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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Feb 09. 2021

K-장녀의 마음속엔 아저씨가 산다

장녀는 왜 차분하게 돌아 있는가

 장녀는 한 동안 유행한 인터넷 밈 중 하나였다.

 나는 인스타에서 처음 봤는데,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육하원칙 중 '무엇을'은 명확하다. 장녀는 확실히 여러모로 좀 크레이지하다. 


 요즘 보면 '개'라는 수식어가 전에 없이 많이 쓰인다. '너무'나 '매우' 같은 정도부사의 최상급 정도로 '개 흔하게' 쓰인다. '미쳤다'도 마찬가지다. "와 미쳤다!"만 하더라도 맥락에 따라 칭찬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망친다고 다그치기엔 원래 언어가 그렇다. '끔찍하다'는 뜻의 awful도 상황에 따라서는 '아주'의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awfully great!"이나 "awfully nice"는 비문이 아니다. Crazy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장녀는 크레이지 하다는 말은 칭찬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SNS에서 돌던 '장녀 유머'를 주워왔다. 

 아시안 걸은 크레이지하다. 역시 칭찬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어권에서 '아시아'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는 대체적으로 내성적이고 신비롭다는 느낌이 강한데, 여기에 'girl'이라는 여성성까지 더해지면 완벽한 타자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타자가 되는 순간, 이해에서도 한 발 짝 더 멀어진다. 

 Asian girl이 미치게 된 이유는 범주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미쳤다'는 표현은 정상, 상식에서 벗어난 상황에 주로 쓰인다. '공부에 미쳤다'는 공부에 지나치게 열중한다는 뜻이고 '이 날씨에 등산이라니 미쳤네'는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정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누구의 상식인가에 따라 미쳤느냐, 안 미쳤느냐가 달라진다. 

 신비로운 동양의 에에이시앤 걸은, 그들의 머릿속 경계 밖에 놓여 crazy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리고 아시안 걸에게 할당된 울타리는 매우 작은 편이다. 

신비롭다: (일이나 현상 따위가) 이성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한 데가 있다.                                                                                          

 신비롭다는 형용사에는 몰이해라는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차분하고 꼼꼼한 아시안 걸, 성실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의 아시안 걸. 영어권 남성이 정의하는 작은 틀 안에 꼭 들어맞지 않는 아시안 걸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상식과 정상이라고 명명된 작은 틀 밖 아시안 걸은 다 크레이지다. 그 코딱지만 한 틀에 억지로라도 끼워 넣으려면 정말 정신줄이라도 놓을 수밖에 없다. 

 그 크레이지 중 제일 크레이지라는 건, 정말 크레이지인 거겠지. 


 거 참 대체 얼마나 꼬여있는 거람.


큰언니가 몸이 불편해서 차녀인 미나가 장녀 노릇을 하고 있다. 

그는 차남이지만 요절한 형을 대신하여 맏아들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대한국어사전에서 제공하는 예문은 장녀 콤플렉스의 기원을 여실히 보여준다. 장녀, 장남은 가족을 책임지는 역할, 즉, 같은 '長'자를 공유하는 '가장'의 권위를 계승한다. 문제는 한국의 '家長'이 남성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맏딸 콤플렉스'는 있어도 '맏아들 콤플렉스'는 없다.

 가부장제에서 여자에게 주어진 '장'의 역할이란, 여성성을 버리지 않고서는 부담할 수 없는 종류의 권력이다. 그런데 가부장제는 XX유전자로 태어났는데도 여성성을 실천하지 않는 자를 처벌한다. 권력을 가진 억압의 대상이라는 모순된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렇게 할머니가 탄생한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의 저자인 하재영 작가는 여성인 할머니가 가부장제에서 누리는 특권은 죽고 없는 남편의 가부장적 위력을 이어받은 결과이자 아들을 낳은 여성에게 부여되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할머니는 자신을 가장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가족관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도 가장의 지위는 남성, 아들의 몫이다. 아들이 없었다면 시어머니도, 할머니도 될 수 없다. 외할머니가 온화하고 인자한 존재로 남을 수 있었던 건 가부장제가 설정한 권력구조의 바깥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친할머니라고 마냥 엄하고 무서운 기억으로만 남고 싶겠냐마는, 엄격하고 권위적인 남성성의 계보를 잇기 위해선 대척점에 있는 가치들은 포기해야 한다. 장녀도, '장녀 노릇'과 '가장 노릇'을 부여받은 그 어떤 여성이라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여자가 '남자처럼' 구는 게 허락되냐면, 그건 또 아니다. 

