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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Nov 17. 2020

남편은 종종 내 칫솔을 쓴다

치약을 따로 쓸 수 없는 슬픔

 치약을 중간부터 짜서 쓰는 사람도 있고, 끝에서 부터 짜서 쓰는 사람도 있다. 짜장파가 있으면 짬뽕파도 있고, 부먹이 있으면 찍먹도 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담먹(담가놨다가 먹는)'파인데, 이러나저러나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입으로 들어갈 거 아무래도 괜찮다.

 

 그래도 내 입으로 들어가는 칫솔만큼은 온전한 내 것이었으면 좋으련만.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과정'이라고, 어느 일본 작가가 말했다던데, 나는 아무래도 '절대'의 기준이 너무 높았나 보다. 인생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는 줄은 알지만, 나의 상식이 그대의 상식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지만... 그래도 이거 참 어느 선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치약은 이미 포기했다.

 다 쓴 치약도 튜브를 잘라서 속까지 박박 긁어 쓰는 나와 달리, 신랑은 치약을 적. 당. 히. 쓴다. 10%도 안 남은 치약을 아득바득 밀어 쓰고 있는 와중에, 다른 사람이 와서 대충 푹 눌러쓰면 좀 짜증이 난다. 치약을 따로 쓰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들 하는데,

 내 칫솔도 막 갖다 쓰는 사람이 치약이라고 안 그러겠는가, 손에 잡히는 대로 쓰지. 그렇다고 내 치약과 칫솔을 그의 눈과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놓고 써야 한다면, 회사도 아니고 집에서 대체 이게 무슨 쌩쑈란 말인가. 

그가 내 칫솔을 종종 편하게 갖다 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색과 모양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칫솔인데도 굳이 손에 잡히는 대로 쓰는 건, 대체 얼마만큼이나 무던해야 넘나들 수 있는 경계인 걸까.

 변명을 하자면, 어쩌다 보니 남편의 칫솔이 분홍색이고 내 칫솔은 검은색이라 살면서 배운 대로 무의식 중에 무채색에 손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1+1으로 칫솔을 왕창 사놓고 순서대로 꺼내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멈칫, 생각을 하고 행동할 수는 없었단 말인가. 같은 집에 살면서 너만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건 아무래도 너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 아니겠니.

같은 말 반복하기도 피곤하다...

 촉촉이 젖은 칫솔을 보며 오늘도 생각한다. 뭐, 칫솔 섞인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부부란 어차피 '찐한' 관계니까, 칫솔을 따로 쓴다는 사실 자체가 무의미하려나. 침대에 누워 번갈아 방귀도 빵빵 뀌는데 칫솔이 뭔 대수겠는가.

 뭣보다 뱃심에서 나오는 체력이 너무 좋다. 치약을 어디서부터 짜서 쓸 것인지, 치약 주둥이를 위로 세울 것인지 아래로 둘 것인지를 가지고 다투기에는, 당신의 체력이 나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서 싸움이 되질 않는다. 주먹다짐은 계란으로 바위치기고, 칼날 같은 말빨을 세우기에도 돌부처 같은 사람이다. 

 티그리야, 자꾸 그러면 너는 영원히 나 같은 행복이가 될 수 없어~ 일로 와서 나랑 같이 누워있자

 이런 능글맞은 인간...


 괘씸하지만, 치약과 칫솔 때문에 이혼까지 갈 수는 없다. 처음에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아주 사소한 일들이다. 그러나 버릇처럼 무시하는 '별 것도 아닌 일'도 못 챙기는 사람이, 진짜 큰일이 생겼을 때는 오죽할까. 밖에서 새는 그릇 안에서도 새는 법이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법이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다.

 네 것 내 것의 경계를 너무 쉽게 넘나드는 우리 신랑은, 밖에서도 실제로 '선'을 종종 넘어 큰 사단을 치르고는 한다. 회사에서는 절대 그런 일 없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말을 안 해 주니 너 홀로 모르고 있을 뿐이라 일러두었다. 오죽하면 한 때 그의 회사에서 '저 사람 아내가 정신병이 있다더라'는 소문까지 났겠냐고.

 회사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게야...


 세월이 쌓이자 돌부처를 두들기던 몽둥이도 한껏 무뎌져서, 물 맺힌 내 칫솔을 보아도 더 이상 분노가 차오르지 않는다. 약간 씁쓸하기는 하지만, 전에는 이거 정말 이혼 감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많이 잊어버렸다. 망각은 축복이라더니, 우리 신랑은 복도 많구나.

 때때로 남편의 탈을 쓰고 세상을 살아가면 고민도, 걱정도 없이 행복하겠다는 상상을 한다. 사소한 것들에 발목 잡히지 않고,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머물 뿐이니 얼마나 홀가분할까. 정말이지 부처가 따로 없다. 내 법명이 '무우수' 즉 '근심 없는 나무'인데, 내겐 너무 어려운 과제다. 내게 부족한 부분을 법명으로 삼아 정진하라는 의미였을까. 나보다는 남편에게 더 어울리는 이름인 듯하다. 

 그러니 나는 너를 목표로 삼아 정진해야겠다.

 

정진은 정진이고, 칫솔은 내 꺼 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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