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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Jan 18. 2021

할머니와 로봇청소기

지그재그 청소를 시작합니다

 작고 작은 우리 할머니.

작은 우리 엄마보다 더 작은 엄마의 엄마. 조그만 손으로 송편도 만두도 동글동글 작고 곱게 빚는 할머니의 눈에도 로봇청소기는 작아 보였나보다.


 로봇청소기 요놈이 아주 요물이다.

 부모님께 처음 로봇청소기를 사드렸을 때도 그랬다. 동그랗고 조그만 녀석이 돌돌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양새가 귀엽다더니 '꽃게'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빠는 갓난쟁이 애를 대하듯 '꽃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급기야 살짝이라도 안 보일라 치면 슬금슬금 따라가서 의자 다리나 식탁에 쿵쿵 부딪히지 않도록 물건을 옮겨준다.


  작고 귀여운 우리 집 청소 요정.

https://unsplash.com/photos/p7MsAMLSbbU

 둥글넓적한 딱정벌레처럼 생겨가지고는 양 옆의 '손'을 부지런히 놀려서 입을 채우는 모양새가 꼭 뽈뽈거리며 갯벌을 누비는 게를 닮긴 했다. 레이저 센서가 달렸다다더니 의외로 여기 쿵, 저기 쿵, 잘도 부딪히고 다닌다.

지그재그 청소를 시작합니다. 학습된 정보를 바탕으로 청소를 시작합니다.

 전문가 목소리로 호기롭게 충전대를 나서는 것 치고는 어쩐지 어설프다. 언제 어디 구석에 처박혀서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전선을 칭칭 감고는 삐로리로리로리로 우는 소리를 낼지 모르는 게, 부모님 눈엔 사방팔방 온몸으로 걸레질을 치고 다니던 어릴 적 우리 모습이 겹쳐 보였을까.


 사고 치고 돌아온 강아지 다루듯 로봇청소기를 대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슬쩍 웃음이 난다.


 부모님도 이러할진대 할머니는 오죽할까.

어 엄마, 뭐해? 왜?

 내가 아니라 엄마가 한 말이다. 엄마랑 한참 통화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 목소리가 멀어졌다. 갑자기 폭포 같은 웃음소리가 터진다. 보이지도 않는 엄마가 말도 못 하고 웃고만 있으니 나도 똑같이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엄마? 왜왜? 뭔데?


 우리 할머니는 로봇청소기 가만가만 지켜보다가 잘 다니라고 불도 켜 준다. 딸 웃는 소리에 엄마도 웃고, 웃음소리는 전파를 타고 딸의 딸에게까지 전염된다.

엄마랑 할머니랑, 아직 카페에 갈 수 있었던 시절의 제주도에서.

 엄한 분은 아니시지만 감정표현이 드문 우리 할머니. 한 많은 인고의 세월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가 배꼽 빠지게 웃으실 때면 진짜 말도 못 하게 웃긴 거다. 웃을 때 미간이 올라가는 모양새가 원체 웃음 많은 우리 엄마랑 닮았다.


 혼자 지내는 게 편하시다던 할머니를 코로나 핑계로 완전히 모셔온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당사자는 어쩌실지 모르겠지만 가족들은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것이 좋기만 하다. 엄마는 엄마와 함께여서 좋고, 아빠에게는 칭얼거림을 받아 줄 어른이 생겼다. 동생은 부모님이 자식 말은 안 들어도 부모 말은 듣는 사람이라 안심이다.

 따로 살고 있는 첫째 딸네도 득을 봤다. 본가에는 이미 로봇청소기가 있으므로 할머니 집 청소 요정이 우리 집으로 이사 왔다.


 젊은 부부의 집에 온 로봇청소기는 미안하지만 요정 아닌 노예 신세다.

 어른들처럼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이 쉬지 않고 일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렸다. 아, 배우자는 로봇청소기에 '풍뎅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으니, 귀여워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 신랑, 어른이었던 걸까.


커버 이미지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7FibuFsPV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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