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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Jan 11. 2021

먹는 것에 항상 진심인 그대여

쉿, 울지 마요 나의 작은 아기새

 프러포즈 대신 둘이 함께 대만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두 번째 날에 예비신랑을 울릴 뻔했다.


 네가 그렇게 먹는 것에 진심인 줄 몰랐지 그때는.


 신랑은 정말 진심으로 서러워했다.

 로즈 어쩌고 하는 호텔을 예약했는데, 24시 푸드바를 운영해서 가성비가 좋기로 유명한 숙소였다. 거창한 뷔페능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끼 간단한 머핀 쪼가리와 찐빵 같은 딤섬, 그리고 약간의 과일 정도는 나오는 곳이었다.

 그날은 점심을 2시가 훨씬 넘어서 먹었고, 6시에도 아직 배가 부른 상태였다. 워낙에 밤늦게 뭘 먹는 습관이 없는터라 그냥 저녁은 적당히 푸드바에서 때워도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때는 참 서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맛잘알 신랑 덕분에 이제는 어디 가도 호갱 소리는 듣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아예 저녁을 건너뛰어도 될 정도로 점심을 잘 먹었으므로, 무료로 제공되는 푸드바에서 새벽에 배고파서 깨지 않을 정도로만 주워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식사라고 하기엔 많이 부실했지만 말했듯이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숙소에서 '무료'라는 것은 우리가 낸 방값에 이미 포함되었다는 뜻이다. 무료 푸드바를 이용하지 않으면 손해인 셈인데, 우리의 일정대로라면 무료바를 단 한 번도 못 써보고 돌아갈 판이었다.

 그런데 애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짜증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알겠는데, 왜 짜증이 났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무료인지 알겠네
응, 그래도 무료인 것 치고는 먹을만하지 않았어? 어제도 여기서 한 끼 정도는 때우려고 했는데. 저녁보다 점심은 좀 더 먹을만한 게 나오지 않을까?

 결국 꾹꾹 참던 말이 터져 나왔다.

아니 근데 진짜 우리가 그걸 왜 먹어야 해? 맛ㄷ.. 도 없는 걸? 대만까지 와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이때까지 한 번도 나에게 화를 낸 적 없던 사람이었는데.


이태원에서. 서울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동서남북 맛집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쉬는 중이다.

 원망 어린 표정으로 됐어! 아니야 됐어! 를 외치는 그를 끌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두 번째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야 행복한 얼굴이 돌아왔고, 나의 짜증은 한숨으로 바뀌었다. 안 먹어도 되는 자먹어야만 하는 자. 심지어 '먹어야만 하는 자'에게는 '맛있는 걸'이라는 조건도 붙었다. 맛있지 않으면 차라리 안 먹느니만 못하단다.

 결혼하자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결혼생활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의외로 잘 지내고 있다. 안 먹어도 되는 자는 여전히 아무거나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산다. 먹어야만 하는 자는 배우자를 열심히 교육하고 있다. 덕분에 난생처음 가이세키도 먹어보고 오마카세도 먹어보고 미슐랭 레스토랑에도 가봤다. 어복쟁반도 결혼해서 처음 알았다.

 상향평준화란 딱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똑같은 체인이어도 제일 맛있는 지점은 따로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쯤 되면 나만 득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살은 신랑 혼자 다 찌는 걸 보면(!) 그도 좋기는 좋은 거겠지.

 이제는 다이어트해야 한다고 맨날 우는 소리다.


나의 작은, 아니 통통한 아기새는 언제쯤 울음을 그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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