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제이 Feb 23. 2021

추억 한 조각

여행을 기억하는 법

 여행 때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은 아니었다.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와 사진 정리하기 귀찮아서, 여행지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느냐가 제일 중하다고 변명하곤 했다. 어차피 사진 찍는 실력도 변변찮으니, 글과 메모와 끄적거림으로 기록을 남기고는 했다.

 그런데 이제는 배낭 속 공책 하나의 무게도 버거운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큰일이다.

 


 내 한 몸 간수하기도 벅찬 여행객은 고로 작고 가벼운 놈으로 고르고 고른 추억을 돈 주고 산다.

 냉장고에 붙은 작고 노란 귤 조각 모양 자석을 보며 할머니와의 제주도 여행을 추억하고, 눈 앞에서 오려 낸 종이공예 엽서는 현관문에 붙어 드나들 때마다 존재감을 뽐낸다. 결혼사진 앞은 어느새 곳곳에서 주워 온 작고 더 작은 기념품들이 가득하다.

 미니멀리즘은 물 건너갔다.

 

세계 각국에서 선물 받은 추억돌도 한데 모아놨다.

 그 와중에 나만의 것, 나의 노력이 들어 간 무엇인가를 챙겨 오고 싶다는 욕심은 또 버리지 못했다. 여느 집에도 다 있을만한 공산품 말고, 나만의 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다.

 짐가방 속에 쏙 들어가 부피는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예쁘고, 힘든 건 싫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결과물이라는 보람을 느낄만한 뭔가가 없을까. 이것도 저것도 다 갖고 싶은 인간의 간사한 속내를 충족시켜 주는 그 무언가.

장쑤성(강소성)의 유명한 수향마을 중 하나인 저우좡에서 사왔다.

 허영심과 소유욕을 모두 챙기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퍼즐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여행지의 제일 좋은 풍경을 담은 엽서, 그 엽서를 퍼즐로 만든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봐도, 어디 전문가의 솜씨에 비할 데가 있겠는가. 게다가 내가 손수 퍼즐을 맞춰야 하니, 이건 누가 뭐래도 '내가 한 거'다. 얍삽하게 공들이려는 심보에 완전 딱이다.

다 맞추는 데 30분 조금 넘게 걸렸다. 지금은 다시 통에 담아놓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미니 조각 퍼즐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값도 싸고 부피도 얼마 안 나가는 데다가 다 맞춰서 액자에라도 껴 놓으면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그럴싸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집에 걸어두었던 작은 액자 하나를 벽에 그대로 두고 온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동생과의 추억이 담긴 퍼즐이었다. 동생과 함께 떠났던 여행에서 사 왔고, 둘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늦은 밤 재잘대며 퍼즐을 맞췄더랬다. 나 혼자 퍼즐을 맞출 때면 다시 부숴서 통에 담아두고는 했는데, 둘이 함께 한 추억은 자랑하고 싶어서 액자까지 샀는데, 두고 오다니.

 아무래도 동생과 둘이 여행 갈 핑계가 하나 더 생긴 듯하다.

기념품용 퍼즐은 난이도가 상당히 쉬운 편이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전체 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정도.

 혼자 고요히 집중하는 감각도 나쁘지 않다. 중국에서의 기억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이래서 컬러테라피를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즐거웠던 여행의 기억도 하나씩 떠올랐다. 이국의 풍경, 낯선 음식, 들뜬 사람들, 조용히 떠가는 배와 카메라 앞 웃는 얼굴들.

 난생 첫 수향 마을은 놀라웠고, 두 번째 수향 마을에 가서야 무엇을 즐기고 와야 하는지를 알았다. 세 번째 수향 마을에 가서는 휘황찬란한 야경에 문 닫을 때까지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녔고, 네 번째, 다섯 번째 수향 마을에선 다음으로 가 볼 수향 마을을 고르곤 했다.

 이국에서의 몇 년 동안 싫은 기억 참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짚어 보니 나름 한껏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퍼즐은 자고로 가장자리부터 맞춰놓고 시작하는 게 국룰. 10*15c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눈 앞의 '놀이'에만 온통 정신을 쏟았던 기억도 참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추억을 조각마다 짚어가며 되새기다가도, 이내 이 모양, 저 무늬 이리저리 돌려보는 와중에 모든 잡생각이 아득해진다.


 배우자는 퍼즐 맞추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임하는 걸 보면 집중력이 나쁘지는 않는 것 같은데, 퍼즐은 마냥 지루한가 보다.

 그래도 조르면 같이 해 준다. 저번에는 500피스 퍼즐 맞추기에도 동참해줬다. 짜증을 몇 번 내기는 했지만, 결국은 해냈으니까, 액자로 만들었다.

 미니 퍼즐은 훨씬 쉬우니까 또 같이 하자고 해야지.   

하늘도 파랗고 물도 파래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음에는 조금 더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K-장녀의 마음속엔 아저씨가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