼고 달리는 도시의 풍경에는 모던 팝.

  듣고 싶었던 바로 그 음악을 남이 골라줬다는 사실은 약간 감동에 가깝다. 그래서 홀로 운전을 할 때는 작은 행운을 기대하며 항상 라디오를 켠다. 

생각하지 못했던 노래가 찰떡같이 귀에 와서 붙을 때의 기쁨은 우연한 행운이 주는 만족감과는 다른 종류의 행복을 안겨준다. 나와 같은 것을 보고 듣는 사람이 나를 위해 골라 준 노래. 나도 몰랐던 나의 욕구를 찾아 충족시켜 줄 때, 나는 이 음악이 진정 나만을 위한 노래라는 착각에 빠지고는 한다.

 조수석의 선곡이 매 번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니지만, 8할은 만족스러우니 언제나 두근두근 한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아 조수석으로 스마트폰을 넘긴다. 


 아직까지는 체력이 받쳐주는 한해서 운전이 즐겁다. 매 번 노래 한 곡 끝나는 시점에 맞춰 다음 노래를 선곡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조수 DJ도, 이런 고급 인재를 노래 한 곡 뽑아보라고 부려먹을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럽다. 심지어 종종 직접 라이브도 불러준다. 

 가창력은 할말하않이니까 플레이 리스트만 잘 뽑아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