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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Mar 17. 2021

그게 가난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구나

식탁 위 만두 6개

나 오늘은 그래도 그렇게 많이 안 먹은 것 같아!

어...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만두도 딱 하나만 더 먹었어! 우동은 너도 오늘 꽤 많이 먹었잖아.


 간헐적 단식을 꿈꾸는 나의 배우자는 식탁에서 자꾸 나를 탓한다.

 내가 먹는 양이 적고 속도도 느리다 보니 동시에 먹기 시작하면 자기가 더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대 덕분에 먹는 양도 늘고 속도도 꽤 빨라졌다고 그대의 부모님마저 놀라는 판 이건만 신랑은 애써 나를 원망하고는 했다. 


있지... 너 나보다 만두 두 개나 더 먹었는데?


 남편은 배급제(?)를 주장했다. 

남편이 원하는 대로 너 먹을 양, 나 먹을 양 둘로 반 반 씩 갈라 내어도 봤다. 계란말이도 반으로, 제육볶음도 반절씩. 하지만 막상 식사를 시작하면 이내 그이 앞에 놓인 반찬 그릇이 비어 가는 속도가 내 것 비어 가는 속도보다 빠르므로 어쩔 도리가 없다. 

 내 몫으로 남은 완자 두 개 중 하나 정도는 그의 빈 접시에 놓아주고, 스테이크를 먹다가도 남은 고기의 반쯤은 도로 남편의 앞접시에 올라간다. 

그가 뺏어먹지 않는 유일한 먹거리는 막걸리 정도.


 말끔하게 비워가는 식탁 위로 부동산 얘기를 하던 참이었다. 


나는 원래 만두 3개 먹을 거 4개 먹은 거니까 딱 하나만 더 먹은 거라고 생각해!

하하 야, 6개 중에 너 4개 나 2개 먹었으면 네가 나보다 두 배를 먹은 거지.


어? 어... 아아..!!
그게 가난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구나!


 한 손에는 젓가락, 한 손에는 폰을 든 채로 식사를 마친 신랑은 오늘도 식욕을 이겨내지 못 한 자신에 약간 당황했다. 당황하고는, 이내 특유의 해맑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다이어트는 물 건너 간 자신을 탓하기보다 스스로의 마인드셋이 얼마나 긍정적인지를 증명했다.


 그 날 아침에는 결혼 3년 만에 드디어 남편의 궁금증을 하나 해소했다. 화장실 세면대 위 양치컵에 담긴 물은 대체 뭐냐는 거다. 그냥 물이라고 했더니 '그냥 물'을 왜 항상 컵에 받아두냐고 또 물었다.

샤워 틀면 뜨거운 물 바로 안 나오잖아. 물을 좀 틀어놔야 하잖아. 근데 그거 찬 물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우니까 컵에 좀 받아 두는 거야. 나 항상 이렇게 해왔는데... 몰랐어?

 아침부터 신랑 웃음보가 터졌다. 그거 받아서 몇 푼이나 아끼겠냐며 별 이상한 데에서 절약정신이 투철도 하다, 하고 또 웃었다. 난 혼자 살 때도 이렇게 살았으니 몰라도 몇 만 원은 아꼈을 것 같은데... 아닌가?

 우리가 아무리 아껴봤자 중국과 미국에서 쏟아지는 쓰레기로 지구는 이미 말아먹었다고, 한국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아무리 분리수거해 봤자 소용없다고 저녁밥상에서 투덜거린 건 나였다. 

 부동산 얘기는 그다음이었고, 만두 사건을 마지막으로 그릇들은 싱크대로 옮겨졌다.  

 싱크대 앞에 둔 설거지용 액상세제에는 물을 섞어 놨다. 원액의 진득한 제형이 희석되는 바람에 생각 없이 푹 누르면 푝 하고 세제가 다 튀어 버리지만, 조심하면 된다. 나에겐 아끼는 게 더 중요하다. 화장실의 샴푸 통도 처지는 다르지 않다.  

