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 만두 6개
나 오늘은 그래도 그렇게 많이 안 먹은 것 같아!
어...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만두도 딱 하나만 더 먹었어! 우동은 너도 오늘 꽤 많이 먹었잖아.
간헐적 단식을 꿈꾸는 나의 배우자는 식탁에서 자꾸 나를 탓한다.
내가 먹는 양이 적고 속도도 느리다 보니 동시에 먹기 시작하면 자기가 더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대 덕분에 먹는 양도 늘고 속도도 꽤 빨라졌다고 그대의 부모님마저 놀라는 판 이건만 신랑은 애써 나를 원망하고는 했다.
있지... 너 나보다 만두 두 개나 더 먹었는데?
남편은 배급제(?)를 주장했다.
남편이 원하는 대로 너 먹을 양, 나 먹을 양 둘로 반 반 씩 갈라 내어도 봤다. 계란말이도 반으로, 제육볶음도 반절씩. 하지만 막상 식사를 시작하면 이내 그이 앞에 놓인 반찬 그릇이 비어 가는 속도가 내 것 비어 가는 속도보다 빠르므로 어쩔 도리가 없다.
내 몫으로 남은 완자 두 개 중 하나 정도는 그의 빈 접시에 놓아주고, 스테이크를 먹다가도 남은 고기의 반쯤은 도로 남편의 앞접시에 올라간다.
말끔하게 비워가는 식탁 위로 부동산 얘기를 하던 참이었다.
나는 원래 만두 3개 먹을 거 4개 먹은 거니까 딱 하나만 더 먹은 거라고 생각해!
하하 야, 6개 중에 너 4개 나 2개 먹었으면 네가 나보다 두 배를 먹은 거지.
어? 어... 아아..!!
그게 가난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구나!
한 손에는 젓가락, 한 손에는 폰을 든 채로 식사를 마친 신랑은 오늘도 식욕을 이겨내지 못 한 자신에 약간 당황했다. 당황하고는, 이내 특유의 해맑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다이어트는 물 건너 간 자신을 탓하기보다 스스로의 마인드셋이 얼마나 긍정적인지를 증명했다.
그 날 아침에는 결혼 3년 만에 드디어 남편의 궁금증을 하나 해소했다. 화장실 세면대 위 양치컵에 담긴 물은 대체 뭐냐는 거다. 그냥 물이라고 했더니 '그냥 물'을 왜 항상 컵에 받아두냐고 또 물었다.
샤워 틀면 뜨거운 물 바로 안 나오잖아. 물을 좀 틀어놔야 하잖아. 근데 그거 찬 물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우니까 컵에 좀 받아 두는 거야. 나 항상 이렇게 해왔는데... 몰랐어?
아침부터 신랑 웃음보가 터졌다. 그거 받아서 몇 푼이나 아끼겠냐며 별 이상한 데에서 절약정신이 투철도 하다, 하고 또 웃었다. 난 혼자 살 때도 이렇게 살았으니 몰라도 몇 만 원은 아꼈을 것 같은데... 아닌가?
우리가 아무리 아껴봤자 중국과 미국에서 쏟아지는 쓰레기로 지구는 이미 말아먹었다고, 한국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아무리 분리수거해 봤자 소용없다고 저녁밥상에서 투덜거린 건 나였다.
부동산 얘기는 그다음이었고, 만두 사건을 마지막으로 그릇들은 싱크대로 옮겨졌다.
싱크대 앞에 둔 설거지용 액상세제에는 물을 섞어 놨다. 원액의 진득한 제형이 희석되는 바람에 생각 없이 푹 누르면 푝 하고 세제가 다 튀어 버리지만, 조심하면 된다. 나에겐 아끼는 게 더 중요하다. 화장실의 샴푸 통도 처지는 다르지 않다.
