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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Dec 24. 2020

당신이 잠든 사이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지구의 밤] 감상 포인트

 깊은 밤, <자기 전에 듣는 명상음악>을 아무리 틀어놔도 도무지 잠들 수 없는 날에,

뒤척거리는 모든 슬픈 영혼에게 추천하고 싶은 넷플릭스 프로그램이 있다. 


 넷플릭스는 드라마도 드라마지만 다큐멘터리도 정말 잘 만든다. 넷지오는 물론 BBC 다큐멘터리 시리즈 못지않게 퀄리티가 좋다. 개중에서도 [지구의 밤]은 저조도나 열감지 특수 카메라를 백방으로 활용해서 제작한 작품으로,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동물들의 습성까지도 포착해냈다. 


 쏟아질듯한 은하수와 오로라를 비롯한 감동적인 풍경이 펼쳐지므로, 보다 큰 화면으로 보기를 추천한다. 


https://www.standard.co.uk/culture/tvfilm/netflix-night-on-earth-nature-documentary-nocturnal-animal

 저조도 카메라로 포착한 세상은 선명한 세피아빛 같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의 페이페어 필터 효과 같기도 한, 묘한 평면성을 부여한다. 주행성인 줄만 알았던 치타는 보름달빛을 가득 품고 사냥을 떠나고, 야행성인 사자는 그믐달에 몸을 숨긴 채로 누떼를 노린다. 

 태양의 1/40배 밖에 안 되는 달빛조차 없는 날은 초고감도 카메라보다는 열화상 카메라 또는 열감지 카메라만이 세상을 담을 수 있다. 고양잇과 육식동물이라고 다 밤에 제왕은 아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꼼짝 못 하는 치타와 달리, 사자는 성공하는 사냥의 90%가 모두 밤에 이루어진다.

 [동물의 세계]나 [동물의 왕국]만 볼 땐 사자 떼 맨날 굶어 죽는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다.

제1화 <달빛이 내리는 평원> 과 마지막 화인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한 장면.

 초고감도, 열화상 외에도 적외선 카메라는 정글과 바다의 또 다른 면모를 담아낸다. 극한의 추위와 압력에서도 작동하는 카메라도 있다. 영하일 땐 심장까지 얼어붙었다가 기온이 올라가면 다시 녹아서 뛰어다니는 알래스카의 개구리나, 바다의 리듬을 좌지우지하는 동물성 플랑크톤의 루틴을 소개할 때 쓰인다. 북극과 툰드라에서 적도에 이르기까지 지구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다녔다는 뜻이다. 

 '빠짐없이'라는 대목이 더욱 실감 나는 회차가 있다. 바로 <잠들지 않는 도시> 편이다. 보통 '자연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어드메나, 희귀한 동식물과 멸종위기종이 가득한 보호구역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구의 밤]은 말 그대로 '지구'의 밤이다. 인간이 아무리 전기로 불을 밝혀도 밤은 찾아온다.

 가장 인위적인 공간에 깃들어 사는 동물들에게도,

 밤은 공평하게 찾아온다.  


 특수 카메라로 담아낸 밤의 풍경은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낮보다 채도가 부족하다. 어둠 속에 빛을 발하는 버섯이나 곤충이 담긴 화면도, 배경은 새카맣다. 혹은, 새하얗다. 3개월 동안 밤만 계속되는 백야를 헤쳐 나가는 북극곰 가족의 터전도 색감이 넘쳐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평면에 가까운 무채색 화면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색은 갈가리 찢긴 바다표범의 붉은빛뿐이다. 

  생동감이 넘쳐흐르는 무채색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래도 눈에 좀 부담을 덜 주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기대와 함께 뭉근한 대자연의 평화도 다가온다. 세련된 목소리의 내레이션에도 마음이 더욱 차분해진다. 


 오늘 밤,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영상이 필요하다면 [지구의 밤]이 제격이다.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두 눈을 반짝이는 귀여운 짐승들은 보고만 있어도 힐링 그 자체니까.



덤으로, 


 제작과정과 제작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 편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지구의 밤 : 어둠 속의 카메라]도 있다. 최첨단 기술 소개와 함께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연구로서의 가치 등도 언급되므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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