 다 쓴 치약을 반으로 갈라 안에 남은 걸 싹싹 긁어내어 쓰는 광경을 신랑은 결혼하고 처음 봤다. 짜 쓰는 형태의 로션이나 크림이라면 '다 쓸 데 까지 다 쓴 게 아니다'는 정신으로 끝까지 박박 긁어낸다. 버려야 할 옷가지는 걸레로 용도 변경되어 죽을 때까지 죽지 못한다. 

 하나의 '습관'이자 생활 팁이라고만 생각했지, 궁상맞다고 여긴 적 없다. 

 버려야 할 양말로 창틀을 닦는 나를 보고 동공 지진하는 남편을 보기 전 까지는.

 그는 나의 습관에 놀랄 때마다 '생활의 지혜'로 추켜세웠지만,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아껴 써보고자 방바닥에 질펀히 앉아 가위로 걸레를 자르고 있는 내 모습에서는 궁상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무궁화 표 빨랫비누로 뻣뻣하게 빨아내어 햇볕에서 꼬독꼬독하게 잘 마른행주 특유의 냄새처럼, 깨끗하고도 꿉꿉한 냄새가.


 어릴 적 얘기를 나눌 때면 동갑내기 배우자는 신이 나서 놀리기 바쁘다. 서울 사람 일리 없어, 너는 분명 나이를 속인 걸 거야, 재밌으라고 없는 얘기 지어내지 마라, 그건 부모님 세대 때나 하던 거 아니냐 등등.

 악의를 가지고 놀리는 건 아니고 정말 낯선 이야기라 신기해서 물어볼 뿐이다. 그의 찰진 반응에 신이 난 나머지 툭하면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하고는 한다. 

 왜 그 기다란 때수건. 손에 끼는 네모난 거 말고. 그걸로 비누거품을 내서 씻잖아. 근데 이상하게 엄마가 할 때는 잘 되는데, 내가 혼자 하려고 하면 거품이 잘 안 나는 거야. 근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때수건으로 비누를 돌돌 말아서, 속에 딱 비누가 든 채로 문지르면 거품이 잘 나더라. 근데 엄마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랬어. 비누 너무 빨리 닳는다고.
 이렇게 샴푸처럼 짜서 쓰는 바디워시를 처음 썼을 때가 기억나. 거품이 너무 잘 나서.

 신랑은 나를 '소비마마'로 만들어주기로 약속했다. 휴지도 맘껏 쓰고 가계부도 쓰지 말고 쿠폰도 모으지 말라고. 장 보러 가서도 마감세일이나 할인 딱지가 붙지 않은 상품에는 눈길을 영 안 주는 아내에게 '소비마마 해야지!' 하며 용기를 북돋는다. 

 그에게도 습관이 늘었다. 키친타월로 프라이팬의 기름을 닦아 낼 때면 이미 쓴 휴지를 한 번 더 쓴다던가, 샤워하다 샴푸칠을 할 때면 물을 꼭 잠근다던가, 다시 쓸 만한 비닐봉지를 잘 접어 모아 놓는 모습에서 슬슬 행주 냄새가 난다. 


 야, 그냥 네가 통통이의 사고방식인 건 아닐까.

 나는 행복이의 사고방식을 가진 거지~

 그럼, 뭐,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나보다 얼마나 더 가졌는지를 보고, 돈 많은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서 보니까 그다지 많이 번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응! 그렇지! 

어쨌든 그래서 오늘 그렇게 많이 먹은 건 아니다?

응 근데 사실 좀 배가 많이 불러... 나 오늘도 많이 먹었나 봐.. 시무룩이야...


 식욕도 욕심이라고 돈 욕심으로 치환해서 변명으로 삼다니. 오늘도 주식창 띄워 놓고 한창 자랑하다가 급 고민하는 척 고개를 젓는다. 

하~ 왜 돈은 아무리 벌어도 벌어도 부족하지? 더 벌어야 하는 데에~
이러다 벼락 거지가 되고 말 거야~
네가 비트코인을 사서 나를 호강하게 만들어 줄 거야 그치?
아 근데 진짜로 사면 안 된다?


비트코인을 사느니 마느니 하기 전에 살이나 좀 빼자.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LR559Dcst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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