다 쓴 치약을 반으로 갈라 안에 남은 걸 싹싹 긁어내어 쓰는 광경을 신랑은 결혼하고 처음 봤다. 짜 쓰는 형태의 로션이나 크림이라면 '다 쓸 데 까지 다 쓴 게 아니다'는 정신으로 끝까지 박박 긁어낸다. 버려야 할 옷가지는 걸레로 용도 변경되어 죽을 때까지 죽지 못한다.
하나의 '습관'이자 생활 팁이라고만 생각했지, 궁상맞다고 여긴 적 없다.
버려야 할 양말로 창틀을 닦는 나를 보고 동공 지진하는 남편을 보기 전 까지는.
그는 나의 습관에 놀랄 때마다 '생활의 지혜'로 추켜세웠지만,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아껴 써보고자 방바닥에 질펀히 앉아 가위로 걸레를 자르고 있는 내 모습에서는 궁상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무궁화 표 빨랫비누로 뻣뻣하게 빨아내어 햇볕에서 꼬독꼬독하게 잘 마른행주 특유의 냄새처럼, 깨끗하고도 꿉꿉한 냄새가.
어릴 적 얘기를 나눌 때면 동갑내기 배우자는 신이 나서 놀리기 바쁘다. 서울 사람 일리 없어, 너는 분명 나이를 속인 걸 거야, 재밌으라고 없는 얘기 지어내지 마라, 그건 부모님 세대 때나 하던 거 아니냐 등등.
악의를 가지고 놀리는 건 아니고 정말 낯선 이야기라 신기해서 물어볼 뿐이다. 그의 찰진 반응에 신이 난 나머지 툭하면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하고는 한다.
왜 그 기다란 때수건. 손에 끼는 네모난 거 말고. 그걸로 비누거품을 내서 씻잖아. 근데 이상하게 엄마가 할 때는 잘 되는데, 내가 혼자 하려고 하면 거품이 잘 안 나는 거야. 근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때수건으로 비누를 돌돌 말아서, 속에 딱 비누가 든 채로 문지르면 거품이 잘 나더라. 근데 엄마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랬어. 비누 너무 빨리 닳는다고.
이렇게 샴푸처럼 짜서 쓰는 바디워시를 처음 썼을 때가 기억나. 거품이 너무 잘 나서.
신랑은 나를 '소비마마'로 만들어주기로 약속했다. 휴지도 맘껏 쓰고 가계부도 쓰지 말고 쿠폰도 모으지 말라고. 장 보러 가서도 마감세일이나 할인 딱지가 붙지 않은 상품에는 눈길을 영 안 주는 아내에게 '소비마마 해야지!' 하며 용기를 북돋는다.
그에게도 습관이 늘었다. 키친타월로 프라이팬의 기름을 닦아 낼 때면 이미 쓴 휴지를 한 번 더 쓴다던가, 샤워하다 샴푸칠을 할 때면 물을 꼭 잠근다던가, 다시 쓸 만한 비닐봉지를 잘 접어 모아 놓는 모습에서 슬슬 행주 냄새가 난다.
야, 그냥 네가 통통이의 사고방식인 건 아닐까.
나는 행복이의 사고방식을 가진 거지~
그럼, 뭐,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나보다 얼마나 더 가졌는지를 보고, 돈 많은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서 보니까 그다지 많이 번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응! 그렇지!
어쨌든 그래서 오늘 그렇게 많이 먹은 건 아니다?
응 근데 사실 좀 배가 많이 불러... 나 오늘도 많이 먹었나 봐.. 시무룩이야...
식욕도 욕심이라고 돈 욕심으로 치환해서 변명으로 삼다니. 오늘도 주식창 띄워 놓고 한창 자랑하다가 급 고민하는 척 고개를 젓는다.
하~ 왜 돈은 아무리 벌어도 벌어도 부족하지? 더 벌어야 하는 데에~
이러다 벼락 거지가 되고 말 거야~
네가 비트코인을 사서 나를 호강하게 만들어 줄 거야 그치?
아 근데 진짜로 사면 안 된다?
비트코인을 사느니 마느니 하기 전에 살이나 좀 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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