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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Feb 26. 2021

삐뚤뻬뚤해도 뿌듯해

손바느질 수제 마스크 제작기

 "이거 내가 만든 거야!"

"그러게,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어~ 좋아 보여가지고"

 "응 편하기도 편하긴 한데 자세히 보면 엄청 삐뚤 빼뚤 해..."

"오 그러네 진짜 손으로 했네?"

 "그치 웃기지? 할머니, 할머니, 이거 이거, 이거 제가 한 거예요, 여기 보세요 여기여기 들쭉날쭉하죠?"


 엄마도 면 마스크가 편하다면서 하나 해 달라고 했는데, 

음, 미싱으로 곱게 박은 놈으로 새로 사드렸다.


 귀찮다기보다 내가 썼던 것과 똑같은 키트 파는 데를 못 찾아서 그냥 돈으로 해결했다. 


 인생의 변곡점 하나를 지난 뒤로,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는 사치 부릴 때다.

 경제적 사치보다는 무형의 것들을 사치 부릴 때가 가장 보람찬데, 시간이나 젊음, 인생낭비가 얼마나 짜릿한지 모른다. 햇살 아래 널브러져 책이나 읽고 폰이나 보고 뒹굴뒹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정말이지 돈 낭비할 틈도 없다.

 돈으로도 못 산다는 황금보다 귀한 게 시간일지니, 이만큼 호화로운 삶이 또 있을까. 

핸드메이드 면마스크 키트를 받아서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고 손바느질을 시작했다.

 회사를 관둔 뒤,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하나하나 격파하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회의감도 많이 들었다. 항상 바쁘고 알차게,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뭔가를 해 왔다. 집구석에 들어앉은 적 자체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바람직'했다.

 운동도 배우고 자격증도 따고 취미생활에, 여행에, 연애까지 모두 해내는 직장인이었으니까.
 학생 때라고 다르지 않았다. 각종 동아리에 소모임에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이런 성격이다 보니 알바나 과외라던가 연구실 근무는 물론 조교도 당연히 안 해봤을 리 없다.
 남자였다면 더 심했을 것이다. 모든 자리에서 '부회장'이 아닌 '회장'직을 맡았을 테니.

 어렸을 때도, 더 어렸을 때도 그랬다. 단어장, 빽빽이, 깜지를 몰랐던 시절에도, 인라인 스케이트 타고 동네를 정복하기 바빴다. 

 밝고 적극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 그렇게 자랐다.

[겨울맞이 방한용 면 마스크 만들기]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오랑>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동시에 나는 유치원에서조차 매 번 '책자리'를 독점하는 꼬맹이었다. 남들이 뭘 하고 놀던 책 읽는 게 제일 재밌었다. 컴퓨터 게임을 할 때면 언제나 싱글 플레이가 취향이었고, 새벽을 꼬박 넘기기도 했다. 열댓 명과 어울리느니 한 두 명의 친구들과 소소한 이야기 나누기가 더 즐겁다. 커피 한 잔 들고 공원을 거니는 건 몇 시간이던 행복하지만 쇼핑은 조금 지친다.

 고등학교 때 MBIT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내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는 불쾌해했던 기억이 난다. 외향적이지 않으면 소심한 거라는 생각에 점수로만 보면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상에 있으니 나는 딱 적당한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던 것 같다. 

처음이었지만 그래도 다 만드는 데 서 너 시간 정도 밖에 안 걸린 것 같다.

 이제는 둘 다 내 모습임을 안다.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삶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만큼 소모적이었다는 사실도,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남들보다 뒤처진 건 아닐까, 나는 사회의 낙오자인가, 하는 불안감이 휩싸여도, 이제는 나 역시 겁 많은 '소심한' 사람임을 밝힐 수 있다. 

 그래서 미뤄왔던 취미생활에 도전했다. '그거 할 시간에 더 유용한 걸 해야 해서' 못 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생산성의 논리로 유용과 무용을 나누지 않기로 생각하니 할 수 있는 것들의 범주가 넓어졌다. 

 미니어처 만들기는 '난이도 하' 정도가 딱 적당하다는 걸 배웠다. '미니어처 카페 만들기'는 결국 버렸다. 컬러링 북도 재밌지만 주어진 번호대로만 색칠하면 되는 피포 페인팅이 더 성취감 있고, 그마저도 30cm가 넘지 않는 사이즈가 딱 좋다.

