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요가 수업을 쭈----우---욱 쉬고 있다.
배우러 가지도, 가르침을 나누러 가지도 못하는 나날들이 계속되니 마음이 불안하다. 근손실도 두렵고 골반이나 어깨 불균형도 걱정되고
마음이 이토록 불안한 걸 보니 확실히 수련이 부족하기는 한가보다.
홀로 수련이 두려운 이유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탓이다. 혼자 하면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바른 자세로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제멋대로 무리해서 욕심내다가 또 다치면 어떡하지, 걱정부터 앞서는 이유는, 모두 자신을 향한 의심에서부터 시작한다.
불완전한 인간이라 그렇다.
불안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정이 가지 않지만, 세상사 좋고 나쁨으로 딱 갈라지지 않는다. 특히 자기 의심은 잘만 승화시키면 좋은 동기부여로 작동할 수 있다. 의심은 곧 질문하는 자세다. 옳은 질문은 어둠 속에서 한 발 한 발 내딛을 곳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말은 거창하지만 결국은 괜찮다는 뜻이다. 토닥토닥.
나 홀로 수련에 매진하던 신랑도 요즘은 유툽을 틀어놓고 요가를 한다. 신랑은 핸즈온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한다. 요가원에서야 그럭저럭 하는데, 특히 '나'의 핸즈온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집에서는 도저히 도움을 줄 수 없다. 터치를 워낙 불편해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잘못을 지적받았다는 생각에 방어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툽을 틀어놓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장족의 발전이다. 초보가 '생'으로 혼자 할 땐 아무래도 쉬운 동작 위주로만 하게 된다. 마음속으로 세는 카운팅도 슬슬 짧아지고, 수시로 시계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유툽을 틀면 1.5배속 하지 않는 이상 재생시간에 맞춘다는 뜻이니, 내 몸뚱이와 적당히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빠르지는 않아도 나날이 변해가는 배우자를 보면서 나 역시 모르는 척, 타협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나'를 의심해도 '나'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매트 위에 누워 꾸무럭거리는 수준이라도,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내 몸은 꾸무럭에 맞춰간다. 꾸물거리기가 편해지면 이제 엎드려서 푸닥 푸닥 하다가, 푸닥거리기도 익숙해질 때가 온다.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은 자세를 아무렇지 않게 해 낼 때가 온다.
어느새 열린 몸에서 그렇게 믿음과 확신을 배운다. 확신 속에서 한결 단단해진 몸만큼 마음도 힘을 기른다. 주춤하는 순간과 오히려 후퇴하는 듯한 좌절을 마주칠 때는 숨을 고르면 된다. 나의 속도와 힘에 맞춰갈 뿐이다.
만약, 정말 만에 하나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면, 질환 등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 이상에야 '배신당할만했기 때문'이다.
연애 스토리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내가 이렇게 잘해줬는데 어떻게 네가 날 배신할 수 있냐>
잘해 준 건 1개고, 못 해 준 9가지는 잊었다. 하루 이틀 운동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꾸준히 누워있던 나날은 잊었다. 덤으로, 너는 못났고 나는 잘났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이런 오해가 심하다. 당신은 그렇게 잘나지 않았다.
<거 봐, 그러면 그렇지 너도 날 배신할 줄 알았어>
배신당한다는 두려움에 방어적으로 나오면 누구든 결국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떨어져 나가 준다. 의심과 질문은 좋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근거 없는 문제제기는 소모전일 뿐이다. 극단적인 목표를 이뤄냈다손 치더라도 불안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므로, 스스로를 자꾸 시험에 들게 할 필요는 없다.
<내가 너무 부족했어, 내가 더 잘할게>
오히려 당신이 너무 과했을지 모른다. 칼로리 섭취를 조금만 줄여달라는 말이 레몬물만 마시면서 쫄쫄 굶으라는 뜻은 아니다. 무엇보다 맞는 짝이 아닐 수도 있다. 스피닝이 (한 때) 아무리 유행이라 한들 내게 안 맞으면 관절만 상할 뿐이다. 남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삼은 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실체 없는 의심을 진짜 배신으로 실현시키는 것도 다 나 자신이 키운 일이다.
말은 쉬운데 모든 연애가 그러하듯이 내가 당사자가 되는 순간 혼란을 막을 길이 없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으로는 잘 안 된다. 그래서 연애도 운동도 자꾸 해 봐야 는다.
자만하지 말고 꾸준하게
지나친 방어기제는 잠시 접어두고
스스로를 옥죄지 않는 선에서
나 같은 범인에게는 운동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어도 매 동작이 어렵고 결혼을 해서도 관계가 참 어렵다. 그래서 배움을 멈출 수 없고 알람을 맞추고 타이머를 켜 놓는다.
언젠가 더욱더 스스로에게 의지가 되는 나 자신이 되는 날까지.
그 지경이면 내가 이미 중생 아닌 부처겠지. 이쯤 되면 목표가 너무 높은가 싶기도 하다.
새로 받은 앱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운동을 시작할지 감도 안 잡히는 사람보다는, 코로나 시대에 홈트가 아무래도 불안한 사람들에게 더 유용하다. 자세나 호흡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회수와 세트는 적정한지 피드백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아직 부족한 부분은 공유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내가 만든 시퀀스를 회원들에게 공유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여럿이 똑같은 운동을 하고 싶어도 제각기 고민해서 시리즈를 설정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머릿속에 이미 그려놓은 그림이 있다면 운용 자체가 크게 어렵지는 않다. 간단하지만 구체적이고 단순하지만 꼼꼼한 앱이다. 인스트럭터와 트레이너, 선생님이라면, 노트에 수기로 적어 내려 가던 시퀀스 메모들을 간결하게 정리하기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