 장녀의 광기에는 단순히 가족을 위한 희생과 책임이라는 얄팍한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묘한 뒤틀림이 있다.


 한 시절이 가고 한 세기가 저물면서 여자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배우며 자랐다. 배운 대로 믿었고, 스케치북에는 장래희망으로 우주비행사, 발명가, 대통령을 그렸다. 단 한 번도 "제 꿈은 여성과학자입니다" 라던가 "여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소개한 적 없다.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하자 한 친구가 너는 경찰이 아니라 여경이라고 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럼 너는 남경이겠네,라고 했더니 그런 게 어딨냐고 화를 냈다. 아니, 화를 낸 게 아니라 바보라고 놀렸던가?

 영화와 소설 속 영웅들은 피눈물을 삼키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가정을 버리고 떠났다. 큰 사람이 되려면 작은 일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들었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못 산다는 충고, 난처한 상황에서는 직설적인 대답 대신 미소로 대처하라는 소이부답 같은 사자성어를 외우고 익혔다. 

내가 남자인데 부회장을 할 수는 없잖아.

 고등학교 전교 학생회장 선거는 무조건 남녀가 한 조를 이루어 출마해야 했다. 그렇다고 둘 다 '회장' 타이틀을 갖냐면, 그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는 친구에게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다. 내가 먼저 주도하고 내가 꾸리고 내가 나름 유력한 후보였음에도 나는 그를 회장으로, 나를 부회장으로 적어 넣었다. 갈등을 일으켜선 안 된다고, 이건 '작은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전교 부회장이 되고 다음 학생회장 후보는 여학생을 회장으로, 남학생을 부회장으로 밀었다. 내 직속 후배들이 당선이 되었는데, 전교회장이 된 여후배가 많이 힘들어했다. 실은 남후배가 처음부터 학생회를 맡길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부회장' 자리에 자발적으로 들어오려는 남학생을 찾지 못했던 터였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고,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https://unsplash.com/photos/A-MgL3-zTFc

 내가 자라나는 만큼 집이 좁아지듯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나를 둘러싼 사회가 점점 옥죄어 들었다. 나의 미소는 동의로 받아들여지거나, 웃지 않으면 좀 웃으라는 호통이 돌아왔다. 나는 언제나 미소로 동의해야 하는 셈이었다. 내 낯짝과 더불어 몸뚱이 구석구석을 통제하는 사회에 때때로 정신이 멍해진다.  

 남자가 큰 일을 하려면 가정에 좀 소홀할 수도 있는 법인데, 여성이 가정을 등지면 맹목적인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회사에서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은 흔한 가십거리였는데,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도 욕을 먹었다. 애를 낳지 않는다고 질타하더니 애나 보고 살림이나 하라는 놀림이 동시에 몰아쳤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데 고등학교 때 <전교 학생회장 선거 입후보 지원서>가 겹쳐 보였다. 나의 이름을 어느 자리에 써넣어야 하는지, 무엇을 체크해야 하는지 암묵적으로 다 정해져 있었다. 평생 권력에 잘 편승해서 살아온 장녀는 알면서도 결혼을 하고, 주변에는 굳이 결혼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다닌다.

진짜 개 힘들다 ㅅㅂ 자고 싶고 근데 난 낳고 나니 더 좋아 애기 너무 예뻐..!!!!! ㅅㅂ 예쁘다구!!! 애기 아직 뱃속에 있을 때가 좋을 때라는 말 신경 쓰지 마 나름의 좋음이 있지만 일케 만나니까 진짜 개좋아 너무너무 사랑스럽다ㅠㅜㅠㅜㅠㅜㅠㅜ진짜

 애 낳고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대학교 동기를 보면서 급 현타가 왔다. 나는 임신, 출산, 육아를 향긋한 미끼가 담긴 덫으로 여겼는데, 남자에게는 트로피지만 여자에게는 족쇄로 작용하는 올무처럼 느꼈는데, 친구는 아기를 아기 자체로만 보고 맘껏 사랑하고 있었다. 

 장녀의 마음속에 심어진 남성은 장녀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새 아저씨가 되었다. 내 마음속 아저씨는 아직도 영웅주의를 가득 품고 여성성으로 정의되는 개념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둘 것을 요청하고 있었음을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나 자신을 부정하고 소외시키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나 자신도 온전히 사랑하기 어려운 장녀는 여전히 살짝 미쳐있지만,

 이제라도 '성공한 인생'의 정의를 조금씩 고쳐나가볼까 한다. 남자의 인생만 인생은 아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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