 열심히 한다고 했건만 취객마냥 휘청휘청 한 홈질을 보니 완벽주의도 조금씩 치유되는 것 같다. 실 다 뽑고 다시 할 용기는 없으므로 이쯤에서 타협한다.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니 주변도 조금 더 여유 있는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다. 

 빨래가 좀 쌓여있기는 한데, 청소 좀 미룬다고 뭐 죽기야 하겠는가.

<오랑> 프로그램으로 만든 키링. 열쇠를 안 쓰므로 가방용 태슬과 책갈피로 만들어 선물했다.  

 우스갯소리로 인생낭비니 사치니 했지만,  사치란 본디 '분수에 지나친 생활'이라는 뜻이다. 지금 내가 누리는 여유가 내 '분수에 맞지 않는다'라고 하면 대체 나는 그동안 나 스스로의 분수를 얼마나 하찮게 여겼던 걸까.

 '낭비'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헛되이 헤프게 쓴다니, 무엇이 헛되고 무엇이 보람도 뜻도 없단 말인가. 위대하고 거창한 영웅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삶이라면, 불나방과 다를 게 무엇인지, 어설픈 바느질에 생각만 많아졌다.


 최근에 오랜만에 영화관에 다녀왔다. 방역수칙에 따라 마스크 쓰고 한 칸씩 띄엄띄엄 앉아 <소울>을 보는데, 영화에 엄청 집중해서 홀로 앉았다는 사실도 깜박할 정도였다. 몰입해서 보고 나와서는 동생에게 물었다.

그래서, 22의 스파크는 대체 뭐였던 거아?

 단풍 씨앗이 스파크냐는 내 질문에 동생은 좀 놀란 듯했다. 영화 말미에 조 가드너도 '관리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고, 관리자는 웃으며 아직도 '불꽃'을 그렇게만 생각하냐며 웃었기 때문이다.

 졸지도 않고 똑같이 영화를 다 봤으면서도 같은 질문을 한다고? 나 때문에 영화를 두 번이나 본 동생은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 대신 곰곰이 생각하고는 답했다. 인생 한 번 살아볼 만도 하다는 느낌, 한 번이라도 행복하다 느끼면 그게 스파크 아니겠냐고. 

돈 주고 산 순면 마스크. 온 가족 모두 쓸 수 있게 사이즈별로 몽땅 주문했다.

 축구할 때 행복할 수 있다. 재즈에 행복해질 수도 있다. 그림에 소질이 있을 수도, 수학적 천재로 태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키 크고 운동 잘한다고 해서, 농구로 대성할 상이라고 해서, 반드시 농구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과학자가 되고 싶으면 근육이 얼마나 좋던 제 하고 싶은 과학자 하면 된다.

 관리자는 스파크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고 답했다. 정말 말 그대로 부싯돌로 따닥, 하고 튕겨 낸 작은 불씨일 뿐이다. 그냥, 자동차에 시동 걸었을 뿐이다. 그 자동차 끌고 맛집을 찾아다닐지 오지로 떠날지는 나에게 달렸다. 갓길에 잠깐 차 세워두고 경치를 감상해도 된다. 10분이던 1시간이던, 내 맘이다.

<오랑>에서 간단한 펜 드로잉을 배우고 만든 신년 엽서. 너무 많이 남았다.

 운전 잘 못 해도 괜찮다. 잊었다 뿐이지 누구나 처음부터 운전을 잘하지는 않았다. 뭐 반대편 차도에만 안 뛰어들면 되지 않겠는가. 과속하고 사고 내고 도로 상황 아작 내느니 맨 끝 차선에서 비상등 켜고 천천히 가는 편이 낫다. 

 내 인생 내가 갈지자로 걷던 전력질주를 하던 나만의 무늬가 있는 법이다. 속도도 사랑도 다 내 몫이라, 남 가는 길 아무리 들여다봤자 소용없나 보다.


 삐뚤뻬뚤한 바느질에도 내 마스크는 튼튼하기만 하다. 면이라 푹푹 삶아도 되고, 코 지지대가 망가지면 갈아 끼울 수도 있어 아주 흐뭇하다. 소소한 행복이라기보다 그저 만족감이라고 하고 싶다.

 이 감정이 행복인지 아닌지, 큰지 작은지 흑과 백으로 딱 잘라 말하고 싶지는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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